-“사제들 성문제 드러나지 않았을 뿐...사제들도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을 것”
[일요신문] ‘일요신문i’는 지난 주 언더커버를 통해 ‘종교계 미투 움직임’을 집중 취재했다. 이번 주 언더커버는 이에 대한 후속 취재다. 당시 천주교 측에서는 성직자의 성추문 사건은 ‘몇 년에 한번 벌어질 정도로 생각보다 적다’며 심각한 문제의식 수준을 드러냈다. 하지만 기사가 나간 직후 교단 신부의 여신자 성폭행 미수 의혹이 불거졌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교단 측의 앞서 답변이 아주 무색하게 됐다. 사건 직후에도 논란은 지속됐다. 특히 문제의 신부가 소속된 수원교구는 앞에선 사과하면서, 뒤로는 문제를 조용히 덮으려는 태도를 보여 논란은 더욱 커졌다. 사건 이후 천주교 측에서는 ‘일요신문i’에 어떤 입장을 밝힐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한 아무개 신부의 성폭력 사실에 대해 공개사과하고 있는 김희중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사진=박정훈 기자
지난주 ‘일요신문i’의 ‘종교계 미투 움직임’ 취재 당시 천주교는 성직자의 성문제를 금기시하고 이를 어길시 가하는 엄격한 처벌 규정을 두고도, 내부적으로 성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관계자는 취재 당시 “천주교 성직자의 성범죄 사건은 몇 년에 한 번 꼴로, 생각보다 많지 않다“라며 ”다만 성직자라는 지위와 사건의 희소성 때문에 한 번 불거지면 크게 이슈화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천주교 내 성직자의 성범죄를 담당하는 상설 조직을 두고 있지 않다고 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천주교 성직자는 4000명 수준으로, 개별 교구별로 관리되고 있다. 따라서 공무원, 경찰, 검찰 등 다른 방대한 조직처럼 비위 사건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상설기구가 의미 없다”고 밝혔다.
민주화 운동과 사회정의를 위해 힘써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지난 2월 21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사제단 역시 성직자의 성범죄에 문제의식을 갖고 내부 쇄신을 얘기하고는 있다”면서도 “사제단은 도움이 필요한 사회 문제에 대해 관여하지, 교단 내부 사제들의 문제는 주된 소관이 아니다”라고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일요신문i’의 기사가 나간 직후 천주교 신부의 여신자 성폭행 미수 의혹이 제기됐다. 천주교 여성신자 김민경 씨가 언론을 통해 7년 전 아프리카 남수단 선교지에서 현지 선교 중이던 한 아무개 신부로부터 성폭행 당할 뻔 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성폭행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수원교구 소속 한 아무개 신부. 사진=수원교구 홈페이지
사건의 파장은 컸다. 한 신부가 속한 천주교 수원교구는 지난 2월 25일 교구장 이용훈 주교 이름의 ‘특별 사목 서한’을 통해 “교구장으로서 사제단을 잘 이끌지 못한 부덕의 소치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그동안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피해 자매님과 가족들 그리고 교구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한 신부가 활동했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역시 같은날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제단은 “한 신부는 사제단의 일원이며 형제이기에 그의 죄는 고스란히 우리의 죄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한다”며 “지극히 부끄럽고 불행한 일이지만 이를 본분 회복의 계기로 삼겠다. 또한 교회 쇄신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사제단도 작은 힘이나마 보탤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한 신부 사건이 불거진 이후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관계자는 ‘일요신문i’에 “첫 인터뷰 당시에는 사제단 내부 사람들도 그 사건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한 신부는 이번 사태로 정의구현사제단의 직책에서도 물러났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사과문에서 밝힌 것처럼 정의구현사제단은 교회 쇄신을 위해 성직자들의 비위 사실에 대한 조사나 대응책을 준비 중일까. 이에 대해 관계자는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며 “사제단 신부들의 신분은 모두 교구 소속이다. 따라서 사제단이 조사에 나설 강제성이 없다. 성범죄 사실을 알아도 처벌을 내릴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역시 ‘일요신문i’ 취재 당시에는 한 신부 성범죄 의혹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입장이다. 협의회 관계자는 “중앙협의회는 협의체일 뿐 각 교구의 상급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중앙회가 수원교구에 지시할 수도 없고, 수원교구가 우리에게 보고할 이유도 없다”며 “문제가 불거지자 수원교구는 즉시 사과 서한을 통해 잘못을 인정했고, 한 신부에 대한 징계를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천주교 성직자의 성범죄가 거의 없다고 한 인식에 대해선 변화가 생겼을까. 협의회 관계자는 “한국 천주교 신부가 5000명에 육박하는 현 시점에서 범죄가 안 일어날 수는 없다. 