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배우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최일화 등은 공교롭게도 모두 현재 온에어되고 있거나 공개를 앞둔 작품에 참여했다.
결국 조민기는 OCN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하차했다. 그로 인한 여파로 드라마의 방송 시기도 살짝 밀렸다. 주인공으로 tvN ‘크로스’를 이끌던 조재현은 3월 6일 방송 분량을 끝으로 중도하차했다. 당초 드라마 마지막 회까지 출연하는 캐릭터였으나 제작진은 대본 수정을 통해 그를 솎아냈다. 최일화 역시 성추문이 불거진 직후 MBC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에서 하차했다.
최근 영화계를 넘어 드라마 시장으로 영역을 넓힌 오달수를 둘러싼 후폭풍은 특히 거셌다. 그가 출연할 예정이었던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그의 모습이 담긴 스틸컷까지 공개했다가 부랴부랴 박호산을 대체 배우로 투입했다.
게다가 오달수는 올해 개봉을 앞둔 영화만 무려 4편이었다. 14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영화 ‘신과 함께’ 속편을 비롯해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이웃사촌’ ‘컨트롤’ 등의 촬영을 이미 마쳤다.
그가 판관 역할을 맡았던 ‘신과 함께’ 측은 일찌감치 다른 배우를 투입해 재촬영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속편에 출연 예정이었던 최일화 역시 오달수와 함께 퇴출됐다. 올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데다 컴퓨터그래픽 후반작업이 많이 필요한 작품이라 이달 중 적당한 배우를 물색해 재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웃사촌’ 등은 오달수가 주연급으로 참여해 계산이 복잡하다. 새 배우를 투입해 재촬영하는 것은 사실상 영화 한 편을 새로 찍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달수의 역할을 대신할 배우를 구한다 하더라도 다른 배우와 감독, 스태프의 촬영 스케줄이 가능하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천정부지로 솟는 제작비를 감당한다는 것도 만만치 않다.
한 충무로 관계자는 “이미 오달수의 출연작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그가 하차하더라도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그런 상황에서 추가 제작비를 투입해 다시 촬영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를 키우는 격일 수도 있어 제작진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 손해배상 받을 수 있다? 없다?
조재현의 경우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전 이미 ‘크로스’ 출연료를 100% 지급받았다. 하지만 그의 잘못으로 인해 중도 하차가 불가피해져 약속했던 출연 분량을 채우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에 해당되는 출연료를 반납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제작진은 ‘대외비’라며 공식 확인하지 않았지만 TV에 얼굴을 비쳐야 출연료가 발생하는 규정을 고려했을 때 조재현은 출연료 반납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불필요한 마찰과 또 다른 구설을 피하기 위해 출연료를 돌려주는 선에서 정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출연 분량이 많지 않거나 아직 드라마가 공개되지 않았던 조민기, 최일화와 제작진 역시 출연료를 반환하고 빨리 사태를 매듭지으려 노력했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드라마 ‘크로스’ 대본 연습 당시 모습. 사진= tvN ‘크로스’ 공식 홈페이지
문제는 또 다시 오달수다. 개봉을 강행했다가 지금보다 손해를 더 키울 수도 있다. 개봉 과정에서 배급, 마케팅비가 추가로 투입되는데 ‘오달수 출연작’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대중이 외면하면 제작비를 회수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피해보상을 위해 오달수를 고소해도 실익은 크지 않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오달수의 성추문이 발생한 시기가 이미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법적 처벌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도덕적 이미지 실추만으로 거액의 피해보상금을 받아내는 판결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한 변호사는 “오달수의 출연 계약서에는 스캔들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불거졌을 경우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이 사건은 이미 십수 년 전 벌어진 일이라 영화 촬영을 마친 이 시점에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 예상하기 힘들고, 출연 계약 후 오달수가 어떤 잘못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소송을 벌여도 제작사가 만족할 만큼의 피해보상은 받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연료 반환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다. 현재 그의 인지도와 해당 영화의 제작 규모를 고려했을 때 오달수의 출연료는 억대에 이른다. 하지만 대체 배우를 투입해 재촬영하지 않고 오달수의 촬영 장면을 그대로 사용했을 때는 이번 사건과는 별개로 오달수 측에서 이에 상응하는 출연료를 요구할 근거가 생긴다.
또 다른 변호사는 “오달수가 도의적인 차원에서 출연료를 반납해 제작사의 손해를 줄일 가능성이 있으나 이 역시 본인의 판단에 맡길 일”이라며 “소송 과정이 길어지면 또 다시 구설에 오르며 이미지가 실추돼 작품이 아예 개봉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에 양측이 합의를 통해 조속히 마무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