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6일 한 지방선거 출마자가 개최한 출판기념회 현장.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이 시기 출판기념회가 집중되면서 지역 사업가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역 정치인들이 여는 행사를 마냥 모른 척할 수가 없어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그동안 출판기념회는 불법 정치자금 모금 창구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실제로 신학용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3년 개최한 출판기념회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뇌물죄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일요신문은 지난 3월 6일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한 지방선거 출마자의 출판기념회를 직접 다녀와 봤다. 행사장 입구에는 후보자의 책이 가득 쌓여 있었다. 손님들은 모금함에 돈 봉투를 넣고 책을 받아갔다. 카드결제는 할 수 없었다. 책의 가격은 1만 5000원이었지만 봉투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는 장면은 한 번도 없었다.
행사진행요원들은 봉투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기자 앞에서 봉투에 10만 원을 넣은 사람은 책 한 권만 받고 행사장을 떠났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미리 준비해온 봉투를 모금함에 넣고 책은 받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봉투에 이름을 적어냈다. 결혼식 축의금과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이날 행사에선 책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양손 가득 책을 사가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이유로 책을 이렇게 많이 사가느냐고 묻자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 심부름”이라고 했다.
책을 많이 구입한 사람들을 위주로 인터뷰를 요청해봤지만 대부분 답변을 거절하며 난색을 표했다. 기자가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주변을 배회하며 이것저것 묻고 다니고, 사진기자가 모금함을 집중적으로 촬영하자 후보 측 관계자는 ‘선관위에서 나오셨느냐’고 물으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어렵게 취재에 응한 한 참석자는 “봉투에 책값만 넣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다들 눈도장 찍으러 오는 건데 그럴 거면 시간 내서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다”면서 “일반 경조사와 마찬가지로 최소 단위가 5만 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참석자는 “선거 때면 출판기념회 초청장이 너무 많이 날아와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너무 깐깐하게 볼 문제는 아니고 선거 출마하는데 지인들이 십시일반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던 후보자는 그날 저녁 자신의 SNS를 통해 “현직이 아니니까 걱정했는데 1000여 분이 오셔서 대성황이었다”면서 “책 판매 수입이 엄청났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해당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후보자 이름을 굳이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후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출판기념회 대부분이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지도가 높은 현직 정치인의 경우 출판기념회를 통해 수억 원을 모금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한 번에 수십 권을 구입해 가는 경우도 흔하다. 현직 시장이나 도지사 등이 출판기념회를 열면 소속 공무원들이 대거 참석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은 앞 다퉈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판매할 책을 대필해주는 전문 작가들까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책을 대필해주고 500만~1000만 원가량의 보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책 내용은 대부분 부실하다. 출판기념회용으로 급하게 만드는 데다가 책 내용에 관심을 가지거나 내용이 부실하다고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한 정치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정치인은 “출판기념회로 수억 원을 모금한다는 이야기는 극소수 거물급 정치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고 대부분 선거자금에 조금 보탬이 되는 정도”라며 “저 같은 경우 출판기념회를 처음 해봤는데 수천만 원도 아니고 고작 수백만 원 수익이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3만 원 이상 식사대접도 처벌대상인 상황에서 출판기념회를 규제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9대 국회부터 출판기념회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지만 현재까지도 마땅한 보완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현재 출판기념회 관련 법 규정은 ‘선거 90일 전 금지’뿐이다.
중앙선관위 측 관계자는 “현재 선거법상 책값으로 의례적인 범위를 넘지 않으면 된다고만 나와 있는데 의례적인 범위가 얼마인지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책값으로 100만 원을 넣어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일단 선거법상으로는 제재할 근거가 없지만 뇌물죄나 다른 법령 위반이 될 수는 있다. 그 부분은 선관위에서 판단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선관위 측은 “현재 출판기념회를 통해 얼마나 모금을 했는지 후보자가 보고할 의무도 없으며 선관위에서 출판기념회 현장을 감시하거나 관리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가 봇물을 이뤄 문제가 되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3월 5일 이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했다. 권익위 측은 현역 정치인이나 언론인 등은 김영란법 적용대상이기 때문에 정가 이상의 책값을 받으면 문제가 된다고 적시했다. 다만 정가를 지불했다면 100권을 사도 제재 대상이 안 된다고 했다. 김영란법 적용대상이 아닌 비공직자의 경우에는 법 적용이 더 애매하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출판기념회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출판기념회에서 책이 필요해서 사는 사람은 없을 텐데 저런 식이면 규제를 전혀 안하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