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월간 매거진 모노클(Monocle)이 2월 22일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발간한 한국 특집판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인터뷰가 게재됐다. 청와대 본관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이랬던 문재인 정부에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전격적으로 내려진 것이다. 믿었던 경제가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가 막대한 완성차 공장이라는 측면에서 충격이 크다. 연관된 부품업체까지 따지면 셀 수 없을 만큼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는 메가톤급 쇼크가 닥쳤다.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는 등 ‘일자리 만드는 정부’를 표방하고 나섰으나 국정기조부터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한국GM 군산공장 비정규직 해고 비상대책위원회는 2월 28일 군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군산공장 폐쇄 방침에 따라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 200여 명이 3월 말까지 회사를 떠나라는 일방적인 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실직 태풍’이 현실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군산이 자리한 전라북도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 기반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전북 지역 득표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64.8%였다. 전국 평균 득표율(41.1%)보다 무려 23.7%포인트(p)나 높았다. 전북 표심이 문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런 연장선에서 한국GM사태는 문재인 정부에 엄중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부터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직접 경제 현안에 대한 월례보고까지 받기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은 과연 경제 대통령으로서의 면모도 보여줄 수 있을까. 야당의 공세처럼 결국 무능한 운동권 정부가 되고 마는 것일까. 청와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
지금 전북도민들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충격이 닥쳤다”는 호소를 하고 있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가 몰고 올 파장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전북 정치권과 재계는 한국GM 발표대로 군산공장 가동이 5월 말로 중단되면 지역 총생산이 20% 감소하고 공장과 협력업체 근로자 1만 3000명이 실직해 부양가족 등 최대 5만 명의 생계가 위태로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북도의회 의원들은 2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GM의 일방적인 군산공장 폐쇄 결정에 깊은 우려와 분노를 표한다”며 지역 경제 회생과 고용안정 대책 마련을 정부와 정치권에 촉구하고 나섰다.
의원들은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으로 관련 업계와 근로자는 물론이고 전북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릴 지경에 이르렀다”며 “공장 폐쇄가 현실화한다면 지역 실업사태는 IMF 외환위기보다 더 심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원들은 또 “공장 폐쇄는 총생산액과 수출 급감으로 이어져 지역 경제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관련 산업 고용규모를 고려할 때 지난해 현대중공업 조선소 가동 중단보다 2∼3배 이상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하소연했다.
의원들은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철회와 신차·전기차 배정을 통한 공장 가동률 향상, 근로자 고용안정을 정부에 요구하고 “정치권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GM 사태를 정쟁 대상으로 삼지 말아달라”고 했다.
전북상공회의소협의회 이선홍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도 같은 날 전북도청 브리핑룸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GM 군산공장 정상화를 촉구했다.
이들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에 따른 시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북 수출의 30%를 차지한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내려져 암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황이 절박한데도 정부 당국은 최근 군산공장을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도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총제적 위기에 빠진 전북 경제를 위해 군산공장 회생방안을 즉시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정부의 재정지원은 반드시 군산공장 정상가동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혹스러운 청와대
청와대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세계 경기 회복세를 틈타 우리 경제도 조금씩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는 판에 GM사태가 터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심각한 위기 상황임을 인정했다.
문 대통령은 2월 1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으로 군산지역 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해 조선소 가동 중단에 이어 군산지역으로서는 설상가상의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협력업체들까지 이어질 고용의 감소는 군산시와 전북도 차원에서는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범정부 차원에서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함께 군산경제 활성화 TF를 구성하고, 군산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산업위기 대응 특별지역과 고용위기지역 지정 등 제도적으로 가능한 대책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실직자 대책을 위해서는 응급 대책까지 함께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바로 다음날인 20일, 정부는 속도전을 시작했다. 대통령 발언이 나오기 무섭게 군산 지역을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하는 한편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긴급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월 20일 브리핑에서 “고용노동부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받아 군산 지역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긴급절차를 밟아나가기로 했다”며 “아울러 산업통상자원부는 군산 지역을 산업위기 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되면 고용보험을 통한 고용안정지원 등 종합 취업지원대책을 수립 실행하며, 자치단체 일자리사업에 대한 특별지원도 가능하다.
