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조합원들이 ‘한국지엠 총고용보장! 구조조정 저지! 30만 일자리지키기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열고 ‘군산공장 폐쇄 철회’와 ‘구조조정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기자는 27일 한국GM 인천 부평공장을 방문했다. 정문 앞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한국GM 철수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직원은 겉으로는 “신경 안 쓴다” “문제없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이처럼 부평공장 직원들이 군산공장 폐쇄 결정에 뜨뜻미지근한 이유는 2001년 정리해고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2000년 11월 대우차가 최종부도 처리된 뒤 GM은 인수자로 나섰다. GM은 당초 군산공장과 창원공장만 인수하고 부평공장은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에서 제외시킨 바 있다.
GM은 생산량과 품질, 노사 평화 등을 조건으로 인수를 약속했고 부평공장은 GM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2000명에 가까운 인원을 정리해고했다. 이 과정을 군산공장과 창원공장은 지켜보기만 했다.
한국GM 관계자 A 씨는 “부평공장은 이미 1700여 명의 정리해고를 경험했다. 정리해고는 곧 죽음이라는 걸 알고 있다“라며 다른 공장에 대해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즉, 과거 살을 도려내는 정리해고 속에서 별다른 목소리를 내주지 않았던 군산 등 다른 공장에 대한 섭섭함이 다소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국GM 부평 비정규직지회 한 관계자는 “정년퇴직을 앞둔 노동자가 대다수다. 투쟁보다는 정년 때까지 안정적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분위기다. 지금은 강성노조도 아니다. 마음으로는 철수 막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몸은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요신문은 2월 27일 오후 한국GM 부평공장을 찾았다. 고성준 기자
물론 부평공장의 미래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부평공장에서 생산하는 차종이 최근 들어 감소하는 추세다.
2015년만 해도 부평공장에서 생산하는 차종은 알페온과 말리부, 캡티바, 트랙스, 아베오 등 5개종이였다. 하지만 올해 부평공장에서 생산하는 차종은 3개로 줄어들게 된다. 판매량이 적어 생산 중단과 재개를 반복한 캡티바는 결국 단종될 예정이다.
부평공장 중 트랙스를 생산하는 1공장은 가동률이 100%를 웃돌고 있는 반면 말리부·캡티바를 생산하는 2공장은 가동률이 60%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1공장과 2공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앞서의 A 씨는 “1공장은 한국GM 주종 차량인 트랙스를 생산한다. 일이 많아 주말 특근까지 풀로 근무한다”면서도 “2공장은 작업량이 줄어 주 3일 정도씩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근심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GM 협력사의 한 관계자는 “1공장에서 생산하는 트랙스 후속은 개발이 끝난 상태지만 2공장에서 생산하는 말리부는 신차 개발 준비조차 못하고 있다. 보통 한 차종이 5년 정도 가니 후속 차량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부평공장에서 신규 차종을 개발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신규 차종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는다면 부평공장도 일이 줄어들 것이다. 결국 폐쇄로 가는 길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물론 또 다른 의견도 존재한다. 또 다른 한국GM 관계자는 “부평공장은 GM의 수출 효자 품목을 생산하는 데다 연구소가 위치했기 때문에 쉽게 철수하진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앞서의 한국GM 협력사 관계자는 “현장에서 정부가 지원금을 줘야 되는지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대부분 직원들은 정부가 지원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GM이 ‘먹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매각을 하는 편이 낫다고들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일각에선 한국GM의 실적 부진은 본사 차원에서 철수를 염두에 둔 의도적인 행동이란 시각도 있다. GM이 한국GM에 부품을 비싸게 팔고 고금리 대출을 해주면서 한국GM의 경영 실적을 지속적으로 악화시켜 ‘철수 정당화’ 명분을 쌓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2월 27일 27일 오후 인천광역시 부평구 한국지엠 부평공장 앞에 붙은 고용보장 현수막들. 고성준 기자
앞서의 한국GM 부평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같은 한국GM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또한 주목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GM이 철수하게 되면 1차 협력 업체부터 2, 3, 4차 협력업체까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협력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한국GM에만 납품하는 제품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물량이 계속 줄어들까봐 걱정되는 건 사실”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GM은 지난달 13일 군산공장 폐쇄 결정과 함께 경영 정상화를 위해 부평·창원·군산 공장 인력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접수를 2일까지 받았다. 이번 희망퇴직은 약 1만 6000명의 모든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다. 한국GM에 따르면 전무급 이상 임원 35%, 상무와 팀장급 이상 20%를 각각 감축하고 현재 36명인 외국인 임원 수도 절반인 18명까지 줄이는 게 목표다.
하지만 희망퇴직 신청자가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인위적 정리해고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국금속노조 한국GM지부 관계자는 “군산공장 폐쇄를 철회하고 사태 해결 과정에 노조를 참여시켜야 할 것”이라며 “이번 사안이 정부와 거대 외국기업 사이의 논의와 합의만으로 매듭지을 수 없는 중대한 사회적 관계다. 노조가 배제된 채 논의가 진행되면 생존권을 잃게될 노동자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에선 한국GM이 쌍용차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쌍용차는 200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6000억 원에 매각됐다. 한국GM의 모태인 대우자동차 또한 워크아웃에 이어 2000년 11월 법정 관리에 들어갔고 2001년 GM에 팔렸다.
쌍용차는 재기를 노렸으나 판매 부진 등으로 경영난에 빠졌다. 그러자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정부에 공을 떠넘겼다. 현재 한국GM의 스탠스와 닮아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 관계자는 “우리와 같은 사안이다. 우선 안타까움이 굉장히 크다. 외국 자본에 의해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문제에 대해 정부와 한국GM 자본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현장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