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오래전부터 합병설이 제기돼온 일부 계열사의 경우 최근 분주히 사옥을 이전해 합병설에 무게를 싣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삼성엔지니어링, 삼성메디슨과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가 대표적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최근 서울 상일동 삼성엔지니어링 사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삼성메디슨과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는 판교에 있는 삼성물산 사옥으로 함께 이전할 계획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서울 상일동 삼성엔지니어링 사옥으로 자리를 옮긴다. 3월 중순부터 이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삼성엔지니어링 홈페이지 캡처.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상일동서 한솥밥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설이 다시 불거진 가장 큰 이유는 두 회사가 최근 동거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2016년 3월 경기도 성남시 판교 알파리움타워로 이전하면서 5년을 계약했으나 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전 입주 2년 만에 다시 이전을 추진한다. 이전하려는 곳은 공교롭게도 서울 강동구 상일동 삼성엔지니어링 사옥이다. 현재 사옥 이전을 위한 리모델링 작업이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3월 중순부터 이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삼성물산의 ‘특수관계인으로부터 부동산임차’ 공시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삼성엔지니어링이 위치한 상일동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를 올해 1월 1일부터 오는 2022년 12월 31일까지 임차했다. 보증금은 42억 6200만 원이며 연간임차료는 51억 1400만 원이다. 삼성물산 측은 임차료 절감 차원에서 경영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사옥을 이전한다고 밝혔다. 상일동 사옥의 임차료가 판교 사옥의 절반 수준이라는 것.
그러나 지난해 9월 기준 삼성물산 건설부문 직원이 6000여 명인 것을 고려할 때 대규모 인원 이동에 따른 이사 비용과 직원들의 거주지 이전, 출퇴근 불편 등의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삼성물산이 사옥을 이전하는 것이 임차료 때문만은 아닐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관계자는 “대규모 이동으로 일부 불편이 있을 수 있으나 이를 모두 감안하고 이전하는 것”이라며 “합병에 대해서 내부 논의는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더욱이 삼성물산은 올 초 건설·상사·리조트 부문별 대표 인사를 단행하며 이영호 삼성물산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 사장은 삼성 기업구조조정본부 상무와 전략기획실 상무,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 전무를 거친 재무전문가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에는 삼성물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으며 IR팀을 지휘해 합병을 이끌어낸 인물로 꼽힌다.
인사 직후 신설된 삼성물산의 ‘EPC 경쟁력 강화 TF’ 또한 합병설을 부추긴다. EPC는 설계(engineering)와 조달(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의 영문 첫 글자를 딴 말로, 대형 건설 프로젝트나 인프라사업 계약을 따낸 사업자가 설계와 부품·소재 조달, 공사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형태의 사업을 뜻한다. ‘EPC 경쟁력 강화 TF’는 비전자 계열사인 건설 부문과 삼성중공업 등을 아울러 계열사 사업 영역을 조율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TF팀장을 맡은 김명수 엔지니어링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은 옛 미래전략실 출신으로 과거 무산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작업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합병설과 함께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주택사업 매각설도 꾸준히 제기된다. ‘래미안’ 브랜드 자체를 KCC건설에 매각한다는 것. KCC가 매입사로 거론된 이유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과 엘리엇 간 경영권 분쟁에서 KCC가 삼성물산 지분 5.7%를 매입하며 ‘백기사’를 자처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매각설 관련해 삼성물산이 부인하면서 논란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2015년 서울시 강남구 서초무지개아파트 수주전에 참여한 이후 국내 주택사업 수주 활동을 중단했으며, 2016년 9월 조직개편을 통해 주택사업본부를 본부 단위에서 팀 단위로 축소했다. 업계에서 ‘래미안’ 철수설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강하게 부인하니 두 회사가 합병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줄 수밖에 없지만, 삼성물산이 최근 4~5년 주택사업 수주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의문”이라며 “건설사가 수주전에 참여하지 않으면 사실상 발전 동력이 없는 것인 데다 그렇다고 삼성물산이 주택사업 외 토목 등도 많이 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래미안 매각마저 쉽지 않은 일로 보고 있다. ‘삼성’이라는 장점과 의미가 있는 브랜드인데 매각한다면 이 장점과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에 위치한 삼성물산 건설부문 전경. 임준선 기자
#건설부문 빠진 삼성물산 공실에 ‘삼성메디슨·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 나란히 입주
삼성메디슨과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도 함께 판교로 사옥 이전을 결정하면서 통합설이 불거졌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이전하면서 생긴 공실에 삼성메디슨과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가 들어가는 것. 삼성메디슨과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는 각각 초음파 진단기기 사업과 영상진단기기 사업을 주력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통합할 경우 의료기기 분야에서 다양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15년 의료기기사업부장(사장)으로 임명된 전동수 사장이 2016년 삼성메디슨 대표로 임명돼 겸임 중인 것도 두 회사의 합병설에 힘을 보탠다. 전 사장은 삼성SDS 사장 시절 삼성SDS와 삼성SNS의 합병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2010년 삼성전자는 의료기기 사업을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하고 2020년까지 이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삼성전자는 초음파 전문기업 메디슨을 인수하면서 의욕을 보였으나 삼성메디슨이 줄곧 적자를 이어가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삼성이 메디슨을 되팔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삼성메디슨은 2016년 4분기부터 흑자 전환, 올해 연간 흑자가 유력해 보일 만큼 실적이 개선됐다. 삼성메디슨 관계자는 “의료기기사업부와 함께 이전하는 것은 맞지만 합병은 아니다”라며 “의료기기사업부의 모든 인원이 이동하는 게 아니라 이미 메디슨과 함께 일하고 있었던 파트들이 함께 이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메디슨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삼성메디슨은 전부 판교 사옥으로 이동하지만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는 실험실과 제조시설 등을 제외한 분야만 이동한다. 또 삼성메디슨과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는 현재 마케팅 등 다수 파트에서 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대표 겸임은 예전부터 있었다는 것. 함께 이전하는 것 말고 새로울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삼성메디슨 관계자는 “함께 이전하고 대표를 겸임하면서 합병설이 불거진 것 같은데 합병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며 “(삼성메디슨이) 이제야 적자에서 벗어난 상황이라 합병을 해도 바로 시너지가 발생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