이번 한 신부 사건뿐 아니라 따지고 보면 성직자들의 성추문은 더 있을 것”이라며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범죄행위는 본인이 자수하지 않은 이상 교구에서 알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공개적으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이전부터 성범죄와 관련해 지침을 세우고, 예방 교육을 해왔다고 밝혔다. 앞서 관계자는 “한국천주교회는 이미 4년여 전부터 교황청 지침에 따라 각 교구별로 사제들의 성추문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며 “또한 사제들의 성범죄와 성추문이 발생할 경우 각 교구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사실 여부를 조사하고, 정직과 면직 등 처벌을 하게끔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주교들도 이번 사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수원교구만의 문제가 아니니, 중앙협의회 차원에서도 공식 입장을 밝히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2월 28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까지 나서 한 신부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저를 비롯해 주교들은 이번 사건을 접하며 당혹감과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성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물론, 이번 사태로 인해 교회의 사제들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금치 못하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교회는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제들의 성범죄에 대한 제보의 사실 여부를 철저히 확인해 교회법과 사회법 규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죄와 재발방지 약속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측은 한 신부의 사건을 최소한으로 축소해 덮으려는 태도를 보여 공분을 사고 있다.
한 아무개 신부가 주임을 맡았던 수원의 한 성당은 성폭행 시도 의혹이 불거진 이후 “본당 사정으로 일주일간 미사가 없다”는 안내문과 함께 문을 닫혀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수원교구가 사과 서한을 발표한 2월 25일, 한 신부가 주임을 맡았던 수원의 성당은 미사가 있는 주말임에도 “본당 사정으로 일주일간 미사가 없다”는 안내문과 함께 문을 닫았다.
특히 KBS 보도에 따르면 전날에는 평신도들에게 “오늘부터 3일간 성당 미사가 없고, 일체 출입을 금한다”며 “3일 정도만 보도거리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이슈가 사라져 잠잠해진다니 따라주셨으면 한다. 언론의 왜곡 및 증폭 보도를 막기 위한 결정”이라는 긴급 공지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고 한다.
또한, 한 신부는 의혹이 확산되자 지방으로 내려가 연락을 끊고 있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개적인 사과나 입장 표명도 없었다. 수원교구 관계자는 “한 신부는 현재 징계 중이기 때문에 연락할 상황이 아니다”며 “주교 등 높은 신부들만이 연락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2일까지는 수원대리구의 피정 기간이라 모든 성당이 미사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신도들에게 문제 메시지를 발송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수원교구가 이번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가만히 있으면 이번 사건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실제 일각에서는 여전히 천주교 내부에서 사제들의 성범죄 혐의에 대해 은폐하고 조용히 넘기려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천주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번 수원교구의 한 신부나, 몇 년 전 성문제가 불거져 면직된 마산교구의 김 아무개 신부 등은 사건이 사회적으로 크게 불거졌음에도 조용히 처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며 “여전히 천주교는 사제의 성추문 사건이 발생하면 병가 처리하거나 전출을 보내는 방식 등으로 쉬쉬 감추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천주교계 관계자는 “사제들의 성관련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 수면 밑에 있지 않겠느냐”며 “사제들도 이번 사태에 대해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반면 앞서 천주교중앙협의회의 관계자는 교구 차원의 은폐 의혹에 대해 “대부분 사제들은 그런 문제가 생기면 자진해서 옷을 벗고 떠난다. 스스로 그만두지 않으면 교단 차원의 제재가 들어가는 것”이라며 “각 교구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렇게 처리하겠느냐”고 반박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언더커버] 종교계 미투 후속 취재2(끝)-한국이 ‘요더 사건’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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