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3월 8일 예정된 비서 성폭행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취소된 가운데 도지사 관사는 문이 닫혀 있다.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6월 정국의 특징은 ‘쓰리(three) 투표’다. 각각의 투표는 표면적으로 독립적이지만,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다. 6월 정국 향배에 따라 특정 투표가 다른 투표를 종속변수로 가둘 수도 있다. 세 개의 게임 중 어떤 선거에서 승리해야만 막판에 웃는 자가 될지도 불분명한 고차 방정식이다. 그만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동성 국면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안희정 파문’은 그 변동성에 불을 지폈다.
이 중 먼저 물꼬를 틀 변수는 개헌이다. 청와대가 여의도에 제시한 개헌 합의 마지노선은 3월 20일이다. 이는 개헌안 공고(20일 이상)→국회 의결(공고일로부터 60일 이내)→국민 투표(의결 30일 이내)의 절차를 역순한 계산법이다. 끝내 여야 합의에 실패할 경우 남은 것은 청와대발 독자 개헌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7일 청와대에서 가진 여야 5당 대표 오찬에서 “국회가 필요한 시기까지 개헌안을 발의하지 않으면 정부가 발의할 수밖에 없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청와대발 독자 개헌 열차의 시나리오는 크게 ▲여야 극적 합의 ▲야당 반대로 발의 무산 ▲국회 통과 실패 ▲국민투표 실시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 등 다섯 가지다. 가장 가능성 낮은 것은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하는 경우다. 민주당은 우원식 원내대표를 필두로 대야 협상에 나섰지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 야권이 ‘관제 개헌’ 프레임으로 맞서 여야 합의는 어려울 전망이다. 청와대 오찬에서도 조배숙 민주평화당·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은 국회 주도 개헌을 주장하며 문 대통령과 결을 달리했다.
문 대통령이 야권의 극한 반발로 독자 개헌안을 접을 수도 있다. 최근엔 정부에 우호적이던 정의당마저 청와대 개헌에 반대하는 기류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경우 정국 구도는 ‘당·청 완패 vs 야권 승리’로 좁혀진다. 정부여당이 패배 이외 얻을 게 없는 이 카드를 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정치공학적 프레임과 관계없이 대국민 약속을 내걸고 개헌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개헌 발의→국회 통과 실패’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집권당 민주당(121석)과 제1야당 한국당(116석) 의석수는 불과 5석에 불과하다. 여기에 바른미래당(30석), 민주평화당(14석), 정의당(6석) 등의 의석수 차이는 50석에 달한다. 김민석 민주연구원장이 제안한 한국당을 제외한 6월 개헌 연대가 성사돼도 개헌 발의 정족수(재적 의원 과반·147석)만 충족할 뿐, 의결 정족수(재적 의원 3분의 2·196석)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야권 한 관계자는 “여당의 6월 개헌 연대는 한국당 20∼30명을 흔들려는 사전 포석”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청와대가 독자 개헌을 접거나, 개헌연대 실패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시나리오는 야권에 호재다. 다만 개헌 가·부결과 관계없이 이 시나리오는 6월 정국까지 판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여당의 국면전환 카드로는 유효할 전망이다.
당·청에 유리한 시나리오는 개헌이 블랙홀로 작용해 국민투표를 할 경우다. ‘안희정 파문’도 덮고 보수 갈라치기에도 성공하는 1석 2조 효과를 볼 수 있다. 청와대 발 독자 개헌의 골자는 국민 기본권과 지방분권에 한정한 ‘최소 개헌’이다. 한국당 등 범야권이 반대할 뚜렷한 명분은 없다. 6·13 지방선거가 ‘개헌세력 vs 호헌세력’으로 양분하면서 당·청이 정국 주도권을 쥔 채 강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 여야가 지방선거 후 개헌 논의에 합의한 뒤 청와대가 이를 수용하는 그림도 가능하다. 이 시나리오 승부는 ‘무승부’다.
개헌 변수가 어느 정도 방향을 결정하면, 정국은 지방선거 프레임 전쟁으로 전환한다. 이 지점의 관전 포인트는 여야 1대 1 구도다. 범진보 vs 범보수 구도의 키는 야권, 특히 서울시장 출마를 놓고 고심 중인 안 전 대표가 쥐고 있다. 안 전 대표의 출마로 무공천을 바탕에 깐 주고받기식 묵시적 야권연대가 현실화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정국 구상차 네덜란드로 출국했던 안 전 대표는 3월 2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자리에서 “당이 요청하면 논의하겠다”며 신중 모드를 이어갔다. 다만 안 전 대표는 바른미래당의 인재영입위원장직은 사실상 수락한 상태다. 정치권 안팎에선 안 전 대표가 ‘인재영입위원장→선거대책위원장→서울시장 출마’ 등 3단계를 통해 지방선거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본다. 시점은 3말4초다. ‘안희정 파문’의 반사이익이 예상되는 점도 안 전 대표의 출마를 재촉할 것으로 보인다.
