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권에서는 ‘MB금융지주’라는 말이 나돈 적이 있다. ‘4대 천왕’이 군림하는 금융지주사들은 대통령이 관장하는 회사라는 의미였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감독당국에서는 “영이 서지 않는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이 2016년 9월 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출석하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들 4대 천왕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을 토대로 금융권 수장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 금융권의 공통된 평가였다. 서울대를 졸업한 강 전 회장을 제외한 세 사람은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승유 전 회장은 이 대통령과 같은 경영학과 61학번이다. 어윤대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2년 후배인 경영학과 63학번, 이팔성 전 회장은 법학과 63학번이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이 전 회장은 서울시향 대표를 맡았고, 이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는 상근 경제특보를 맡기도 했다. 강만수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함께 오랫동안 소망교회를 다닌 인연이 있다.
하지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이들의 권세도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4대 천왕은 줄줄이 법정에 세워질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장 먼저 포승줄에 묶이는 신세가 된 인물은 강만수 전 회장이다. 전방위적 비리 의혹으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강 전 회장은 지난해 5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11월 2심에서는 형량이 더 늘어난 5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강 전 회장은 2009년 12월 지인인 김 아무개 씨가 운영한 바이오에탄올 업체 ‘바이올시스템즈’를 ‘해조류 에탄올 플랜트 사업’ 부문 국책과제 수행업체로 선정해 정부 지원금 66억 7000만 원을 지급받게 만든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 경제특보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었던 강 전 회장은 지식경제부에 압력을 행사해 바이올시스템즈를 국책과제 수행업체로 선정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2011년 3월 산업은행장으로 취임한 뒤 임기영 당시 대우증권 사장으로부터 축하금 1000만 원을 현금으로 받은 혐의, 2012년 11월 플랜트 설비업체 W 사에 시설자금 490억 원을 부당대출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유죄로 나왔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합뉴스
검찰은 이 전 회장이 2008년 6월 우리금융 회장에 오른 것이 이러한 청탁의 결과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나 금융감독원장 등의 물망에 올랐지만 임명되지 못했다. 이 전 회장은 하지만 그해 6월 우리금융 회장에 올랐고 2011년에는 연임에도 성공했다. 그는 2013년 4월 박근혜 정부에서 사임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우리금융은 과거 공적자금 투입으로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로 있어 인사에 정부의 입김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회장에 이어 검찰수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로는 김승유 전 회장이 꼽힌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KEB하나은행이 다스의 불법자금을 2008년 대선자금으로 세탁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승유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막역한 친구로 이 전 대통령 측의 부탁을 받아 이를 주도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김 전 총무기획관은 이미 국정원의 특별활동비 상납을 방조한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또 1월 KEB하나은행 경주지점에 이어 2월 하나금융전산센터, KEB하나은행 본점 전산부 등을 압수수색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유 전 회장은 2011년에 이상득 전 의원의 청탁을 받아 당시 부실화되고 있던 미래저축은행의 유상증자에 하나캐피탈이 참여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은 당시 이와 관련해 김승유 전 회장에게 ‘주의적 경고’를 내렸다.
김 전 회장의 위세는 4대 천왕 중 적어도 금융권에서는 감히 필적할 자가 없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하나·외환은행 합병 작업 당시 김승유 회장이 금융위원장이던 김석동 위원장을 수시로 호출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 수장이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고 말했다. 더구나 김 전 회장은 밤에도 청와대에 자주 들어가 MB를 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소문이 확대되면서 김 전 회장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고 한다.
어윤대 전 회장은 아직 뚜렷한 정황이나 혐의가 나오고 있지 않지만 MB 수사가 확대되면 어떤 식으로든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어 전 회장은 MB가 대선을 치를 때 고대 동문들을 결집시켜 표로 밀어줬다는 사실 때문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 전 회장은 교육부총리에 가려고 했지만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면서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했다. 이후 KB금융 회장 후보로 거론될 당시 “여기(KB금융 회장 자리) 가는 것은 VIP에게 얘기하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밝힐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