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제2순환도로 1구간 전경.
광주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5일 제2순환도로 1구간 사업재구조화 협상 실무를 담당했던 전직 광주시 간부 공무원 A 씨를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A 씨에게 수천만 원을 건넨 B 씨에 대해서도 뇌물공여와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 조사 중이다. 경찰은 A 씨가 협상 상대방인 민자 사업자 측에게 협상이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해준 대가로 B 씨로부터 돈을 건네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또 B 씨가 협상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사업자 측과 사업재구조화를 위한 사업타당성 용역을 맺은 민자사업 전문가 C 씨와도 모종의 돈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경찰은 B 씨가 A 씨에게 건넨 돈의 흐름을 추적한 결과, C 씨에게서 자금이 흘러나온 정황을 잡았다.
경찰 수사로 금품이 오간 배경이 된 광주 제2순환도로 사업재구조화도 도마에 올랐다. 2001년 완공된 제2순환도로 1구간(두암IC~소태IC·5.67㎞) 공사비는 민자 1731억 원과 시비 1132억 원 등 모두 2863억 원이 들어갔다. 1구간은 오는 2028년까지 예상 통행량의 기준을 정하고 85%에 미달할 경우 시민의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최소운영수입보장(MRG) 방식으로 민자 사업자와 계약이 체결됐다. 광주시는 1구간이 개통된 2001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2041억 원을 지불했고, 2028년까지 추가로 4504억 원을 줘야 할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혈세 먹는 하마’인 셈이다. 시는 이처럼 기존 MRG 협약에 발목이 잡혀 매년 수백억 원을 쏟아 붓게 되자 민자 사업자 측에 재협상을 요구했다.
이후 광주시는 민자 사업자와 6개월간의 협상 끝에 지난 2016년 12월 제2순환도로 1구간에 대한 보조금 지원 방식을 ‘최소운영수입보장방식(MRG)’에서 ‘투자비 보전방식’으로 변경하는 실시협약을 완료했다. 하지만 정작 시와 민간 사업자간 협상은 지분 매각을 거부하는 사업자의 입장을 따르는 이해하지 못할 방식으로 타결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가장 좋은 방안이었던 공익처분 비용보전 방식은 협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협상에는 광주시와 자문을 맡은 전남대 산학협력단, 운영업체와 대리인 등이 각각 참여했고, 시는 2016년 12월 16일 1구간의 민자 사업자인 광주순환도로투자㈜(맥쿼리인프라 지분 100%)와 MRG방식을 투자비 보전방식(MCC)으로 바꾸는 사업재구조화 ‘변경실시협약’을 맺었다. 투자비 보전방식은 사업운영비(투자원금+차입금 이자+관리비)에 실제 운영수입이 미달할 때 재정지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민자사업자 측과 6개월간 협상 끝에 변경실시협약을 맺은 광주시는 “2016~28년 민자사업자에게 MRG 보장으로 3600억 원을 지급해야 했던 것을 MCC로의 사업재구조화를 통해 2400억 원으로 줄이게 됐다”고 밝혔다. 시는 그러면서 “협상력을 발휘해 불합리한 MRG방식을 폐지하고 시 재정 절감방안을 마련해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시 입장에선 ‘잘된 협상’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시민단체 등은 부실한 재협상으로 절감액이 크게 줄었다고 반발했다. 시가 더 유리한 ‘비용보전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맥쿼리인프라의 입장이 반영된 ‘투자비 보전방식’으로 협상을 타결해 대구시가 2000억 원 이상을 절감할 때 광주시의 절감액이 1000억 원에 그쳤다는 것이다. 실제 광주시는 재협상 때 ‘공익처분’이라는 유리한 방안을 스스로 포기했고 당시 운영업체는 실시협약을 위반해 ‘저리의 법인자금을 고리’로 바꾸는 수법으로 손실을 키워 지원금 400억 원 이상을 더 타냈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실제 대응에 나선 광주시는 ‘법인자금 원상회복’ 소송에서 2심까지 승소했다. 또 과도한 재정부담 때문에 ‘민간투자법 47조’에 따라 민간사업자 관리운영권을 취소하는 공익처분이 충분히 가능했다. 굳이 공익처분을 안 하더라도 운영업체를 압박해 유리한 협약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당시 광주시도 유력하게 ‘비용보전방식’을 검토했다. 이 방식은 주주를 모두 교체하고 수익률을 3~5%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대구시는 2012년 범안로 협상 때 이 방식을 도입해 지원금 2010억 원을 절감했다.
참여자치21은 2017년 4월 당시 “광주시가 1구간 협상에서 가장 좋은 절감 방안인 비용보전방식을 버리고 맥쿼리인프라 입장이 반영된 투자비보전방식으로 협상을 타결했다”며 “유사한 협상에서 대구시는 2000억 원 이상을 절감한 반면에 광주시는 1000억 원에 그쳤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광주시는 운영업체가 반대한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이 방식을 포기해 절감액을 대폭 축소시키는 잘못을 범했다. 재협상을 감시해 온 최회용 참여자치21 운영위원은 “운영업체에게 유리하게 협상이 진행돼 혈세 1500억 원 이상을 더 지급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광주시가 민간투자수익률을 9.8%로 높게 잡은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대구시보다 2배나 높고, 광주시가 초기 분석한 적정수익률보다도 훨씬 높아 부담을 가중시켰다. 일각에선 “현재 금융권 이자율이 저금리 구조인데 민자 사업자인 광주순환도로의 100% 투자자인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에서 빌린 차입금의 이자율이 9.8%대로 높은 것은 결국 맥쿼리 측의 연 수익률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광주 참여자치21은 지난 6일 논평을 내고 “광주 제2순환도로 재협상 ‘뒷돈거래’는 시민에 대한 배신이다”며 “사실로 밝혀지면 협약을 파기하고 원점에서 다시 협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광주시는 가장 좋은 절감 방안인 비용보전방식을 버리고 맥쿼리인프라 입장이 반영된 투자비보전방식으로 협상을 타결했었다”며 “뒷돈이 오갔다면 어디까지 흘러갔고 수천억 원 혈세가 걸린 재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광주시의회도 조만간 의원간담회를 갖고 대응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특히 몇몇 의원들은 재협상을 촉구하는 1인 시위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의회 심철의 의원은 “조만간 의회에서 간담회 등을 갖고 대응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현재로선 할 말이 없다”면서도 “뇌물 의혹과 관련 없이 제2순환도로 1구간 재구조화 자체는 문제가 없다. 경찰 수사를 통해서 이 부분이 확인될 것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투자수익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면서 “설령 공익처분이 이뤄졌어도 실효성이 없어 포기했다”고 해명했다.
박은선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