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0억 원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최근 주변에 털어놓은 소회라고 한다. ‘가까운 가족들 가운데 검사·판사를 하고 있는 법조인이 없는 탓에 검찰 수사를 받게 됐고 구속까지 됐다‘는 것. 이를 들은 법조인은 “’가족 중 법조인이 있으면, 검찰 수사·구속을 피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의 ‘한탄’과는 별개로 검찰은 이 회장의 혐의를 정리해 구속 기소했다. ‘건강이 안 좋다. 생일이다’ 등 각종 핑계를 대며 2차례 검찰 소환에 불응했다가 결국 구속된 이 회장은, 건강에 큰 문제 없이 구치소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일한 회장 인식 속 검찰 4300억 규모 범죄 포착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구상엽 부장검사)가 임대주택법위반 등 이 회장에게 적용한 범죄사실만 12가지. 이 가운데 가장 범죄 혐의 금액이 큰 것은 부실 계열사에 2300억 원을 부당 지원했다는 것이다. 채권 회수나 채무 면제 목적으로, 회수 가능성이 낮음에도 우량 계열사들을 동원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4300억 원 횡령 혐의로 지난 2월 7일 구속 기소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검찰과 이 회장 측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회장은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가벼웠다. 부실한 부동산에 투자한 부분을 우량 계열사들을 동원해 돌려막기를 지시하면서, 그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해놓지 않았다. 정황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이 회장이 계열사들의 돈으로 부실 부동산에 투자한 부실 계열사를 유지하려 했다면, 별도의 담보물만 우량 계열사 앞으로 설정해 줬어도 배임 혐의 적용이 힘들어진다”며 “‘내 회사’라는 인식이 매우 강해, 법무팀을 거치지 않고 결정이 이뤄졌다. 그 사이 부실 계열사가 자본잠식까지 가다보니 검찰이 배임을 적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회장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고집하다보니 발생한 불법적 요소가 있는 의사 결정”이라며 유죄 판단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회장 형사 처벌 불가피에도 여전히 안갯속 ‘후계구도’
‘자녀가 검사였다면 달랐을 것’이라는 이 회장의 하소연과 무관하게, 검찰은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이 회장의 비자금 등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벌써부터 성공한 수사라는 평가와 함께 ‘실형 가능성’이 언급되는 상황. 이제 재계는 부영그룹의 후계 구도를 주목하고 있다. 70대 후반인 이 회장은 슬하에 3남 1녀를 두고 있지만, 이 가운데 후계자라고 할 만큼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구속된 이 회장은 여전히 비상장사인 부영 지분 대부분(93.79%)을 가지고 있다.
장남 이성훈 부영 부사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법학박사 과정을 밟은 뒤, 부영에서 기획과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세 아들 중 유일하게 부영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1.64%에 불과해 ‘후계자’라고 얘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이다.
차남인 이성욱 부영주택 전무는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은 뒤 부영주택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역시 계열사 지분은 조금 갖고 있지만 형(이성훈 부사장)보다 지분이 현격히 적고, 부영 지분은 아예 들고 있지 않다. 삼남인 이성한 씨는 2009년 ‘바람‘, 2011년 ‘히트’ 등을 내놓은 영화감독으로 현재 계열사 부영엔터테인먼트의 대표지만, 건설업체 부영에는 일절 관여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 측은 검찰 조사에서 “자녀들에게 물려줄 생각이 없다,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정재단 등 교사 출신인 이 회장의 뜻이 ‘교육으로의 사회 환원’이라는 것. 실제 세 아들들은 부영의 공익재단 세 곳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부영 측은 “결정된 바 없다. 사실 무근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이 보유한 부영 지분 가치가 1조 원을 넘는 점을 고려할 때, 상속이나 증여세는 5000억 원 안팎일 것이라는 계 재계의 관측이다. 때문에 이 회장의 ‘사회 환원 계획’이 실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상당하다. 이 회장 측 관계자는 “이번 수사 때 보니 이 회장의 사회 환원 의지가 상당했다”며 “계열사 중 삼남이 운영하는 엔터테인먼트사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자녀들 지분이 적지 않냐? 고령(77세)에도 물려주지 않은 것은 그만큼 (사회 환원) 의지가 강력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
검, 이중근 회장 상대로 ‘최순실 로비했나’ 집중 추궁 “계속 최순실에 대해서 묻더군요. 전혀 관련이 없는데 말이에요.” (이중근 회장 측 관계자) 서울중앙지검에서 이뤄진 이중근 부영 회장 수사 과정에 대해 이 회장 측 관계자에게 묻자, 대뜸 털어놓은 소회다. 부영그룹 내부 비리와 별개로, 국정농단의 주범 최순실 등에게 로비를 한 게 있느냐고 검찰이 이 회장을 상대로 추궁했다는 것. 그는 “이 회장이 최 씨에게 재단에 돈을 낼 것을 요구받았지만, 결국 안 주지 않았느냐”며 “검찰이 여전히 ‘최순실의 혐의 확대’를 추진하는 것 같다, 우리는 ‘돈을 줬으면 이렇게 수사를 받게 됐겠느냐’고 반발했는데 검찰의 ‘아니면 말고’ 식 추궁에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검찰이 이 회장에게 물어본 사람은 이뿐이 아니었다. 최근 검찰 수사 가능성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금융기관장 A 씨의 이름도 거론했다. 이 회장과 A 씨가 친분이 있으니 부영 내부 비리에 관련된 게 있거나, 혹은 별도로 아는 게 있으면 털어놓으라고 검찰이 얘기했다는 것. 현재 검찰 내에서는 A 씨에 대한 각종 내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앞선 관계자는 “한 번만 물어봤으면 이렇게까지 얘기하지 않는다”며 “아무런 증거 없이, 지금 수사를 받은 것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툭툭 던지면서 ‘뭐 없냐’고 묻는데 정말 검찰이 여전하구나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검사 개개인은, 여전히 최순실 등 소위 말하는 이름 있는 사람들의 범죄 혐의를 어떻게든 찾아내 성과를 내려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