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미투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 스캔들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촉발된 미투운동은 문화예술계를 비롯해 정치, 경제, 체육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상태다. 미국의 경우, 골든글로브와 그래미 어워즈의 레드카펫 위에서조차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벌어진 바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과거 성폭력 및 성희롱 행각이 발각돼 망신을 당한 유명인사들이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공개 사과를 하는 치욕을 겪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문화예술계를 강타했던 성폭력 고발은 이제 정치권으로 겉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미투운동이 시작됐던 미국과 유럽에서는 현재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서서히 높아지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른바 ‘미투운동을 반대한다’는 저항의 목소리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도를 넘은 미투운동’을 경계한다는 것.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과연 성폭력의 경계는 어디일까?’ ‘어디까지가 호감의 표시이고, 또 어디까지가 성폭력인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제는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투운동의 파도 속에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미투운동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성폭력의 경계에 대한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난해 10월, 할리우드 제작자인 와인스틴이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수십 명의 여성들을 강제로 성추행하고 성폭행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은 발칵 뒤집혔다. 피해자 가운데는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배우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그리고 그후 ‘나도 당했다’라는 의미의 미투운동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온라인에서는 성폭력 가해자 명단이 줄을 이었고, 정치, 문화, 언론 등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봇물 터지듯이 고발이 이어졌다. 성폭력 장소와 대상은 다양했다. 파티에서 만난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접촉을 강요 당하거나, 직장 상사나 동료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이름이 공개된 가해자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았고, 업계에서 추방을 당하는 한편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는 수모를 겪었다.
이 가운데는 와인스틴 외에 각 분야의 거물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 가령 ‘유주얼 서스펙트’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동성애자 배우인 케빈 스페이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남성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출연 중이던 드라마에서 하차했으며, 개봉 예정이던 영화에서는 출연 분량이 전량 삭제됐다. 더스틴 호프먼은 32년 전 10대 여성 인턴을 성희롱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공개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유명 정치평론가 겸 작가인 마크 핼퍼린의 경우에는 ABC 방송국 재직 시절 사무실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하고, 열두 명의 여성을 성희롱한 혐의로 뭇매를 맞았다. 또한 앨 프랭큰 전 상원의원,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등 정치인도 부적절한 행동으로 도마 위에 올랐으며, 영국에서는 마이클 팰런 전 국방부 장관이 15년 전 한 여기자의 무릎 위에 손을 올려 놓았다는 이유로 비난을 산 후 사임했다.
이처럼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는 성폭력 고발로 거의 모든 분야가 쑥대밭이 되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부터는 이에 반하는 목소리도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나는 미투운동을 지지한다. 우리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배우인 아지즈 안사리. 그가 연루된 성폭력 사건을 두고 갑론을박이 분분하다.
그리고 실제 성적인 호기심을 표현할 때는 사전에 먼저 합의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매번 먼저 구두로 동의를 얻는 것은 마치 어린 시절 놀이를 할 때 “엄마, 이거 해도 돼요?”라고 묻는 식의 서투르고 역행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공개적으로는 미투운동을 지지하면서 격려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 많은 여성들이 미투운동이 언제부턴가 노골적인 마녀 사냥으로 번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질타받아 마땅한 경우도 많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분명 그 경계가 모호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어린 여성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자 패러다임’을 적용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어린 여성들을 빅토리아 시대의 연약한 가정주부로 인식하거나 혹은 스스로 그렇게 행동할 경우 이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뉴욕매거진’의 앤드류 설리반 역시 ‘이제 과도한 미투운동에 저항할 때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런 매카시즘(마녀사냥)에 저항하고, 이 문제가 사실은 더 복잡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이 불거진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배우인 아지즈 안사리의 성폭력 사건이었다. 지난 1월 14일, 웹사이트인 ‘베이브닷넷(babe.net)’을 통해 보도된 폭로 기사에 따르면, 안사리는 ‘그레이스’라는 가명의 여성을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고발됐다. 이 여성은 “안사리와 첫 데이트를 했던 날은 내 인생에 있어 최악의 밤이었다”라고 폭로했다. 하지만 안사리 측은 “분명히 성폭력은 아니었다. 서로의 합의하에 벌어진 일이었다”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에미상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던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며칠 후 첫 데이트 약속을 잡았고, 그렇게 안사리의 아파트에서 처음 만났다. 저녁식사 후 안사리는 여성과 성관계를 시도했다. “너무 빠른 것 같다”면서 여성이 재차 성관계를 거부했지만, 안사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치근댔다. 이에 여성은 불쾌하다는 거부의 신호를 보낸 후 ‘우버’를 불러서 집을 빠져 나왔다. 최근 ‘베이브닷넷’을 통해 이 사실을 폭로한 ‘그레이스’는 “그와의 밤이 어색한 성적 경험이었는지, 아니면 성폭력이었는지를 두고 고민했다. 분명 성폭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사적 경험을 공개처벌하는 것은 전체주의다.” 카트린 드뇌브 등 프랑스 문화예술계 여성 100여 명은 ‘미투운동에 반대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안사리는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았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또한 “‘그레이스’라는 여성은 안사리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주지 못해 화가 나있는 것 같다”라고도 말했다.
또한 ‘애틀랜틱’은 “이 나라가 택시 하나를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는 어린 여성들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라고 비꼬면서 “‘그레이스’라는 여성과 이 온라인 매체가 만든 것은 3000자 짜리 ‘리벤지 포르노’다”라고 말했다. ‘리벤지 포르노’란 헤어진 연인이 복수를 하기 위해 퍼뜨리는 음란 동영상을 말한다.
보수 언론들 역시 거들었다. ‘폭스뉴스’는 “안사리 스캔들은 미투운동이 막바지에 달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징후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여성들의 말을 믿어야 하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불쾌한 섹스와 성폭행, 그리고 미숙한 성행위와 난폭한 성행위는 구분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에서는 공개적으로 ‘미투운동에 반대한다’는 공동 성명이 발표돼서 화제가 됐었다. 지난 1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기고된 “성의 자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유혹할 수 있는 자유를 지지한다”라는 제목의 이 공동 성명서에는 카트린 드뇌브 등 프랑스 문화예술계 여성 100여 명이 서명했다. 이들은 미투운동이 도를 넘어섰다고 비난하면서 “사적인 경험을 공개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이는 마치 전체주의와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또한 성명서에서 이들은 “성폭행은 범죄다. 하지만 끈질기고 서툰 방법으로 여자를 유혹하는 행동은 범죄가 아니다. 용감하다는 것은 남성우월적인 공격 행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한 “미투운동이 성폭행 가해자들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공개 처형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한편 “여성들은 성폭행과 유혹을 구분할 만큼 현명하다” “미투운동은 오히려 성적인 표현과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곧 비난이 쏟아졌다. 이들이 성폭력과 유혹을 구분하지 못하고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사회당 후보로 출마했던 프랑스 여성 정치인인 세골렌 루아얄은 “우리의 위대한 카트린 드뇌브가 이런 충격적인 공개 성명에 동참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