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성폭력 범죄의 위험성과 피해자들의 지지를 약속했던 연예인들. 미투운동 이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대중들의 날선 비판이 일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 트위터 캡처.
대중들은 연예계 미투 운동에서 목소리를 낸 연예인들 가운데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현재까지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여성 연예인들은 배우 강은비, 김남주, 김여진, 김옥빈, 김지우, 김태리, 류원, 문소리, 손예진, 송하늘, 신소율, 유이, 이솜, 이세영, 진서연, 최우리, 최희서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연예계에서 직접 겪거나 혹은 목격했던 성폭력 경험담을 밝히며 성폭력이 실재하고 만연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영화배우 문소리는 지난 12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 기념행사 및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 “서지현 검사의 용감한 폭로를 시작으로 이어져 온 미투 운동을 계속 지켜봤다. 제 영화인생을 돌이켜 보게 됐고 몸과 마음이 아파 굉장히 힘들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이거나 방관자였거나 암묵적 동조자였음을 영화계 전체가 인정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드라마 ‘미스티’로 또 다시 주가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는 배우 김남주 역시 거침없는 ‘미투 지지’로 대중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 2일 열렸던 ‘미스티’ 기자 간담회에 검은 옷을 입고 등장했다. 이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기 위한 그의 선택이었다. 그는 “후배들이 좀 더 즐거운 곳에서 일했으면”하는 바람으로 미투 운동에 지지를 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배우 김남주가 지난 2일 드라마 ‘미스티’ 기자간담회에서 올블랙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고자 한 선택이었다. 사진=JTBC
지난 1일 이순재는 TV조선 방송에 출연해 “상대방을 인격체로 생각해야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제자나 수하로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 사회 전체가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주일 뒤에는 또 다른 매체에서 가해자들을 가리켜 “모든 분야에서 가해자들은 업계를 떠나라.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거짓 미투 운동의 피해자로 지목됐던 배우 곽도원 역시 그럼에도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당시 폭로 글은 명예훼손을 고려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문제였음에도 곽도원 측은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하겠다고 강조했다. 무고죄 등으로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향후 미투에 대한 움직임이 위축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후 연예계 미투 바람을 타고 일부 남성 연예인들도 지지의사를 밝혔다. 보이그룹 갓세븐, 배우 고훈정, 권동호, 김대종, 김성철, 김지철, 박호산, 이정수, 이규형, 허정도 등이다. 대부분 연극, 뮤지컬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들로 이윤택 사건이 터진 직후 SNS를 통해 미투 운동 지지 의사를 밝혀 왔다.
그러나 지지 물결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잘 알려진 남성 연예인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이 빈축을 샀다. 특히 유재석, 에릭남 등 여성 대중 사이에서 ‘젠틀맨’으로 인기가 높았던 연예인들의 침묵은 비판을 넘어선 비난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대중들은 이들의 명단을 작성해 “언제 미투 운동에 대해 입을 여는지 보자”라며 주기적인 카운트다운까지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온라인에서 페미니스트들과 설전을 벌이며 ‘페미니스트 사냥꾼’으로 뭇남성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배우 유아인이 또 한 번 등장한다. 그는 그 당시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는 ‘가짜 페미니스트’들을 향해 “실체를 밝히고 당당히 권리와 평등을 요구해라. 가해자를 응징하려거든 진단서 끊고 피해 사실을 밝혀라”라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바 있다. 이와 같은 ‘페미니즘 테러리스트’들과 연대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여성들을 위해 나서는 ‘페미니스트’가 될 것을 천명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미투 운동’이 할리우드부터 한국 연예계까지 퍼져나가고 있는 가운데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그의 앞선 주장대로 “실체를 밝히고 피해 사실을 밝힌” 미투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유아인의 침묵은 무겁기만 했다.
더욱이 고의인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련의 ‘미투’ 물결 속에서 유아인이 올린 글은 단 하나, 화형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영화 영상 편집본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영상을 올린 날은 지난 3월 9일, 성폭력 논란에 휘말려 경찰 수사를 앞두고 있던 배우 조민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었다.
유아인은 SNS에 문제의 영상만 올렸을 뿐 어떤 글도 쓰지 않았으며 대중들이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댓글 잠금을 설정했다. 이 때문에 영상만을 보고 “마녀사냥을 암시하는 영상을 올려 조민기의 죽음이 마녀사냥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득세했다. 그러나 실제 이 영상은 ‘마녀사냥’과는 궤가 다르다. 다만 어찌 보면 마녀사냥보다 훨씬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배우 조민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난 9일 유아인이 자신의 SNS에 올린 영상의 일부. 신교도를 화형하는 장면이 담겨 논란이 됐다. 유튜브 캡처.
이 영상은 1998년 개봉한 영화 ‘엘리자베스’에서 엘리자베스의 이복 언니인 메리 1세가 신교도 사제와 신도들을 화형시키는 장면을 편집한 것이다. 즉, 종교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가진 여왕이 믿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파를 학살하는 장면이었다는 것. 앞선 페미니스트들과의 싸움에 대해 “잘못된 믿음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한다”고 정의했던 그가 조민기의 죽음을 놓고 또 한 번 논란의 불을 지핀 셈이다. 이후 유아인의 침묵에 분노한 대중들이 그의 SNS를 통해 “대체 언제 입을 열 셈이냐”라며 또 다시 공격을 퍼붓고 있는 상황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이미 연예계에서 여자 연예인들은 ‘꼴페미(꼴통+페미니스트의 합성어)’냐 아니냐, 남자 연예인들은 ‘한남(한국남자의 멸칭)’이냐 아니냐라는 사상 검증을 받는다. 최근에 걸그룹 멤버가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스마트폰 케이스를 촬영했다가 남성 네티즌들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고 사진을 지우지 않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리고 최근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연예인들은 ‘개념 연예인’, 지지의사를 아직 밝히지 않은 연예인들은 ‘사상이 의심스러운 연예인’으로 양분된다”라고 지적하며 “당연히 성폭력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분노하고 동참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해서 미투 운동을 폄하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닌 만큼, 아직 동참하지 않은 연예인들을 블랙리스트처럼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지 않은가 싶다”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