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 폐막에 맞춰, 이명박 전 대통령 소환 조사를 준비하고 있던 검찰이 MB의 도덕성을 지적할 수 있는 ‘핵심 혐의’를 속속 찾아내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금융기관장 자리’를 대가로 거액의 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 ‘다스(DAS)가 누구의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시작된 수사가 ‘대통령의 권한으로 매관매직을 했다’는 혐의로까지 확대됐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이 전 대통령 측의 도덕성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법조계, 정치계를 중심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힘을 보태듯, 이 전 대통령이 억대의 ‘공천헌금’을 받아낸 혐의도 검찰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MB 사위 이상주 전무를 통해 22억 원에 달하는 돈을 MB 측에 건넨 의혹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느 거물급 정치인들처럼 그렇듯, 직접 돈을 받지 않았다. 제3자를 거쳤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검찰이 포착한 것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었다. MB 사위 이상주 전무를 통해 20억 원에 달하는 돈을 MB 측에 건넨 혐의가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송경호 부장검사)에 따르면 이팔성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맏사위 이상주 삼성전자 컴플라이언스팀장(전무)에게 22억 원 상당을 건넸다. 올림픽 기간 동안 관련 혐의를 포착한 검찰 측은 이 전 회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메모 등 관련 기록들을 확보했고, 이상주 전무를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이 돈이 이상주 전무를 거쳐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히 돈이 오간 것만 놓고, 검찰이 자리의 대가성을 판단했을 리는 만무하다. 검찰은 대선 직전인 2007년 10월 선거 자금 용도로 8억 원이 이 전 대통령 측에 전달되고, 취임 후에는 10여 차례에 걸쳐 14억 원이 넘는 돈이 이상주 전무에게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우리금융지주는 당시 예금보험공사가 가장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던, 시중은행이면서도 정부의 관리를 받던 곳”이라며 “이팔성 전 회장이 자리를 대가로 돈을 건넸다”고 설명했다. 수사팀은 이를 ‘매관매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실제 이 전 회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 돈을 마지막으로 보낸 시기는 이 전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성공한 2011년 2월쯤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런 정황 등을 감안할 때 ‘인사’를 목적으로 보고 있다. 대가성 뇌물로 입증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
특히 수사팀은 이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전달자로 지목된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가 이 전 대통령 취임(2008년 2월) 이후에도 돈을 받았다면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이상주 전무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취임 이전에 받은 자금이 일부 있더라도, 그 이후에 돈이 건네졌다면 전체적으로 하나의 범죄인 ‘포괄일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자리에 대한 대가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고개를 든다. ‘돈이 오간 것’과 별개로, 이 전 대통령과 이팔성 전 회장의 관계가 너무 돈독하다는 반박이다.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 출신인 이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학교 2년 선·후배 사이로,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전 KDB산업은행 회장과 ‘금융권 4대천왕’으로 불린 실세다.
우리금융투자증권 사장에서 물러난 뒤 야인으로 있던 이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에 취임했는데, 당시 대표로 갈 때도 ‘친분’을 바탕으로 갔다고 한다. 이 전 회장 측 관계자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돈은 안 되는, 명예만 있는 자리지만 와 주겠냐’고 이팔성 전 회장 측에 제안해서 가게 된 자리가 교향악단 대표”라며 “그때 인연을 바탕으로 이 전 회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능력을 인정했고, 4대천왕으로까지 불리게 됐다”고 귀띔했다.
우리은행 출신인 탓에,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없었다. 우리금융 노조 관계자는 “PS(이팔성 전 회장을 지칭하는 말)는 우리은행 출신이지 않냐, 첫 취임부터 연임까지 ‘이의제기’가 없을 만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며 “당시 금융권이 글로벌 IB로 거듭난다는 기조 하에 정부적인 지원을 받던 상황이었는데 당시 대통령과 친한 PS의 취임을 우리은행 내부에서도 반기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 이팔성, 전달자 역할까지
하지만 22억 원 전액이 이 전 회장의 대가성 뇌물은 아니었다. 검찰 수사 결과 이 중 상당 금액은 이 전 회장 역시 ‘전달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선 전 건넨 8억 원은 이 전 회장 돈이 아니라, 성동조선해양 측에서 MB에게 보낸 정치자금이었던 것.
검찰 관계자는 “22억 원의 돈이 모두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팔성 전 회장은 매관매직을 시도했지만 전달자 역할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성동조선해양은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점을 노려 사업 관련 청탁을 시도했다.
당시 치열한 조선사업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선박 건조 경쟁을 펼치던 성동조선해양. 하지만 중견 조선사인 성동조선해양에 대해 금융업계는 냉담했다. 경쟁력이 약하다고 본 것. 성동조선해양은 자사가 발행하는 채권이 시장에서 부실채권으로 받아들여지자 이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이명박 당시 후보 측에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실제 성동조선해양은 조선업계 시장이 악화되자 가장 먼저 유동성 악화로 무너졌고, 현재도 청산 위기에 몰려 있다.
당시 성동조선해양이 건넨 8억 원은 이팔성 전 회장을 거쳐 대선 결과가 나기 전에 전달됐지만, 검찰은 명백한 뇌물성 정치자금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명박 대선 후보는 당시 각종 여론 조사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선두를 달린 대통령 유력 후보였기 때문이다.
성동조선해양이 건넨 8억 원은 최종적으로 이상득 전 의원에게 전달됐는데, 이에 대해 이상주 전무 측은 “돈 가방을 이명박 당시 후보가 아니라, 이상득 전 의원에게 직접 건넸다”며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돈이 얼마가 들어있는지 모르고 가방만 전달했다, 이 전 대통령에게는 직접 보고하지 않았다”며 본인의 혐의가 가볍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 전 대통령 측과의 연관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 공천 헌금 수수 혐의도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천 헌금 수수 혐의도 찾아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1일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을 비공개로 소환해 조사했다. 그는 2008년 18대 총선 때 이 전 대통령 측에 억대의 공천 헌금을 건넨 혐의다. 국회의원 자리를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것.
법조계에서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매일매일 새롭다’는 말이 나온다. 수사할 혐의들이 새롭게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 심지어 MB 최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윤옥 여사가 대선 당시 당락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실수를 해 내 사재를 털어 무마했다, 당시 이를 막기 위해 ‘앞으로 도와주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써주기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검찰은 신중히 이 전 대통령 소환을 위한 준비를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이 전 대통령의 아들인 이시형 다스 전무를 참고인으로 비공개 소환해, 다스의 비자금 조성 및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 수사의 시작점이었던 다스 실소유주 규명을 위한 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공식적으로는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이 전 대통령이나 이시형 전무 측에 금전적 이익이 흘러간 단서와 진술을 다수 확보했다. 또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을 삼성 측이 대납하는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 측의 요구를 먼저 받았다”는 내용의 진술과 자수서도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 측으로부터 확보한 상태다.
‘3월 중순에는 부를 것’이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 소환 시점이 거론되는 이유기도 하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을 소환하기 위한 명분(혐의)을 확실하게 하는 한편, 더 만들어 가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며 “늦어도 3월 말 안에는 이 전 대통령을 소환해 포토라인에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