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 내용이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2월 28일 결국 불발됐다. 몇몇 의원들의 반발로 2월 임시국회 회기가 마감됐고, 지방선거 후보자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지역구도 모른 채 유세에 임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사진은 헌정특위 헌법개정소위원회. 연합뉴스
지난 2월 28일, ‘6·13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을 핵심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가 예정돼 있었다.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이날 법안이 통과돼야만 후보자들은 3월 2일부터 후보 등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의도 국회에 온 이목이 집중됐다.
이날 오후 8시 50분쯤. 본회의에서 ‘5·18특별법’과 ‘근로시간 단축법’ 개정안 등을 우선적으로 통과시켰고, 뒤이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국회의원들은 일단 회의를 정회하고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헌정특위)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기다렸다.
헌정특위에서 처리된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와 의결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법사위 소속 위원들 또한 회의장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김재경 헌정특위 위원장(자유한국당)이 계획과는 다르게 헌정특위 전체회의를 열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회기 종료가 몇 시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초조해진 민주당 소속 당직자들이 김 위원장을 찾기 위해 국회를 뛰어다니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여야 교섭단체가 특위를 우선시하지 않고 합의를 한 것에 서운함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10시 18분쯤 우여곡절 끝에 헌정특위 전체회의가 열렸지만, 한국당 소속 3명의 의원들이 개정안에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안상수 한국당 의원은 “내 지역구는 (광역의원) 수가 하나 줄었지만 인천 남동구와 부평구는 한 명씩 늘어서 6명이 됐다. (그런데) 인구가 비슷한 서구는 4명 그대로 유지됐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그러자 나경원 한국당 의원도 반발했다. 나 의원은 “국회의원은 8석이 늘었는데, 왜 시도의원은 27석이나 늘었나. 납득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의원들 전원이 지금 (본회의장에서) 헌정특위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동안 그 많은 세월을 허송하고 이제 와서 이러는 것이냐”며 나 의원과 안 의원을 비판했다.
거센 공방 끝에 결국 공직선거법은 헌정특위를 통과했지만, 이미 자정을 넘긴 0시 5분으로 회기가 마감돼 버렸다. 그 사이 정세균 국회의장도 “의장이 부덕한 소치인지 모르겠으나 부끄럽고 참담하다. 국민을 뵙기도 그렇고,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예비후보자를 대할 면목도 없다”며 회기 종료를 2분 앞둔 12시 58분에 2월 임시국회 산회를 선포했다.
이에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오늘까지 확정돼야 할 지방의원 수, 자기 지역 1명 준다고 계속 따지는 안 의원, 자유당 대표로 소위에서 합의 다 해놓고 안 의원 편들면서 딴 소리 하는 나 의원”이라며 “두 사람의 개인적 일탈을 제지하고 기한 내 안건처리를 했어야 할 자유당 김재경 헌개특위 위원장의 무능, 제 편 감싸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박은숙 기자
결국 2월 마지막 본회의 때 상정됐어야 했던 법안이 몇몇 의원들의 공방으로 처리가 불발됐고, 2월 임시국회에서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은 그렇게 물 건너갔다. 이 같은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일단 현행 선거구 기준으로 예비후보자 등록을 받고, 국회가 이를 다시 처리하기로 한 3월 임시국회 개회 날짜인 3월 5일 선거구가 확정되면 그때 예비후보자 선거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게 정했다. 즉, 후보자들은 그때까지 자신의 지역구도 모른 채 선거운동에 임하게 되는 꼴이다.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며 입후보 예정자들이 선거를 준비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울러 유권자들의 알권리도 침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공직선거법 개정안 가운데 현행과 가장 큰 차이가 있는 곳이 강원도 원주다. 개정안에 따라 원주 도의원이 1석 늘어나고, 강원도의원 지역구 정수는 41명이 된다. 이번 결정으로 원주에 제7선거구가 신설되고 춘천의 도의원 선거구도 변경된다.
강원도의원 선거에 출마를 준비하는 후보자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이문희 강원도의원 후보자(한국당, 3선거구)는 “(2월 임시국회에서) 확정되길 바랐는데, 너무 늦고 있다. 준비를 빨리 해야 하는데…”라며 “3월 5일에도 (본회의가) 파행될까봐 우려된다. 정당마다 추구하는 게 있겠지만, 후보들을 위해서 좀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 (국회의원들은) 당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니 힘들다”라고 털어놨다.
개정안이 통과된다 할지라도 자신의 지역구에는 변화가 없는 윤용호 강원도의원 후보자(한국당)마저도 “어차피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약속을 하고 합의를 했으면 통과시켰어야 맞지 않느냐”라며 “3월 5일에는 꼭 통과돼야 하고,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선거구 획정이 되면 인천에서 시의원과 구의원이 각각 2명씩 증원될 예정이다. 때문에 인천에서도 신속한 선거구 획정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김응호 인천시장 후보(정의당)는 “본회의 차수가 변경이 안 되는데도 본회의 처리가 안 된 혼란이 발생했다. 안상수 의원이 자기 지역에 대한 문제를 거론할 수는 있지만, (이번 사태는) 한국당의 이기적인 자세, 민주당의 수수방관했던 태도 때문”이라며 “본회의에서 선거구 획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며 후보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국회의)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선거구 획정 처리 지연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나 의원·안 의원·김 위원장은 지난 3월 1일과 2일, 각자 자신들의 SNS를 통해 항변에 나섰다. 나 의원은 “우리 당은 현실을 감안한 원칙 적용이라 (1안과 2안 중) 2안을 그나마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는데, 어제(2월 28일) 느닷없이 ‘여야합의’라며 심도 있게 논의된 적 없는 3안이 올라왔었다”고 해명했으며, 안 의원은 “시·도의원 정수를 정할 때 원칙과 기준이 되는 표의 등가성과 지역 대표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바로잡으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23일, 여당 측은 ‘28일 가서 처리하자’며 회의장에 모였던 소속 의원들을 불러내 기회를 무산시켰다. 어제(28일)의 불행한 사태는 이미 그때 태동되었던 것”이라며 여당 탓으로 돌렸다. 이번 사태로 정치권은 지방선거 후보들을 비롯한 국민들의 비판을 좀처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