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한니발 버리스라는 코미디언이었다. 그는 2014년 10월 16일, 필라델피아의 ‘크로카데로’라는 클럽에서 빌 코스비를 소재로 삼았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코스비는 보수적이며 도덕적인 셀러브리티의 이미지였고, 종종 흑인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옷 입는 방식을 비난하곤 했다. 버리스는 이 부분을 지적하며, “그래, 그래서 당신은 여자들을 강간한 건가?”라고 멘트를 날렸다. 객석의 관객들은 버리스의 말을 도발적인 조크 정도로 여기며 웃었다. 이에 버리스는 “집에 돌아가면 꼭 구글에 들어가 ‘빌 코스비 강간’(Bill Cosby rape)을 검색해보라”고 이야기했다.
화보 촬영에 참가한 빌 코스비 성범죄 피해자 35명. 사진=뉴욕 매거진 홈페이지 캡처
사실 그는 이 레퍼토리를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서 6개월 동안 써 먹었지만 그 어떤 사회적 반응도 없었다. 그러나 ‘크로데카로’에서의 공연 장면이 필라델피아 매거진 웹사이트에 오르면서 서서히 대중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코스비의 과거 행적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공론화됐다. 2015년 7월 ‘뉴욕타임스’에 공개된 안드레아 콘스탠드와 코스비 사이의 합의 내용은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콘스탠드는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해 고소를 했고, 코스비는 합의금을 주고 무마했던 것. 당시 코스비는 자신의 행동을 인정했는데, 그 속기록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즉 2014년에서 2015년 사이에 수많은 여성들의 고발이 있었고, 총 59명의 여성이 법적 조치를 취했다. ‘뉴욕’ 매거진은 36명의 피해자에 대한 기사를 실으며 35명이 참여한 화보를 찍기도 했다. 고발자 중엔 미성년자인 15세 때 코스비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람도 두 명이나 있었다. 패턴은 똑같았다. 약을 먹인 후 정신을 잃은 여성을 강간하거나 추행했던 것. 그의 차엔 다양한 마취제, 신경안정제, 수면제 등이 들어 있는 드럭 컬렉션이 있었다. 약에 의한 성폭력은, 특정 대상을 노리고 철저히 계획에 의해 행해진다는 점에서 더욱 악독한 것이었다.
성폭력의 대상은 다양했다. 자신이 경영하는 레스토랑 종업원이 아파서 조퇴한다고 할 때 친히 데려다 주겠다고 한 후 으슥한 곳에 차를 대고 약을 권할 때도 있었다. 오디션을 보는 호텔 방에서, 긴장을 풀어주겠다며 커피를 권하기도 했다. 자신이 호스트인 라스베이거스 쇼의 댄서에게 모델 커리어를 만들어주겠다며 유혹할 때도 있었다. 재즈 바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도 있었고, ‘코스비 가족’의 엑스트라도 있었다. 알고 지내던 지인도 예외는 될 수 없었다. 방송사 스튜디오 한구석에서 오럴 섹스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종종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파티를 열곤 했는데, 이곳은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때론 목표로 삼은 사람을 자신의 집에 파티가 있다며 초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스비의 파티에 도착한 사람은, 파티 같은 건 없고 그 큰 저택에 자신과 코스비만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곤 인심 좋게 생긴 유명인이 주는 음료수를 마시곤 정신을 잃었다. 황당한 건, 합의에 의한 관계에서도 코스비는 반드시 약을 사용해 여성의 정신을 잃게 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는 로맨스에 기반한, 정상적 의식을 지닌 인간과 섹스를 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쉼 없이 고소와 고발과 증언이 이어지자 빌 코스비의 변호사인 마티 싱어는 미디어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각종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무분별하게 여성들의 주장을 싣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언론이 여성들에게 아첨하고 있으며, 진실과 무관한 기사를 비양심적으로 쏟아내고 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계속 이어졌고 소송은 형사와 민사를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으며 도대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빌 코스비 사건 이후 미국 사회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긴 세월 동안 존경 받았던 엔터테이너 빌 코스비는 바닥을 알 수 없이 추락했고, 그에게 수여됐던 수많은 훈장과 메달과 명예 학위들은 모두 박탈되었다. 온타리오를 시작으로 네바다, 콜로라도, 오레곤, 캘리포니아 등의 주에서 관련 법령이 새로 제정되었다. 간혹 그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계략이라는 음모론자도 있었지만, 빌 코스비라는 거인의 추악한 과거를 가릴 순 없었다. 그리고 2017년, 코스비 사건이 일어난 지 3년 만에 하비 와인스틴 사건이 일어났고 지금 전세계는 ‘미투’ 운동의 열풍 속에 휩싸인 상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