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6·13 지방선거 내각 차출과 전략공천 과정에서 나타난 민주당 지도부의 현주소다. 추미애 대표 등 당 지도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현역 차출론’에 부정적이다.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부터 ‘임기 4분의 3 이상을 마치지 않은 국회의원이 다른 공직 선거에 출마하면 경선에서 10% 감점한다’는 당규를 적용키로 했다. 현역 의원의 출마 러시를 최대한 봉쇄하겠다는 의도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현역 의원에게 출마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3월 초 현재 현역 의원이 출마를 밝힌 광역자치단체는 수도권 3곳과 대전, 충남·충북, 전남 등 7곳에 달한다. 민주당(121석)과 자유한국당(116석) 의석수 차는 5석에 불과하다. 현역 의원은 경선 때까지 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최종 후보 확정 땐 의원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5곳 이상에서 현역 의원이 최종 후보로 결정되면 제1당과 2당의 지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지방선거 ‘기호 1번’ 사수에 올인한 지도부로선 치명타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는 “기호 1번은 대표 정당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갖고 있고, ‘묻지마 1번’을 찍는 유권자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는 5월 말 기준으로 정하는 20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 등 원 구성 협상에서도 한국당에 주도권을 뺏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춘석 사무총장이 전남지사 도전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이개호 의원에게 출마 재고를 요청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중앙당과 상의하겠다”고 했지만, 당 지도부는 광주·전남, 충남 전략공천 카드 가능성을 흘리면서 불출마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최근 추 대표 등 당 지도부는 당원명부 유출과 대통령 격려성 발언 등으로 내전 상태에 돌입한 광주와 함께 전남지역의 전략공천과 조기 경선 가능성을 두루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추 대표 등 지도부는 호남 전략공천 논의를 전면 부인했다.
더 큰 문제는 ‘영남권 전략공천’ 카드의 무력화다. 민주당 당헌·당규상 전략공천은 광역단체장의 20% 범위에서만 할 수 있다. 전국 17곳 광역자치단체 중 3곳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광주·전남과 충남에서 전략공천을 한다면, 다른 지역의 전략공천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사활 건 지역 중 하나는 부산·경남(PK)이다. 당 지도부는 부산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금이 PK 권력을 탈환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다. 민주당은 19대와 20대 총선에서 영남권 낙동강 벨트를 핵심 요충지로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가 광주·전남, 충남 등에 전략공천 카드를 쓴다면, 김부겸(대구)-김영춘(부산)-김경수(경남) 카드는 사실상 물 건너간다. 민주당이 호남은 물론, 이들 3인방 지역에 전략공천을 쓸 수도 있다. 다만 여기에는 제1당 지위를 한국당에 내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렸다. 지방선거 기호 2번은 물론, 차기 국회의장 등 원 구성 협상 등에서도 득보다 실이 크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당 구상이 차질을 빚는다면), 김부겸·김영춘 장관은 물론, 김경수 의원의 전략공천은 불가능한 카드가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들 3인방이 최종 결심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이 같은 당내 상황과 무관치 않다.
4김(김부겸·김영춘·김영록·김경수) 중 가시화된 전략공천 카드는 전남지사다. 당 수뇌부의 ‘이개호 불가론’에는 여러 함의를 담고 있다. 한 당직자는 “이 의원을 대체할 의원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이후 재보선 후보가 마땅치 않은 것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다만 당 내부에선 지도부가 청와대와 교감 하에 ‘김영록 카드’를 꺼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측은 “친문이 아닌 손학규계 전력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김부겸·김영춘·김경수’ 카드도 골칫거리다. 이들은 모두 현역 의원이다. 의원직은 경선 후 지방선거 한 달 전에 사퇴해도 되지만, 장관직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일 180일 전(3월 15일)까지 물러나야 한다. 애초 당 내부에선 이 중 2곳에서 전략공천을 쓴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예상보다 많은 현역 의원 출마로 옴짝달싹 못 하는 형국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김부겸 장관은 ‘불출마’, 김영춘 장관과 김경수 의원은 ‘출마’ 쪽에 가깝다고 예상한다. 지난해 총선에서 당선된 직후 ‘당 대표 출마’에 관심을 가졌던 김부겸 장관은 2기 내각이 출범하면, 당권 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내각 참여→당권 도전→대권 출마’ 시나리오다.
그는 이번 설 명절을 맞아 일부 지역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행정안전부는 선거관리 주무 부처”라며 “심판 노릇을 해야 할 제가 선수로 나가는 건 도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불출마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하지만 대구·경북(TK) 문화예술계와 언론계, 학계, 법조계 등 각계 인사 100여 명은 “김 장관은 대구시장 출마를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다만 청와대 직접적인 시그널이 없는 한 그의 출마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영춘 장관의 고민은 더 깊다. 부산시장의 상징성은 수도권·호남에 버금간다. 부산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대권 고지를 밟았지만, 민주당은 1995년 민선 1기 이후 단 한 번도 부산시장을 탈환하지 못했다. 김 장관은 2월 2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면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인생”이라며 출마 여지를 남겼다.
