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자신사퇴했지만 금감원을 둘러싼 의혹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가상통화 대응방안 관련 긴급 현안보고를 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12일 금감원의 리더인 최흥식 전 원장이 갑작스럽게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최 전 원장은 하나금융지주 사장 재직 시절인 2013년 하나은행에 입사 지원서를 낸 대학 동기의 아들 이름을 인사 담당 임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 전 원장은 “부하 직원에게 원칙대로 처리하되 공표 전에 결정된 내용만 알려달라고 했다”며 “당시 최종 합격 발표 전 덕담 차원에서 합격 사실을 알려줬다”고 말했지만 여론은 악화됐다. 결국 그는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다음날인 13일에는 수장을 잃은 금감원이 갑자기 칼을 빼들고 나섰다. 금감원은 이날 특별검사단을 구성해 해당 의혹을 전면 재점검하겠다고 선언했다. 특별검사단은 최성일 전략감독담당 부원장보를 단장으로 검사총괄반, 내부통제반, IT반으로 조직됐다. 금감원은 향후 3주간 하나은행 현장검사를 거쳐 2013년 채용비리 의혹을 집중 점검하기로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이처럼 정면돌파 의사를 밝힌 상태지만 금융권에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가 더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은행권 채용비리 검사를 주도했던 일부 임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금감원은 채용비리 의혹 검사를 진행할 당시 2015~2017년 3년간을 대상으로 했는데, 이는 2012~2017년 5년간을 들여다봤던 정부의 채용비리 검사와 시점이 달랐다. 문제는 공교롭게도 금감원이 대상에서 제외한 기간은 최흥식 전 원장이 하나금융 사장으로 재직했던 시기라는 점이다. 최 전 원장의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금감원의 고의적인 은폐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금융권에서는 당시 은행권 채용비리 검사를 주도한 인물인 A 부원장보의 이름이 거론된다. A 부원장보는 검사 기간 선정 등 작업 전반을 주도했다. 특히 그는 최 전 원장 부임 직후 실시된 금감원의 인적쇄신을 통해 부원장보에 오른 인물이다.
최 전 원장은 지난해 10월 부임한 지 한 달여 만에 부원장보 9명을 전원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임직원 비위 혐의를 담은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된 데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금감원 주변에서는 ‘예상 밖의 인물’이 임원에 올랐다는 말이 퍼져나갔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그의 주도하에 금감원이 최 전 원장의 채용비리 의혹을 덮으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최흥식 전 원장이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역공을 받았다는 말도 적지 않다. 사진은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해 9월 청와대의 장고 끝에 문재인 정부 초대 금감원장으로 최흥식 전 서울시향 대표가 임명될 때부터 금융권에서는 말이 많았다. 애초 금감원장은 문재인 캠프에 몸을 담았던 심인숙 중앙대 교수가 거론됐으나 론스타와 관련 있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시민단체가 강력히 반대하면서 내정이 철회됐다. 이후 감사원 출신 김조원 씨가 유력했지만 그 역시 무산됐다. 금융경력이 없는 캠프 출신인 데다 감사원 출신을 껄끄러워 하는 모피아 등의 반대가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후 최흥식 전 원장이 내정되자 금감원은 뒤숭숭해졌다. 그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의 일방적 ‘내려꽂기’ 식 인사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금융위원회는 당시 인선 배경으로 “(최흥식 대표는)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및 하나금융지주 사장 등 오랜 기간 금융 분야 주요 직위를 두루 거치며 폭넓은 연구실적 및 실무경험과 높은 전문성을 보유했다”며 “이론과 실무를 겸비해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금감원의 혁신과 변화를 이끌어 갈 적임자로 평가돼 금감원장으로 제청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금융권에서는 최 전 원장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업계 출신의 올드보이인 데다 금융개혁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혹평이 나왔다. 금감원 노동조합도 ‘혼란만 주는 금감원장 인사’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최흥식 전 원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부임한 최 전 원장은 모피아가 주류인 금감원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던 차에 하나금융 사장 재직 때 채용비리 의혹이 일자 모피아 세력이 이를 빌미로 여론을 앞세워 그를 내쳤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일을 두고 어떤 식으로든 향후 하나금융그룹에 태풍이 휘몰아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신들의 수장을 날려 보낸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하나금융을 금감원이 그대로 둘 리는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당국의 권위와 체면 유지를 위해서라도 하나금융에 융단폭격이 쏟아지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