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들은 우리사회 성폭력 사각지대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대부분 이주여성들은 ‘불안정한 체류’와 ‘여성’이라는 이중 차별을 겪는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2016년 취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캄보디아 이주여성노동자 A 씨는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도에 위치한 한 사업장의 사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자 A 씨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그 사이 사장은 성추행과 성폭행을 지속적으로 했다. 피해자는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소용 없었다. 견디다 못한 피해자는 사촌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그는 사촌 언니의 도움으로 쉼터에 입소해 법률 지원을 받게 됐다.
사업장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이 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또 있다. 가해자를 피해서 다른 사업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업주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미등록 신분(불법체류자)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캇소파니 캄보디아공동체 활동가는 “이주여성노동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증해야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한국어도 잘 못하고 한국의 법도 잘 알지 못 하는 상태에서 피해 증거를 모으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며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캇소파니는 사업장의 기숙사 시설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사업장 기숙사 시설이 여성과 남성이 분리되지 않아 이주여성노동자가 이주남성노동자로부터 성폭행 당한 사례도 있다”면서 “남녀로 분리된 공간도 없이 한 공간을 사용하게 하기도 하고 설사 분리 돼 있더라도 잠금 장치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태국 여성 B 씨는 마사지 숍에서 일을 하면서 성매매를 강요 받았다. 이는 비단 B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태국 여성들은 3개월 마사지 일로 월 150~200만 원을 벌고 다시 태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한국 에이전시와 태국 에이전시의 말만 믿고 마사지 업소로 가게 된다. B 씨는 위치도 모르는 가게에서 사장에게 1차 성폭행을 당하고 하루에 5~7명의 손님을 받으라고 강요 받았다. 이를 거부하면 사장은 비행기 값과 에이전시 비용 등 1000만 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내라고 협박하기도 한다.
니감시리 스리준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는 “한 태국 여성은 자궁 수술을 받고 채 한 달이 안 됐는데도 성매매에 이용당했다”면서 “피해자들의 2차 피해 또한 심각하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면 ‘한국에 가면 태국에서 버는 것보다 수십 배의 돈을 번다고 할 때 성매매란 것을 아는거지’라는 비난의 화살이 돌아온다”고 밝혔다.
가족 사이의 성 범죄도 심각하다. 2016년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C 씨는 결혼식을 위해 아버지와 오빠, 여동생을 제주도로 초청했다. 비극은 결혼식 4일 전에 일어났다. 여동생이 형부 될 남성한테 성폭행을 당했다. 남자는 필리핀 처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징역 7년의 실형을 14일 선고했다.
베트남 이주여성 D 씨의 여동생은 언니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형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이에 피해자의 언니 D씨는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아이 3명과 피해자를 데리고 쉼터에 입소했다. 그러나 남편에게 의존해야 체류 연장을 할 수 있고 외국인 신분으로 자녀 3명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귀가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D 씨의 예는 이주여성들의 현실이 얼마나 냉혹한 지 여실히 보여준다. 결혼이주여성은 가족이 해체될 경우 지원과 보호를 받기 어렵다. 남편의 신원보증이 없으면 체류 연장조차 하기 어렵고, 체류 기간이 만료되면 미등록 신분(불법 체류자)이 되기 때문이다.
2015년 쉼터에 입소한 베트남 이주여성 E 씨는 남편에 의해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요구 받았다. 심지어 산부인과 치료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성관계를 강요받았다. 그녀는 이혼을 하면 더 이상 한국에 살 수 없을 것 같아 고통을 참았다.
자녀가 없는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배우자의 귀책사유로 이혼 판결을 받아야 한국에 체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주여성이 증명할 수 있는 증거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레티마이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는 “한국말이 서툴며 한국의 법을 잘 모르는 이주여성이 폭력 상황에 대처하고 녹취나 사진을 찍는 등 증거 자료를 모으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주여성들의 순수한 호기심을 악용한 사례도 있다. 중국인 여성 F 씨는 한국 문화를 더 깊이 알고자 한국어학당에 등록했다가 가해자를 만났다. 가해자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던 F 씨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시켜 준다는 핑계로 외진 곳으로 유인했다. 가해자는 식사자리에서 술을 강요했고, 피해자가 술을 마시지 않자 혼자 술을 마신 뒤 음주운전을 핑계로 근처 모텔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가해자는 F 씨에게 폭행과 협박을 동반한 성폭행을 했다. 6시간 남짓한 폭행을 당하고 겨우 도망쳐 나온 뒤 F 씨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지인의 도움으로 용기 내 경찰에 신고했으나 소통의 어려움으로 조사가 잘 이뤄지지 않은데다 도리어 가해자는 그와 연인 사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80회 이상 심리 상담을 받아야만 했다.
동애화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활동가는 “이주여성들에게 가해자들은 한국에서 믿고 의지했던 남편이고 친구고 상사였다. 그런 이들에게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본인의 욕구를 채웠다”면서 “한 개인의 잘못된 욕망으로 한 여성의 인생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으며, 나라 이미지를 흐려 놓았다”고 비판했다.
니감시리 스리준 활동가는 “이주여성들의 성폭력 가해자들은 이제까지 미투 운동의 가해자들처럼 유명인들이 아니라, 마사지 업체 사장, 공장 사장, 감독관, 농장사장 같은 평범한 한국인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피해자가 이주 여성이라는 사건에는 관심을 덜 가지게 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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