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병도 정무수석으로부터 평창올림픽 개폐막식 등 주요행사 초청장을 전달받은 뒤 이야기 나누고 있다. 임준선 기자
그런데 현재 여권에서는 앞으로는 제2롯데월드가 키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다스와 BBK 등에 집중됐지만 결국 정경유착의 표본으로 거론되는 제2롯데월드가 타깃이 될 전망이다.
제2롯데월드를 타깃으로 삼은 추세는 지난해부터 계속됐다. 지난해 10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취임하자마자 민관합동 회의를 열고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에게 제2롯데월드 해결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며 “(당시 인허가 문제는) 감사원에 의해 감사돼야 하고 검찰에 의해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런데 기존 의혹제기 수준에서 그쳤던 상황에서 MB정부 문건이 발견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2월 2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2008년 12월 15일 MB정부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이 작성한 ‘제2롯데월드 건설 추진 관련 여론관리 방안’ 문건의 필사본을 공개하면서다.
이번 문건은 지난해 7월 청와대가 캐비닛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해 소위 ‘청와대 캐비닛 문건’으로 불리는 기록물들이다. 청와대에서 발견된 문건들은 지난해 7월 14일부터 28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됐다. 이 문건을 이재정 의원이 열람해 손으로 직접 적어서 언론에 공개한 필사본이다.
‘청와대 캐비닛 문건’에서 MB정부의 제2롯데월드 추진 기록이 낱낱히 공개됐다. 기존 보도자료를 청와대가 빨간펜으로 수정했다. 자료=이재정 의원실 제공
“빨간펜 선생님이 따로 없다.”
이 문건을 본 재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MB 정부는 보도자료 하나도 꼼꼼하게 수정했다. 특히 청와대가 롯데 회사 이익을 대변하듯 ‘제2롯데월드 건설추진 관련 여론관리방안’이라는 문건도 나와 더욱 충격을 줬다.
해당 문건을 보면 ‘야당은 대정부 공세 호재로 보고 정경유착으로 몰아붙이면서 국회 내 국정조사 요구 주장 등 강도 높은 대정부투쟁 전개하고 있다’라면서 ‘여당 내 일부 친박계열 의원들도 “경제우선논리로 안보를 버리는 것은 위험하다”며 가세 소지’가 있다고 적었다. 실제로 MB정부의 제2롯데월드 추진이 한창일 때 친박계로 분류된 유승민 당시 국방위 위원이 국방부 장관을 향해 “1조 7000억 원짜리 건물을 짓고 국가 안보와 국민 생명에 어떤 위험을 끼칠지 모르는 그런 건에 대해 외부의 공신력 있는 국제기관에 맡기는 안전진단 용역비 1억 5000만 원이 아깝고 3개월이 길어서, 열흘 만에 2900만 원 들여 옛날에 있던 보고서 요약해 짜깁기한 보고서에 대해 국방장관으로서 만족을 하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반응을 염두에 두고 썼던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도 이 문건을 접하고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번 문건 공개로 새롭게 확인된 사실도 있다. ‘일요신문’은 2015년부터 제2롯데월드 문제를 중점적으로 보도해왔다. 2015년 10월 ‘[단독확인] 제2롯데월드 ‘서울공항 공사비’ 진실’이라는 기사를 통해 기존 3000억으로 알려진 서울공항 공사비가 사실은 951억이었다는 점을 보도한 바 있다. 문건에는 MB정부는 공사비가 3000억 원에서 1100여 억 원으로 줄어든다고 알고 있었고, 이를 설득 근거로 만드는 계획까지 세웠다.
2012년 12월 15일 청와대와 롯데는 3단계로 구성된 협의를 맺었다. 협의 내용을 보면 마치 롯데를 위해 일하는 컨설팅 업체 같았다. 각 단계는 ‘기본 대응 스탠스’와 ‘중점 대응 방향’ 등으로 구성됐다.
1단계는 정부와 롯데 사이 비공식 협의였다. 이 시기 스탠스는 ‘언론 사전 유출시 억측보도 등 파장이 예상되므로 보안철저 유지’, ‘청와대·국방부·공군의 일관되고 일치된 입장 견지’가 핵심이었다. 또한 청와대는 롯데 측에 ‘부담이 당초 소요예산인 3400억 원에서 1100여 억 원으로 감소됐다는 점으로 조기 수용을 설득’하기로 대응 방침을 정했다. 청와대가 먼저 롯데 측에 금액 할인을 제안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롯데건축허가 신청 및 서울시 행정협의조정위 재심요청’이 2단계였다. 기본대응 스탠스는 정부 내부 최종 결정 과정으로 사안별로 언론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 시기 중점 대응 방향은 ‘지난 14년간 문민·국민·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지속검토된 사안인 점을 부각하면서, 현 정부의 특정기업 특혜논란에 대응’하기로 했다.
3단계는 행정협의조정위 심의·결정 단계였다. 이 시기 기본대응 스탠스는 ‘정부 결정 이후 선제적 홍보조치’였다. 롯데가 해야 할 일을 정부가 하고 있었다. 언론 대응 방향으로 ‘전문가 언론기고나 칼럼을 통해 ‘제2롯데월드’ 필요성 적극 홍보하기로 했다. 이어 항공기와 관제장비 발달로 일본·대만·홍콩 등 인구가 조밀한 국가들이 현재 비행안전구역을 변형하여 운영하고 있는 추세를 소개하기로 했다.
예상 질의 및 답변도 준비했다. 각 부처에서 질의를 받게 됐을 때 참고할 만한 ‘모범답안’이었다. 예상 질문 9번은 ‘장비도입이나 기타시설공사 비용까지 포함하여 활주로 각도변경에 드는 비용은 얼마인가?’였다. 준비된 답변은 ‘롯데물산 측에서 현물로 공군에 납품하게 될 것이며, 정확한 비용산정은 하지 않았음’이었다. MB정부는 이미 기존 비용에서 줄어든 공사비까지 거의 정확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거짓 답변을 준비한 셈이다.
여당 사정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문재인 지지자 사이에서 MB 천안함 기념관 방문과 맞물려 ‘천안함 재조사’ 여론이 불고 있지만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이번 MB정부의 행동이 낱낱이 기록된 문건이 공개되면서 다른 걸 고려하지 않고 제2롯데월드만 집중 수사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제2롯데월드 공세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