분당까지 감수한 안 전 대표에게 남은 선택지는 ‘부활이냐, 몰락이냐’의 양자택일밖에 없다. 중간 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몰락한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생존방정식은 무공천 연대 방식 외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정치는 알 수 없지만, (현 국면에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선거연대를 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선 무공천으로 묶일 소재가 많다. 세 개의 투표를 동시에 하는 만큼, 각 진영이 지방선거와 재보선을 놓고 선거연대에 나설 수도 있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는 민주당과 정의당이 충청과 울산 등의 도지사와 재보선을 빅딜하는 범진보 연대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일부 영남권에서 무공천 연대에 나서는 범보수 연대설이 돌고 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현실적으로는 어렵겠지만, (판을 흔드는) ‘연대설’은 끝까지 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 경우 판세는 예측불허다. 판세 전환은 안 전 지사의 본거지 충남에서부터 불고 있다. ‘안희정 파문’으로 선거운동 중단을 선언한 박수현 민주당 충남지사 예비후보는 내연녀 공천 논란에 휩싸이면서 불출마 압박을 받고 있다. 이에 보수진영에선 이인제 전 의원이 등판할 예정이다.
지방선거 구도 변화는 재보선 구도 흐름과 직결한다. 3월 초 현재 재보선 지역은 서울 노원구 병과 송파구을, 부산 해운대을, 울산 북구, 전남 영암·무안·신안군, 광주 서구갑, 충남 천안갑 등 7곳에 달한다. 현역 의원의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확정 땐 10곳 이상으로 늘어난다.
최대 격전지인 서울 송파을에선 민주당 최재성 전 의원과 송기호 지역위원장, 김성태 한국당 비례대표 의원, 바른미래당은 박종진 전 앵커 등이 나선다. 출마 가능성이 제기됐던 안 전 지사는 성폭행 의혹에 휩싸이면서 퇴출 위기에 내몰렸다.
서울 노원병에선 민주당 황창하 지역위원장, 김성환 노원구청장, 한국당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이노근 전 의원, 바른미래당 이준석 당협위원장과 김근식 경남대 교수 등이 하마평에 올랐다. 그간 등판을 고사했던 오 전 시장도 정국 변화로 출마 카드를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전직 대통령 아들도 출마 채비에 나서는 모양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는 부산 해운대와 김경수 민주당 의원이 경남지사에 나설 경우 공석이 될 김해을 도전설에 휩싸였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김홍걸 민주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전남 신안이 포함된 영암·무안·신안 재보선 출마로 기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 건호 씨의 김해을 출마설도 나온다. 재보선의 암초는 공천 갈등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미투 운동으로 각 당의 공천 심사가 깐깐해질 것”이라며 “공천 결과를 둘러싼 갈등도 상상 이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민평당과 통합 가능성은? ‘차기 당대표’에 물어봐! 민주평화당과 통합 여부를 둘러싼 더불어민주당 내부 인식은 극과 극이다. 6·13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다만 ‘포스트 지방선거’ 국면에 선 판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민평당과의 통합을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한 이는 설훈 민주당 의원이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 출신인 설 의원은 지난 2월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민평당과) 합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가지 반대도 많이 있다”며 “대화를 많이 해서 합치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당직을 맡은 한 의원은 “설 의원이 민주당 대표가 된 다음에 추진하라”고 꼬집었다. 한 초선 의원도 “(당의) 문을 열다가 정부 출범 후 없었던 계파 갈등이 확산할까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견해를 달리하는 의원도 있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지방선거 전 통합은 어렵지만, 포스트 지방선거 정국에선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이 의원은 차기 당권 구도에 따라 민평당과의 통합 논의에 물꼬가 트일 것으로 전망했다. 차기 당대표 후보군 중 송영길·김두관 의원은 물밑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윤호중·이인영·이종걸 의원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이석현·김진표·노웅래 의원 등도 하마평에 올랐다. 이 중 친문(친문재인) 핵심 후보는 윤 의원뿐이다. 송 의원은 친문은 아니지만, 이인영 의원과 함께 문재인 정부 신주류인 운동권 그룹의 핵심이다. 송 의원은 호남의 대표성도 있다. 김두관 의원은 원조 친노(친노무현)계, 김진표 의원은 범주류인 정세균계다. 나머지 후보는 비문(비문재인)계다. 친문보다는 비문계 후보가 당권을 잡을 경우 민평당과의 통합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파문도 변수다. 악재 중 악재를 만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고전한다면, 통합 속도가 가팔라질 수도 있다. 민평당 내부 분위기도 엇갈린다. 당 지도부의 공식 입장은 ‘불가’다. 조배숙 대표는 “민주당과의 선거연대는 생각도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정동영 의원은 “호남 민심이 민주당과 민평당 1대1 구도로 재편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지원 의원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선거연대를 전제로 민주당과 연대·연합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민주당과 선거연대에 대해) 의원들 간 삼삼오오 의견을 나누고 있다”면서도 “민주당이 (지방선거를) 너무 자신하는 것 같다. 선거는 오만하면 진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당직자는 “민평당의 희망사항”이라고 잘라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