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처지에 따라 이들이 알고 있는 남한에 대한 정보는 달랐을 것이나 거의 모두 남한 땅을 밟기는 처음인 사람들이었다. 대표단원들은 북한에서도 지위나 생활수준이 최상류에 속하고 남한에 대한 정보도 많겠지만, 그들 또한 말로 듣고, 영상으로만 보던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주로 20대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선수단 예술단 응원단은 남한에 대해 모르거나 왜곡된 정보로 사상교화된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에 내려오기 전은 물론 돌아간 뒤에도 남한에서 보고들은 것을 버리게 하려는 이른바 ‘물빼기’ 교육을 철저히 받았을 것이다.
이들은 체류기간 동안 입을 굳게 닫았다. 응원단은 ‘우리는 하나다’라는 응원구호만 외쳤고, 예술단은 북측의 혁명가에다 우리의 유행가 몇 곡을 얹어 노래했다. 대표단 역시 문재인 대통령 등 남한 당국자들과 많은 얘기를 했지만 기자들의 질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응원단은 관중들 사이에서 섬처럼 앉아 초등학교 학예회 같은 음률과 율동을 반복했다. 대형 스크린과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는 강한 비트의 음률과, 관중들로 하여금 절로 들썩이며 함성을 지르게 하는 경기장의 디지털 응원에 비할 때 너무 왜소하고 부조화했다.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북측 응원단이 보여줬던 ‘김정일 플래카드 소동’ 같은 황당 해프닝이 없었음은 다행이나, 북한 당국이 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알게 하는 해프닝은 있었다. 개막식 날 대회조직위원회가 모든 참석자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박스를 북측 응원단만은 가져가지 않았다.
피겨스케이트 경기장에서 북한의 염대옥 김주식 선수를 응원하러 왔던 응원단 중 한 명이 미국선수의 연기에 박수를 치자 옆자리의 친구가 옆구리를 치며 조심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일본의 TV가 찍은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원수 미제(美帝)’를 응원한 그 여성이 돌아가서 얼마나 고초를 당할 것인지를 걱정하게 했다.
그들은 북에서 있을 때보다 더 통제된 시간을 남한에서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입은 닫았지만 가슴에는 많은 것을 담아 갔을 것이다. 남한의 자유 풍요 평화를 목격한 그들에게 북측은 더 이상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한은 미제의 식민지일 뿐이며, 북한은 남한이 갖지 못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큰소리 친다한들 이들은 그래서 우리가 더 행복하단 말이냐고 되물을 것이다.
역사와 문화에 첨단기술까지 녹아 있는 개·폐회식을 통해 김일성 일족의 우상화와 호전성만 고취하는 능라도경기장의 10만 명 카드섹션이 얼마나 하찮은 놀음인가도 생각하게 됐을 것이다. 김정은은 자신이 판 평창올림픽 참가 덫에 자신이 빠져들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임종건 언론인 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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