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전히 숙지지 않는 대중들의 분노는 “자숙할 게 아니라 법의 철퇴를 받아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향하고 있다. 복귀가 빠른 연예계의 특성상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또 다시 이들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습 성추행 등 혐의로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배우 조민기. 사진=윌엔터테인먼트
지난 2월 26일 경찰은 ‘미투 운동’ 관련 수사 대상인 가해자 19명 가운데 3건의 사건을 정식 수사 중이며, 1건의 영장 신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잠정적인 은퇴까지 선언한 이들이 실제로 정식 수사를 통해 처벌받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우선은 배우 조민기(53)다. 연예계 ‘미투’ 가해자 가운데 피해자도, 피해 사실도 역대급인 그는 현재 충북경찰청의 수사를 앞두고 있다. 당초에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동의를 받지 않은 단순한 신체 접촉 또는 성적인 농담을 건넨 정도만 인정돼 그의 혐의가 성희롱으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 학교 측에서도 징계를 결정하면서 조민기의 행위는 성희롱으로 규정했었다. 당시 학교 측이 취합한 피해자들의 증언 내용만으로는 강제 추행을 적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학교 밖에서도 피해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직접적인 성추행과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이용한 음란 사진 전송, 성폭행 미수 등의 의혹들이 추가로 공개됐다. 학생들 역시 “조민기 교수가 자신의 오피스텔에 여학생들을 불러 강제추행했다”고 증언을 이어갔다. 교수라는 지위를 악용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희롱·추행한 것이니만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역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청주대가 공개한 조민기의 징계결과. 사진=청주대 제공
정리하자면 지난 2월 26일부터 정식 수사 대상자가 된 조민기에게 적용될 수 있는 법 조항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가운데 ▲강제추행 ▲준강제추행 ▲강간미수 ▲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추행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등이 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민기의 경우는 비교적 피해자들과 목격자(참고인)들의 진술이 일치하고, 피해 사실도 최근에 발생했기 때문에 앞선 연극계 ‘미투’ 가해자들처럼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이 거의 없다. 다만 2007년에서 2008년 사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커피숍 여직원 강간 미수 사건’의 경우는 친고죄 규정이 폐지되기 전 발생한 것으로 현재로서는 형사처벌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앞선 피해 사례들이 경찰 수사를 통해 진실임이 드러난다면 조민기에게는 ‘상습성’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상습범에게는 해당 죄에 정해진 형벌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할 수 있다.
조민기만큼은 아니지만 상습 강제추행 사실이 폭로된 조재현(52)의 경우도 경찰의 정식 수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재현은 2016년 6월 방송 스태프 여성을 강제로 추행한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배우 조재현도 상습 성추행, 성폭행 미수 등 피해 사실이 폭로됐다. 조재현은 현재 출연 중이던 드라마 ‘크로스’ 하차와 잠정적인 연예게 은퇴 의사를 밝혔다. 사진=tvN
이어지는 또 다른 폭로는 더욱 충격적이다. 2011년 경성대 학생이었던 피해 여성을 호텔로 데려가 성관계를 시도하려다 미수에 그치는가 하면, 그가 경성대 교수를 맡은 시점인 2016년 12월에는 진로상담을 요청한 여학생을 추행했다는 폭로가 터져 나왔다. 성관계를 완강히 거부한 여성에게는 “부산에서 영화를 찍을 건데 여주인공을 너로 해주겠다. 대신 이런 관계를 지속하자”라며 회유하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선 변호사는 “조재현이 잠정적인 연예계 은퇴와 자숙의 의사를 밝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법적 처벌을 대신하진 않는다”라며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정식 수사를 촉구한다면 그 역시 법정에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나온 범죄 혐의도 2건 이상의 유사한 범죄로 보이기 때문에 상습성 역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명 연예인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가해 사실을 인정한 오달수(49)의 경우는 다소 애매하다.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사건은 모두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 이는 오달수에 앞서 성추문이 불거지자 마자 실명이 공개되기도 전에 공개사과부터 하고 나섰던 배우 최일화(59)의 경우와 같다.
최일화는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밝혔으나, 그 직후 실제 피해자가 “성추행이 아니라 성폭행”이라고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나 이 역시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으로 최일화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에는 요원하다는 것.
영화 4편의 개봉을 앞두고 성추문에 휩싸인 배우 오달수. 사진은 부산경찰청 홍보대사로 등장한 모습.
오달수 역시 성폭행과 강제추행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으나 이 두 사건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성폭행의 경우는 1990년대, 강제추행의 경우는 2003년경 발생했기 때문에 오달수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이라면 법적이 아닌 도의적인 책임으로밖에 접근할 수 없다.
