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이 14일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관객에 내놓는 데 이어 30일 방송을 시작하는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시청자를 찾아간다. 명실상부 ‘멜로 퀸’으로 통하는 그가 작정하고 스크린과 TV 드라마를 통해 사랑 이야기를 펼쳐내는 셈이다. 왕성한 도전은 최근 극장가에서 자취를 감춘 한국 멜로영화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 “어느덧 30대 중반, 더 깊은 멜로 원해”
2001년 MBC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데뷔한 손예진은 데뷔 17년째를 넘기고 있다. 1982년생으로 올해 그의 나이 37세. 연기를 시작한 스무 살 때부터 청순한 이미지로 사랑받은 그는 줄곧 로맨스·멜로 장르에 집중하는 연기 활동과 참여한 대부분의 작품이 흥행에까지 성공하면서 ‘멜로 퀸’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2003년 조승우와 함께한 ‘클래식’, 2004년 정우성과 호흡을 맞춘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손예진의 초기 흥행작인 동시에 한국 멜로영화의 대표작으로도 통한다.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손예진의 새로운 멜로 파트너인 소지섭이다. 이들이 부부로 만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어린 아들과 남편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죽은 지 1년이 지나 갑자기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판타지 러브스토리다. 일본 동명 소설을 원작 삼았고, 이미 일본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 성공은 물론 국내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일본의 색을 거둬내고 우리 정서와 상황에 맞게 상당 부분 각색된 영화는 웰메이드 멜로의 탄생을 알린다. 풋풋한 첫사랑으로 시작해 믿음직한 사랑, 가슴 찡한 사랑을 지나 이별에 이르기까지 눈물과 웃음이 섞인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상당하다. 탄탄한 완성도를 갖춘 데는 손예진의 활약이 절대적이다.
손예진은 “멜로는 다른 장르의 영화보다 더 어렵다”고 털어놨다. 배우가 온전히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관객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진행한 언론 시사회가 끝난 뒤 만난 손예진은 이렇게 말했다.
“멜로 영화에서 배우의 표현 수위는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관객의 감정보다 앞서지 않으면서도 뒤처져서도 안 된다. 그건 정말 어려운 지점이다. 때문에 어떻게 감정을 유지할지 촬영 내내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시나리오를 읽다가 뒷부분에 가서는 눈물이 절로 나오더라. 내가 그렇다 해도, 그런 감정을 전부 연기에 쏟아낼 순 없다. 늘 절제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촬영했다.”
20대 때 숱한 멜로영화의 주연으로 활약한 손예진도 이제 30대 중반이 됐다. 멜로영화의 여주인공으로서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배우는 물론 관객 역시 ‘멜로의 여주인공은 예뻐야 한다’는 확고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시선은 고스란히 손예진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이번 영화에서 그는 대학에 갓 입학한 스무 살부터 32살까지의 시간을 표현해야 했다.
걱정이 컸을 것 같지만 손예진은 ‘쿨’했다. “후반작업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기술을 통해 약간 보정된 상태의 모습으로 영화에 나온다”고 자진 신고한 그는 “촬영 당시에도 제작진으로부터 조명에 각별한 도움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내 나이보다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인물이라 처음엔 걱정이 든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관객이 몰입하지 못하면 어떠나 너무 걱정했다. 후반작업의 도움은 배우인 나도 정말 놀랄 정도이다. 하하!”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그만큼 깊어진 감성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내공도 쌓였다. 손예진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면서 예전 영화인 ‘클래식’의 어느 장면이나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서 느낀 정서가 떠올랐다. 2000년대 초반, 그때 손예진의 멜로를 사랑해준 관객이 있어 지금의 내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의 흐름을 지나,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다시 멜로를 관객에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행복하고 소중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 손예진이 만드는 ‘멜로 부활’
한국영화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 가운데 하나는 특정 장르에만 편중된 제작 환경이다. 스릴러와 시대극과 사극 제작으로 유독 몰리다보니 최근 몇 년간 멜로와 코미디 영화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그나마 코미디는 간간이 흥행작이 탄생하면서 명맥을 유지해왔다고 보이지만 멜로는 ‘기근’ 그 자체다. 사랑의 감정을 충분히 담아내는 시나리오를 쓸 만한 작가 군이 없는 데다, 영화감독들도 대부분 남성 위주로 짜인 탓에 섬세하면서도 애잔한 감성이 담겨야 하는 멜로는 점차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흥행 여부를 떠나 영화계에서도 반길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일본 원작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해도 굵직한 설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창작했다는 사실은 반가움을 준다. 이번 영화로 데뷔한 이장훈 감독은 ‘40대 중반의 신인감독이자 서울대 공대 출신’이라는 이력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감성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멜로를 완성해냈다. 손예진은 그런 감독의 실력에 전적으로 지지를 보낸다.
극장에서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사랑을 펼친다면 안방에서는 설렘을 유발하는 짜릿한 사랑을 보여준다. 손예진을 5년 만에 TV로 돌아오게 만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오랫동안 아는 사이로 지낸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하는 내용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설정이지만 김희애와 유아인을 사랑하는 사이로 설정한 ‘밀회’를 통해 파격적인 멜로를 완성한 안판석 PD가 연출하는 작품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심지어 이 드라마의 제작진은 기획 단계에서 여주인공 캐릭터를 설정할 때부터 손예진을 염두에 뒀다고 했다. 제작 관계자는 “안판석 감독이 드라마를 구상하면서 30대 여성 캐릭터를 표현할 최고의 배우는 손예진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사실상 그를 모델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손예진은 또 한 번 자신에게 가장 맞춤한 사랑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