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 속에서 방송가에서는 “가족 예능의 폐해가 크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조민기와 조재현이 SBS 예능 ‘아빠를 부탁해’에서 딸을 비롯해 가족과 함께 얼굴을 비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과 관련된 기사에 댓글에 보면 “딸과 그런 모습을 보여주던 이면에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모습이 있었다” “내 딸은 소중한데 남의 딸은 소중하지 않더냐” 등 뼈아픈 지적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이런 비난이 가해자를 넘어 가해자의 가족으로 번지며 가족 예능이 가진 양면성에 대한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
# 가해자의 가족에도 따가운 시선
조민기는 ‘아빠를 부탁해’ 속에서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딸에게 더없이 살가운 아빠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빠를 부탁해’에서는 딸을 자신이 근무하던 청주대학교 학생들에게 인사시키는 장면도 담겼다.
12일 경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있던 그는 당초 6일 소환 통보를 받았으나 딸의 대학원 입학식을 이유로 연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소환을 3일 앞두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외국에 있던 딸은 10일 급히 귀국해 조민기의 빈소를 지켰다.
이번 사건이 불거진 후 조민기의 딸과 관련된 기사가 쏟아졌다.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하며 얼굴을 공개했기 때문에 일반인임에도 모자이크 처리 없이 사진이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단지 가해자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참을 수 없는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SBS ‘아빠를 부탁해’ 방송 화면 캡처
조재현의 딸의 경우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활동 초기에는 아빠의 후광을 입었으나 이후 안정된 연기력을 보이며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연기자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여부에 물음표가 달렸다. ‘조재현의 딸’이라는 타이틀이 자랑에서 숨겨야 하는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들 역시 가족의 잘못으로 인해 충분히 피해를 입고 있다. 여기에 대중적 질타까지 더해지며 2차 피해가 크다.
이는 가족뿐 아니라 가해자의 지인에게도 해당된다. 조민기의 빈소에는 동료 연예인들의 발길이 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8년간 연기 활동해 온 그의 빈소라고 하기에는 쓸쓸했다. 앞서 배우 정일우, 유아인 등이 자신의 SNS에 조민기를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가 된서리를 맞은 것을 본 연예인들이 조문조차 꺼렸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조문을 다녀온 동료 배우 조성규는 지난 12일 자신의 SNS에 “조민기 빈소에 다녀왔다. 하지만 그가 28년간 쌓아온 연기자 인생의 그 인연은 어느 자리에도 없었다. 뭐가 그리 두렵냐”며 “스타 경조사 때마다 카메라만 쫓던 그 많은 연기자는 다 어디로 갔냐”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바로 이런 부분이 조민기를 더욱 압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신을 향한 비난은 감수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가족과 지인들까지 피해 입는 모습을 보며 심적 고통이 컸다는 의미다.
한 방송가 관계자는 “가족 예능은 조민기와 조재현의 대중적 인기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 작품이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독이 됐다”며 “대중에게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무게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 ‘양 날의 칼’ 가족 예능, 왜 출연하나?
조민기, 조재현 이전에는 배우 엄태웅이 성추문에 휩싸이며 그의 가족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은 적이 있다. 2016년 성매매 사실이 드러난 엄태웅은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아내, 딸과 함께 출연한 전력이 도마에 올랐다. 그의 아내가 SNS에 올리는 사진과 글은 끊임없이 기사로 양산되며 고통이 가중됐다.
이에 앞서 ‘자기야의 저주’라는 말이 있었다. SBS 예능 ‘자기야’에 출연했던 연예인 부부가 잇따라 파경을 맞으며 생긴 표현이다. 방송인 LJ-이선정 부부, 개그맨 양원경 부부, 개그맨 배동성 부부, 배우 이유진 부부, 배우 이세창-김지연 부부, 귀순배우 김혜영-김성태 부부 등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부부의 속내를 드러낸 후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또 다른 방송가 관계자는 “‘자기야’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이혼하게 됐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면서도 “부부 간의 내밀한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이야기한 후 주변의 시선과 간섭 등이 많아져 불화가 심화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처럼 가족 예능은 적잖은 역기능을 가져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인들이 가족 예능 출연을 결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MBC ‘아빠 어디가’의 성공 이후 연예인이 자녀를 비롯해 가족을 공개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몇몇은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큰 인기를 얻으며 전성기를 맞았다. 연예인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도 스타덤에 오르며 의도치 않았던 큰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 가족 예능에는 연예인들이 앞다퉈 출연하곤 했다.
하지만 해가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가족들을 모두 대중에 노출시킨 만큼 그에 따른 부작용과 사회적 책임 역시 커졌다. 자아가 형성되기 전에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몇몇 연예인의 자녀들은 적잖은 고통을 호소해 방송 출연을 접기도 했다. 또한 연예인들은 자신의 이름 외에 ‘OOO의 남편’ ‘OOO의 아빠’ 등으로 불리며 그에 상응하는 도덕성과 책임감을 요구받기 시작했다.
가족 예능에 출연했던 한 남성 연예인은 “몇몇 연예인들이 ‘가족은 절대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유를 가족 예능에 출연한 후에 비로소 알게 됐다”며 “당장의 인기와 관심은 좋을 수 있지만, 가족 모두가 대중에게 알려져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고 불미스러운 일이 불거졌을 때 가족 모두가 비난의 대상이 되면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