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작품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작품을 보고 삶의 의미를 자각하며, 때론 영향을 받기도 한다. 예술이 꼭 필요한 이유다. 삶의 로드맵이 불안정한 젊은 시절, 절실한 고민을 담은 작품은 명쾌하지 않다. 모호하고 도발적이며 복잡하다. 목적지가 뚜렷하지 않은 여행에서 여러 갈래의 길을 바라보는 여행자 심정과도 같다.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김지훈의 그림이 그렇다.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지점에 서 있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묻는다. 자신이 속한 사회, 환경, 사람에 대해. 그리고 이런 시대 속에서 살고 있는 작가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기다림: 90x72cm 장지에 먹과 채색 2015
‘기다림’이라는 작품을 보자. 파격적 구도가 먼저 눈길을 끈다. 수평과 수직으로 과감하게 화면을 나눈 기하학적 구성이다. 여기서 방호복 입고 무겁게 앉아 있는 이는 누굴까. 작가일 수도 당신일 수도 있다. 캄캄한 현실을 마주하고 무얼 기다릴까. 알 수 없는 미래. 수직선이 기다림의 의미를 절박하게 보여준다. 이 시대 젊음의 모습 같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당신의 초상일 수도.
방호복은 무얼 은유하고 있을까. 작가는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취약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방호복 안에 자신을 숨기고 시대의 흐름에 묻혀 가는 연약한 자아를 표현했다’고 말한다. 시대와 사회의 충격을 견뎌낼 맷집을 아직은 단련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모습인 셈이다. 작가의 솔직한 고백이 적절한 은유로 녹아든 작품이다. 방호복으로 상징되는 보호막을 치고 사고 현대인은 행복할까. 인터넷 세대인 작가의 관심사는 소통과 정체성 찾기로 확장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97x130cm 장지에 먹과 채색 2015
빠르고 편리하게 소통하려는 목적으로 정보통신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한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고립되고 서로의 정서는 단절된다. 얼굴을 맞대지 않고도 거의 모든 생활이 가능한 인터넷 공간에서 우리는 무한한 자유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까지 나누지만 그게 진정한 소통일지는 여전히 물음표에 머문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이미 현대인들에게 익숙하며, 즐기기까지 한다.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개인의 공간, 취향, 행위 같은 것이 가장 소중한 관심사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란 작품은 현대인의 소통 부재와 잃어버린 정서를 담고 있다. 회색과 검정색이 주조를 이룬 화면은 감정이 메마른 이 시대 개인 공간을 보여준다. 엘리베이터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공간에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앉아 있다. 혼자만의 자유가 허락된 사적 영역에 갇혀 버린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런 공간 속에서 억제된 개인의 감정, 욕망이 커튼처럼 늘어진 원색으로 분출한다. 인터넷 세대의 정서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