지난 2월 28일 오달수는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연극배우 엄지영 씨의 인터뷰 직후 사과문을 올려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사과문에 아직 실명을 밝히지 않은 또 다른 피해자를 묘사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극적으로 강조한 점,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점 등이 대중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앞선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이에 대해 “오달수의 사과문에서는 피해자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자신은 수동적이고 동정의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문구는 자신의 행위에 어느 정도 당위성을 부여하기까지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명인들이 대국민사과를 하는 것은 추락한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실제 재판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 반성하고 있는지를 홍보하는 용도가 더 클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사과문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당시까지 불거진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게 되므로 수사 과정에서 진술을 바꿀 수 없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2018 영화·드라마 미투 열풍에 전전긍긍…“정말로 몰랐을까” 쓴소리도 ‘미투’ 열풍에 2018년 상반기 영화·드라마 판에 비상등이 켜졌다. 드라마의 쌍두마차로 이끌어가던 주연이 이미 극의 중반부에 다다른 시점에 하차하는가 하면, 방영일을 고작 나흘 남겨두고 하차해 시나리오와 촬영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일까지 생겼다. 판을 엎기가 쉽지 않은 영화 쪽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당장 개봉을 앞둔 영화도 이번 사태의 그늘에서 피하기 힘든 상황이라 갑갑할 수밖에 없는 노릇. 결국 문제의 인물을 죄다 들어내고 새로 촬영을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곳도 있지만, 이미 주연으로 그를 홍보해 온 다른 영화는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판이다.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은 역시 ‘천만요정’ 오달수를 주연으로 올린 영화들이다. 영화 ‘컨트롤’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이웃사촌’ 등 오달수가 조주연급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은 통편집이 매우 힘겨운 상황이다. 단순히 배우를 교체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연 배우들과 합을 맞춰 촬영하는 분량도 상당한 역할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찍지 않으면 당초 예정했던 날짜에 개봉을 하기는커녕 개봉 여부 자체도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처음에 (오달수의) 성추행 실명 기사가 보도됐을 때도 다들 ‘설마설마’ 했었다. 잠적하고 난 직후에 사건을 부인하는 입장을 냈을 때는 ‘이대로 뭉개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작사나 홍보사도 당장 배우나 소속사가 가타부타 설명이 없는데 먼저 결론 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피해를 온전히 제작사가 떠안게 된 상황이니만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오는 8월 개봉을 앞둔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은 이미 촬영한 오달수의 분량을 모두 편집하고 그가 맡은 배역인 저승의 판관 역을 다른 배우에게 제안해 재촬영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나마 일부 장면에서만 등장하는 조연이었기에 통편집이라는 강수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 외 오달수는 오는 3월 21일 방영을 앞두고 있던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하차했다. 그의 빈자리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활약했던 배우 박호산이 맡게 된다. 이처럼 주연을 맡은 배우들이 성추문으로 불명예 하차하면서 혼란에 휩싸인 것은 드라마판도 마찬가지다. 예정대로라면 지난 2월 말 방영해야 했던 OCN 오리지널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은 주요 배역을 맡았던 조민기가 상습 성추행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면서 방영 일자를 3월 3일로 연기했다. tvN 측은 “(조민기의) 캐릭터를 삭제할 수도 있었으나 해당 캐릭터가 극 전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이어서 배우를 대체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민기의 역할은 이재용이 맡았다. 이미 극의 중후반부를 달려가고 있는 tvN 드라마 ‘크로스’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16부작이었던 ‘크로스’는 조재현의 성추문이 불거졌을 당시 이미 8회가 방영 중이었다. 조재현 역시 주연배우로서 고경표와 함께 극을 이끌어나가는 쌍두마차였기 때문에 그의 하차를 놓고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성추문 보도 직후 조재현이 입장문을 올리자 ‘크로스’ 측은 부랴부랴 조재현의 극중 퇴장 시기를 2회 앞당겼다. 이미 스토리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었기에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선 안에서 제작진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이것밖에 없었다는 것. 한편으로는 과연 ‘미투’ 가해자들의 행적이 보도되기까지 제작진들이 이를 전혀 알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도 이어지고 있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유명했다면 그 윗선에서 몰랐을 리가 없다는 것이 영화·드라마 제작 관계자들 사이의 이야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드라마 제작업체 관계자는 “여성 스태프들만을 대상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사람들 외에 성희롱·추행 가해자를 꼽으라면 아마 한 무더기로 나올 것”이라며 “심한 사람들은 한 쪽에서 촬영 카메라가 돌아가는 중에도 사각지대에서 여성 스태프를 추행하기도 한다. 그걸 못 본 척 하는 거지 ‘몰랐다’ ‘사실을 확인해 보겠다’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책임 면피”라고 꼬집기도 했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