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여자대학교 전경. 공식 홈페이지 캡처
3월 3일 새벽 4시경 한양대학교 대나무숲에 한 대학생은 “축제위원을 맡고 있었는데 과 주점에서 뒤풀이를 하다 술에 취한 상태로 가해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성추행을 목격한 과 동기는 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헛소문을 퍼트렸다”고 밝혔다.
대학 동기나 선후배에 대한 미투 폭로는 점차 ‘슈퍼갑’인 교수들의 성폭력 의혹으로 확전되고 있다. 3월 3일 자정께 신한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여대생은 대나무숲에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수업 쉬는 시간에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러 갔다가 어깨부근의 속옷 끈 근처를 만지는 피해를 당했다”고 밝혔다.
성신여대 대나무숲에서도 미투 움직임이 감지됐다. 3월 3일 성신여대 대나무숲에 한 대학생은 “우리 또래의 자식을 둔 늙은 유부남 교수는 밥을 사준다는 빌미로 새벽까지 학생들과 술을 마시곤 했다”며 “부적절한 접촉이 있었지만 술자리 분위기를 흐리지 않기 위해 모른 척 입을 다물었다”고 폭로했다.
다른 대학생도 피해를 주장했다. 3월 8일 대나무숲엔 “내게 최악의 면접 자리를 제공해준 교수가 있다”며 “교수의 소개로 지원한 회사의 면접에서 교수 지인은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했고, 교수는 승낙했다. 술자리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남자친구 여부, 연애관 등 나에게 취업과 관련 없는 질문을 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대나무숲뿐만이 아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성신여대 학생들 사이에서는 A 교수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증언들이 퍼지고 있었다. 성신여대의 한 대학생은 “몇 년 전에 교수의 일을 도울 기회가 있었다. 교수가 회의를 하자고 연락을 하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셨다. 어느 날엔 교수가 인적이 없는 골목길로 운전을 해서 갔다”며 “운동 얘기를 하면서 다리 쪽에 힘을 줘보라고 했다. 치마를 입고 있어 당황스러워하는 데도 은근히 다리 쪽에 손을 댔다. 갑자기 ‘엉덩이에도 힘을 줘봐라’며 엉덩이에도 손을 댔다. 거절 의사를 표시하면 강제적인 행동을 할 것 같았다”고 밝혔다.
이 학생은 “너무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지만 교수는 ‘뭐, 이런 거 가지고 그러느냐’며 유난을 떤다는 반응이었다. 교수가 운전석에 있었는데 몸을 기대듯이 오른팔을 내 쪽으로 쓱 내밀고 팔로 안는 시늉을 하면서 내게 ‘안아달라’고 했다. 해가 져서 날이 어두웠고 집에 못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살짝 팔짱을 끼고 풀었더니 나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고 덧붙였다. 이 학생은 저항하고 싶었지만 보복이 두려워서 주변에 성추행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 학생은 성추행을 당한 이후 ‘스폰’ 제안을 암시하는 얘기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차 안에서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집에 돌아온 직후에 교수에게 전화가 왔다. 사과를 기대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이상한 소리를 했다. 통화 중에 돈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200만~300만 원 정도 빌려줄 테니 취업하고 갚으라’는 식으로 말했다”며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제안을 했다. 차 안에서 안아달라고 한 사람이 돈 얘기를 꺼내는 것은 당연히 ‘스폰’ 제안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A 교수는 일요신문 측에 “서로 의견이 다른 것 같다. 일을 함께 하느라 연락하고 통화한 건 맞지만 내 기억으로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성추행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자가용 같은 밀폐된 공간에 학생과 단 둘이 있지 않았다”며 “스폰 제안도 사실이 아니다. 미투에 편승한 오해나 피해가 없길 바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다른 대학생 역시 A 교수에 대한 피해를 주장했다. 그는 “3~4년 전, 교수 일을 돕다가 연구실에 치마를 입고 간 날이었다. 그날 교수가 ‘오늘은 치마 입었네, 몰랐는데 다리가 예뻤네’라고 말했다”며 “함께 일하면서 같이 모니터를 볼 때도 내가 종종 마우스를 쥐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교수는 내 허리나 등 위에 손을 올려 감쌌는데 10분 이상 손을 얹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 교수는 “작업을 모니터 보면서 같이 했지만 감싼 기억은 전혀 없다. 다수의 학생들이 항상 함께 있었고 들락날락거리는 환경이다. 그런 얘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상상할 수 없는 발언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의 대학생은 “어느 날은 회의를 한다고 했는데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밤 12시쯤 자리를 파할 때 교수가 운전을 하고 내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며 “역 입구에 도착해서 내리려고 하는데, 손이 등으로 올라왔다. 그때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내 속옷이 느껴졌을 것 같았다. 진짜 성추행을 당했다는 느낌이었다. 교수는 약 10초 정도 등에 손을 올려 원을 그리듯이 어루만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 교수는 “학생들과 밥을 먹고 술을 마신 건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며 “어떤 학생도 문제를 제기하거나 거부감을 표시한 적이 없다.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당황스럽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앞서의 두 학생은 A 교수의 보복이 두려워 성폭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거절을 할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의 학생은 “그때는 이제 갓 스무살이 된 때였다. 등을 만진 사람이 아빠 이외에 그 사람이 처음이었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교수와 학교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문제를 일으키면 성적이나 졸업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았다”고 밝혔다.
기자는 피해를 주장하는 다른 학생들과도 접촉했지만 그들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이들도 학교 측의 제보자 색출이나 A 교수의 고소 등 2차 피해를 우려하고 있었다.
한편, 성신여대 측은 “A 교수와 관련된 사건은 성폭력상담실에 신고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의혹에 대해 교내 성윤리위원회는 관련규정에 따라 진상조사를 위해 노력할 의지가 있다”며 “피해를 주장하는 학생들이 학교에 공식적인 신고를 하면 진상조사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