여론조사 상위권인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김 장관이 출마하면 양보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서로 양보하고 도와줬던 사이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아예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김 장관이 당선된다 해도 문제는 재보선”이라며 “김 장관 의석수는 1석이 아닌 보수 텃밭에서 탈환한 2석의 의미를 지닌다”라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선 “선거에서 패는 늦게 보여주는 쪽이 유리한 법”이라며 출마에 힘을 싣는다. 현역 의원이 출마한 7곳의 광역자치단체가 교통정리에 실패할 경우 당 지도부는 ‘김영춘 전략공천’ 카드를 접을 것으로 보인다.
김경수 의원의 출마는 친문계 후계구도와 맞물린 케이스다. 당 안팎에선 김 의원이 경남지사에 출마하면, 노 전 대통령 아들인 건호 씨가 김해을 지역구를 물려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한 전략통은 “김 의원과 건호 씨의 바통터치가 가장 유력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4년 전 지방선거에서 36%를 기록, 58%를 얻은 홍준표 한국당 대표에게 패했다.
그는 2월 22일 경남 고성군 고성읍 고성도서관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경남지사 출마에 부정적 입장을 밝히면서도 “PK에서 승리를 뒷받침해야 선거 뒤 문재인 정부 2기에서 수많은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며 출마 가능성을 닫지 않았다. 고성은 김 의원 고향이다. 김 의원은 3월 중 당 지도부와 상의 후 출마 여부를 최종 결정짓기로 했다.
지방선거 예비후보를 비롯해 일부 의원들은 당 지도부의 전략공천설에 대해 “날벼락 같다”, “당 지도부가 오만에 빠졌다” 등의 불만을 터트렸다. 그간 민주당은 당 지도부의 일방적 전략공천으로 경선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2014년 7·30 재보선 패배 후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동반 사퇴나, 2016년 4·13 총선 당시 셀프공천 파문 등이 대표적이다. 추미애호는 전략공천 지역 선정을 최대한 늦추기로 했지만, 이달 안에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키는 추 대표의 리더십에 달렸다.
윤지상 언론인
‘친문 2 VS 비문 2’ 여당 차기 원내사령탑 경쟁도 후끈 더불어민주당 차기 원내대표를 둘러싼 경쟁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우원식 원내대표의 임기는 오는 5월까지다. 6·13 지방선거 직전 집권당의 원내사령탑 경선을 치르는 셈이다. 현재 후보군으로는 친문계 김태년(경기 성남수정) 정책위의장과 홍영표(인천 부평을), 비문 노웅래(서울 마포갑), 조정식(경기 시흥을) 의원 등이 꼽힌다. 이 중 김 정책위의장과 홍영표·노웅래 의원은 출마에 무게를 두고 있다. 조 의원은 비문계 내부에서 출마를 요구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의원(4선)만 빼고 모두 수도권 3선 의원이다. 계파로는 ‘친문 2 vs 비문 2’로 갈린다. ‘포스트 우원식’ 체제는 계파투표와 의원 간 친소관계, 이 두 가지 변수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정책위의장의 강점은 원내대표 예행연습 격인 정책위의장을 거친 후보라는 점이다. 그는 지난해 5·9 대선 직후 단행된 당직 개편에서 김민석 민주연구원장과 함께 당의 부름을 받았다. 경희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운동권 그룹 맏형인 우원식 원내대표와 호흡을 맞추면서 1년간 당·정·청의 정책 조율사 역할을 했다. 홍 의원은 대우그룹 노동조합협의회 사무처장 출신이다. 현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다. ‘한국GM 먹튀’ 사태에서 노사정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고 있다. 홍 의원은 지난해 5월 16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우원식(61표) 원내대표에게 7표 차로 석패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치러진 만큼, 홍 의원이 우세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재수생 우 원내대표에게 일격을 당했다. 당시 홍 의원은 개표 이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듯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다수의 의원은 경선장을 나오면서 “재수가 대세”라고 말했다. 대권 재수생인 문 대통령도 “나는 재수에 강한 남자”라며 이를 선거운동에 활용했다. 홍 의원이 재수를 택할 경우 적지 않은 동정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친문 후보의 교통정리 실패로 당 주류 표가 분산된다면, 예상 밖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노 의원의 도전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우상호 체제’가 출범한 2016년 5월 원내대표 경선에 나와 1차에서 9표를 얻는 데 그쳤다. 조 의원도 당시 손학규계 대표로 출마를 준비했지만, 경선 막판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조 의원은 현재 국토교통위원장이다. 이들 출마 여부는 지방선거 공천 갈등 및 판세 변화에 따라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차기 원내대표는 누가 당선을 하든 어려운 자리가 될 것이라며 “원내교섭단체만 4개에 정의당까지 5당 체제로, 원내 협상 자체가 번번이 막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