김 대변인은 “현재 군산시의 경우 고용위기지역 지정 요건을 충족하지 않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해 관련 규정을 고쳐서라도 지정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되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근거해 기업·소상공인에 대한 자금 보조·융자·출연 등 지원이 이뤄진다”며 “실직자·퇴직자에 대해 고용안정 지원이 이뤄지고 지역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그 밖의 지원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대책이 빠르게 발표된 배경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조선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이번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지니 평상시처럼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 스스로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다
일자리위원회 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자리는 간판으로 내걸어놓은 국정과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간판이 내려앉을 판이다.
한국GM 군산공장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단일 자동차공장의 문제가 아니라 군산시뿐만 아니라 전북도내에 산재한 협력업체 일자리 기반까지 붕괴된다는 의미다.
전북도와 군산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 한국GM 군산공장에 부품 등을 납품하는 1·2차 중소 협력업체는 135개로 추산됐다. 이들 업체에 몸담은 근로자는 1만 700여 명으로 군산시 전체 고용 비중의 약 22%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 폐쇄가 철회되지 않으면 군산과 전라북도는 물론, 정부에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국GM은 2월 13일 군산공장 폐쇄 결정과 함께 군산공장은 물론, 부평·창원 공장 인력까지,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이번 희망퇴직은 사실상 약 1만 6000명 모든 임직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미 한국GM은 노조원뿐 아니라, 노조원이 아닌 임원과 팀장급 이상 간부 직원들에게도 ‘구조조정’ 방침을 통보했다.
현재 추세대로 간다면 한국GM발 충격파는 군산뿐만 아니라 경기도와 경남은 물론, 대구경북권 차부품사로까지 확산될 우려를 안고 있다.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 설치 행사까지 열었던 문 대통령으로서는 한국GM발 실업 태풍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중이다.
하지만 쓸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청와대의 고민이다. 군산 지역과 한국GM 직원들에게 지원이 쏠리는 듯한 인상을 줄 경우, ‘밑 빠진 독에 혈세 붓기’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GM 군산공장의 경우, 차량 26만 대를 생산한 2013년을 정점으로 생산량이 꾸준히 줄어들었고 지난해는 공장 가동률이 20%에 불과했을 정도다. 수년전부터 이미 비상등이 들어와 있었는데 지금와서 지원을 해봐야 되살리기가 힘들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
한국GM 문제는 사실 오랫동안 진행돼온 구조적 문제였지만 결국 책임은 ‘폭발 시점’의 정부가 떠안게 된다. 문재인 정부에게 모든 책임의 화살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동안 주로 안보 문제에 대한 야권의 공세가 많았다면 이제부터는 경제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양상이다.
게다가 정부가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에 대해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무능 논란’도 번지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과 관련, “부처에서 알려와서 (발표) 전날 저녁에 알았다”고 밝혔다. 장 실장은 2월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지난 13일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발표와 관련해 어느 시점에 알았냐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노 의원이 “공장 폐쇄가 이사회 안건으로 올라간 것은 9일이다”라며 재차 질문하자 장 실장은 “한국GM이 이사회를 열기 전에 사전에 안건을 이사들에게 알려주지 않았고 이사회 내용을 사후적으로 공개하면 안 된다는 비밀 서약 의무를 줬다”고 해명했다.
장 실장은 “군산공장을 폐쇄할 것이라는 사전 논의는 산은도 정확하게 몰랐던 것 같고 현재도 경영자료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데 아직도 확보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보수 야당의 십자포화 공세도 본격화하는 중이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2월 20일 “청와대 참모들은 한국 GM 군산공장 폐쇄 사태가 심각해지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열린 토론, 미래’ 주최 토론회에서 “한국 GM 군산공장 폐쇄에 대해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 김현철 경제보좌관, 김수현 사회수석 등 참모들이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경제에 필요한 개혁은 하지 않고 친노조·반기업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