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하 그렇군!’ 아이들이 숲해설가의 ‘애기똥풀’ 설명을 듣고 있다. 우태윤 기자 | ||
그래서 수도권에서는 아예 떠나는걸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생각을 돌려보면 가까운 곳에 답이 있다. 빌딩과 아파트만 들어찬 것 같은 서울도 북한산국립공원을 비롯해 관악산 인왕산 수락산 도봉산 등 아기자기한 명산과 공원들이 많다.
수도권 시민이라면 한 번쯤은 이 산들을 올라봤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저 ‘산이니까 좋다’라는 생각만으로 때가 되면 한 번씩 오른, 그것이 전부는 아닐까. ‘이름 모를 꽃과 나무들’만 가득한 타성적인 산행에서 벗어나 산에 들어선 나무와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산행을 한 번 떠나보자. 아직은 생소한 ‘숲해설가’들의 안내로 서울의 숲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 휴일마다 무료로 열리고 있다.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에게 다가가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노래도 있듯이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가며 푸른 숲을 호흡하는 가족나들이다.
▲ ‘명상의 숲’에서 나무의 기를 받아들이는 등반객들. | ||
서울시 노원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그리고 남양주군 별내면의 경계에 위치한 수락산(637m)은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너끈히 3~4시간 정도는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임에도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비하면 등산로는 다소 여유가 있다.
다양한 등산로가 각기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기 때문. 동쪽으로는 금류, 옥류, 은선폭포가 있어 시원한 물줄기를 따라 산행할 수 있고, 능선을 따라가면 이웃한 불암산과 함께 더 늦기 전에 철쭉꽃길을 걸을 수도 있다.
곳곳에 솟은 바위들은 그 자체만으로 한 폭의 그림이거니와 산행도중 잠깐 쉬어앉아 주위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넉넉한 쉼터가 되기도 한다. 산은 그리 험한 편은 아니지만 정상 주위에는 바위가 많으므로 어린 아이들과 함께라면 능선따라 돌아가는 길을 택해도 좋겠다.
수락산을 오르다 보면 이야기가 있는 명소들을 만나게 된다. 지하철 7호선 장암역 방면 길에는 조선 숙종 때 인현왕후 폐위를 반대하다 유배된 박태보를 기리는 노강서원, 숙종 때 실학자 박세당이 지은 절 석림사가 자리한다.
4호선 당고개역쪽 코스에 위치한 학림사는 학이 알을 품은 것과 같은 형상의 땅에 세워졌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신라 문무왕 때(671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역사 깊은 절이기도 하다.
수락산에서 가장 큰절인 흥국사는 조선시대 선조가 그 부모인 덕흥군 내외를 모시기 위해 지은 원찰로 후대에 흥선대원군이 즐겨 찾은 곳으로 유명하다. 영산전의 대원군 친필 현판과 조선 후기 양식인 대웅전을 비롯해 옛 모습이 느껴지는 탱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석조 미륵입상을 간직한 내원암에는 세조가 단종을 내쫓을 때 속세를 떠난 매월당 김시습이 봉우리 이름을 붙여 놓았다는 현판이 전해진다. 꽃과 나무, 돌 하나 비석 하나마다에 새겨진 사연을 알고 나면 수락산 자락마다에는 서울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진 듯하다.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에서 내려 현대아파트를 지나 노원골로 들어가면 수락산 삼림욕장이 있다. 일요일 아침 10시. 등산로 입구에 커다란 현수막이 보이고 그 너머로 80명의 사람들이 15명씩 한팀이 되어 숲해설가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수락산 숲속여행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이다.
서울의 ‘숲속여행 프로그램’은 인왕산 남산 아차산 등 서울의 9개 산에서 매주 4~5군데씩 격주로 진행된다. 산의 역사와 문화, 자연생태 등을 배우고 체험하는 내용이다. 프로그램은 해당지역 구청에서 주관한다.
