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의 빌 코스비
1937년생이니 28세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1965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의 10개 주와 캐나다에 걸친 지역에서, 빌 코스비에게 성폭력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급기야 2014년 10월 한니발 뷰레스라는 코미디언이 공연 중에 코스비의 범죄 행위들을 신랄하게 폭로하면서 미국 사회는 술렁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시작된 제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침묵만 이어졌던 건 아니었다. 과거에도 피해자들은 이야기했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 그가 지닌 존재감 때문에 그냥 넘어갔던 일들은 더 이상 면죄부를 받을 수 없었다.
증언에 의해 추정되는 범죄는 1965년 12월에 베벌리힐스에 있는 그의 집에서 일어났다. 크리스티나 루엘리라는 여성은 약물에 의한 성폭력을 당했다. 그녀는 40년 동안 그 고통을 안고 살았고, 2005년이 되어서야 남편과 딸에게 힘들게 털어놓았다. 1980년대 초엔 조앤 타쉬스라는 여성이 프리랜서 기자였던 존 밀워드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이야기했지만, 기자는 그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도 기사를 쓰지 않았다. 1996년엔 플레이보이의 모델이었던 빅토리아 발렌티노가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인터뷰했다. 하지만 그 영상은 그 어떤 방송도 타지 못했다. 2000년엔 레이첼 코빙턴이 신고를 했고 경찰은 지방 검사에게 알렸지만, 검사는 기소하지 않았다. ‘빌 코스비’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 미디어와 권력이 모두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드디어 포문을 연 사람은 안드레아 콘스탠드였다. 1973년 생으로 캐나다에서 태어난 콘스탠드는 농구선수였다. 장학금을 받고 미국 애리조나대학에 들어간 콘스탠드는 졸업 후 유럽 리그에 진출했고 캐나다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이후 그녀는 템플대학교가 여자 농구부를 창단할 때 코치로 스카우트되었다. 코스비를 만난 건 이때였다. 템플대학교 졸업생인 코스비는 학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이런저런 일에 관여했다. 농구부 창단에 관련된 자리에 참석하던 코스비는 콘스탠드와 친해졌고 파티에서 종종 어울렸다.
코스비 가족
사건은 2004년 1월에 일어났다. 펜실베이니아의 몽고메리 카운티에 있는 코스비의 집에서 파티가 있었다. 콘스탠드는 그날 매우 지친 상태에서 늦게 코스비의 집을 찾았다. 이때 코스비는 피로가 풀릴 거라며 알약 하나를 주었다. 아무 의심 없이 약을 삼킨 콘스탠드는 와인 몇 잔을 마셨는데, 이후 반쯤 의식을 잃었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코스비는 강제로 그녀의 몸을 만졌고, 새벽 4시쯤 깨어났을 때 콘스탠드는 나체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그녀는 용기를 내어 1년 후인 2005년 1월에 경찰에 신고했다. 첫 수사가 이뤄졌지만 당시 몽고메리의 검사는 증거 불충분으로 2월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에 콘스탠드는 자신과 비슷한 일을 당한 13명의 증인을 모아 3월에 민사 소송을 했다. 긴 법정 투쟁이 이뤄졌고, 결국 코스비는 2006년 11월에 콘스탠드와 합의했다.
템플대 옷을 입은 코스비
2015년 7월 8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녹취록에 의하면 코스비는 친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불법적으로 구한 마취제를 이용해 여성들을 혼수상태로 만들었다. 그는 이런 행동이 불법적이며 범죄라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후폭풍은 대단했다. 2005년 2월에 검사에 의해 불기소되었던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검사였던 브루스 캐스터는 펜실베이니아주 검찰총장 선거에 출마한 상황이었는데, 만약 그 사건을 다시 맡더라도 역시 기소하지 않겠다며 완고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은 민주당의 케빈 스틸 후보에게 패배했다.
새로 주 검찰총장이 된 스틸은 10년 만에 재수사를 지시했고, 결국 2015년 12월 30일에 코스비는 형사 사건의 피고가 되어 법정에 출두했다. 코스비는 계속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했고, 남성 7명과 여성 5명으로 구성된 12인의 배심원은 무려 53시간의 긴 토의 끝에도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흐지부지된 것은 아니었고, 법원은 다시 재판을 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안드레아 콘스탠드의 투쟁이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이다. (다음 호에 계속)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