이미 여러 번 올랐던 산이라도 숲해설가들의 안내를 받으며 걷는 산은 그 느낌부터가 달라진다. 그저 막연한 호감으로 걸었던 산이 하나 하나 의미를 갖고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나무와 풀, 생물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색다른 재미가 있다. 때문에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 참여가 많다. 보통 예약에 의해 한 곳에서 5개 팀 정도가 구성되는데, 아이들이 속한 팀과 어른만으로 구성된 팀을 나누어 연령에 맞는 차별화된 설명으로 흥미를 더한다.
수락산의 숲속여행은 올해 4월 시작해 매월 2, 4주째 일요일 격주로 노원골과 수락골에서 각각 출발하는 두 개의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 노원골 코스는 임간휴게소를 시작으로 냇가, 향토꽃 전시장, 명상의 숲, 밤나무숲, 물오리나무숲, 아카시아나무숲, 바위 밑 샘터까지 2~3시간에 걸쳐 약 3km를 탐방한다.
숲속여행은 애기똥풀, 민들레 등 쉽게 볼 수 있는 풀에서부터 시작해 벌레 먹은 잎 하나까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애벌레들도 생각이 있어요. 지금 잎이 연할 때는 많이 먹고 크지만 잎이 강해지고 독성이 생기면 그만 먹고 성체가 되는 거예요”라는 숲해설가의 설명에 아이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산길을 따라 가면서 벚나무 구별법, 산초나무와 호랑나비의 관계, 물을 정화시키는 고마리풀 이름에 얽힌 이야기 등 미처 모르던 숲속 이야기에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푹 빠져들었다.
향토꽃 전시장은 실체는 모른 채 차로만 마시던 둥글레, 은방울꽃, 금낭화, 매부리발톱 등 사진 속에서만 보던 식물들로 가득하다.
자작나무 앞을 지날 때 누군가 “꿩이다!”하고 나지막히 외친다. 모두들 숨을 멈추고 살펴보니 바로 앞 나무 사이로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장끼 한마리가 유유히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운이 좋으면 동물원에서나 보던 야생동물을 실제로 보는 행운도 얻게 된다.
다음 코스인 냇가에서는 도롱뇽의 알과 올챙이, 바위 밑 생물들을 관찰하면서 물속 생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명상의 숲’에 다다랐을 때 사람들은 숲해설가의 지시에 따라 각자 마음에 드는 나무 앞에 섰다. 그리고는 나무를 안고 저 아래 땅 속 물을 마신다는 기분으로 심호흡를 반복한다.
“깊게 숨을 쉬세요. 땅 속의 물을 빨아들인다는 기분으로 숨을 들이쉬세요. 쭈우욱, 쭉∼”. 이렇게 나무의 양기를 받아들이며 호흡을 하면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숲속의 풍부한 음이온이 몸의 피로를 씻어준다. 나무가 내뿜는 ‘테르펜’이라는 물질은 숲의 향기를 만들어 내는데, 이 향기는 머리를 맑게 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바위밑 샘터에 이르러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자 2시간30분간의 숲속여행이 벌써 끝났다. 프로그램 후에는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 사람, 조금 더 올라가 보겠다고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 하산하는 사람 등 각자의 사정에 따라 흩어진다.
임희경 프리랜서
▲ 냇가에서는 도롱뇽 알, 올챙이 등 물속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 ||
삼림욕을 할 때는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걸으면서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것이 좋다. 계절은 요즘과 같은 봄과 가을이 가장 좋으며, 하루 중에는 오전 11∼12시가 피톤치트의 효과가 가장 높다. 될수록 가벼운 행장으로 나서는 것이 좋지만 물과 간단한 음료, 먹을 것 정도는 가져가야 한다.
옷차림은 몸에 달라붙는 것보다는 얇고 헐렁한 것으로 입고 신발은 운동화를 신는다. 특히 여름에는 벌이나 각종 벌레에 물릴 수 있으므로 긴팔을 입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수락산 오르기(총 3km/ 3시간/ 02-950-3395)
①노원골 코스:휴게소-냇가-향토꽃 전시장-명상의 숲-물오리나무숲-아카시아나무숲-바위밑 샘터
②수락골 코스:만남의 광장-우우당-국수나무 군락지-산신제터-물오리나무숲-밤나무숲-물개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