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억 원대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소환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을 놓고 나오는 평이다. 서울중앙지검에 선임계를 제출한 변호인은 모두 4명. 강훈 변호사(사법연수원 14기)가 가장 선임으로, 박명환(사법연수원 32기), 피영현(사법연수원 33기), 김병철(사법연수원 39기) 변호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판사 출신인 강훈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판·검사 출신이거나 굵직한 사건을 맡았던 인물이 없다.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변호인단의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래 검찰 수사 초반에는 이명박 정부 민정수석 출신 정동기 변호사(사법연수원 8기)가 대표 변호인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정동기 변호사의 ‘경력’이 발목을 잡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07년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사건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을 무혐의로 결론 내릴 때 대검찰청 차장검사였던 정 변호사가 이를 보고받았다는 점이 인정된 이상 실제 수사지휘까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이 전 대통령 변호가 불가하다고 판단했고, 결국 변호인에서 배제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다. 박정훈 기자
법조계는 정 변호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냉정한 평이다. 너무 ‘원로’ 인사라는 것. 한 검찰 관계자는 “원래 정 변호사에 대해서는 ‘얼굴 마담’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며 “연수원 8기의 원로인 정 변호사가, 구체적인 검찰 증거 자료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따질 수 있는 연차는 아니지 않냐. 제대로 변호를 하려면 실무를 뛸 검찰 출신 선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구속영장’을 놓고 검찰과 다툴 수 있는 전문 선수(법조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검찰의 시각에서 혐의별로 어떤 자료로 준비했는지 파악한 뒤, 각각의 증거가 부족한 점을 찾아 검찰의 논리를 깨야 하는데, 정교한 논리와 변론이 필요한 상황에서 검사 출신 선수가 변호인단에 없다는 것은 명백한 한계”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석구, 유영하 변호사 등 박 전 대통령을 따르던 법조인들이 지지자의 마음으로 변호에 나섰다면,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그만한 ‘충성심’도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이 주변 사람을 잘 믿고 신뢰를 주기보다는, 끊임없이 의심하며 가까이 사람을 붙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는데, 실제 검찰 출신으로 MB 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법조인 역시 “이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변호를 해달라고)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앞선 청와대 관계자는 “어려울 때 다 털어놓고 부탁할 수 있을 만큼 이 전 대통령을 따른 법조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덧붙였다.
‘주변을 잘 못 믿는’ 이 전 대통령의 성향 탓일까. 이 전 대통령은 실제 검찰 소환 조사가 이뤄질 때까지, 주변 최측근들과 모여 회의를 하면서도 혐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인정’과 ‘부인’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 이 전 대통령 소환 당시 검찰청사 인근에서 만난 이 전 대통령 측근은 “언론이 우리보다 혐의를 더 잘 알지 않냐, 우리는 혐의의 사실 여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이런 맥락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사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인단이 필요한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보 역할을 담당한 김효재 전 정와대 정무수석 역시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변호인이 더 필요하다”고 밝히면서도 “이 전 대통령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금전적으로 부족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변호인이 더 필요하지만, 돈이 없다’고 털어놓은 셈이다.
이 전 대통령의 자산(50억 원 상당)을 감안하더라도, 당장 동원 가능한 현금이 많지 않은 탓에 이 같은 맥락도 일리는 있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법조계에서는 110억 원이 넘는 범죄 혐의 금액과 국정원 상납과 특활비·매관매직 등 이 전 대통령의 방대한 혐의를 감안할 때, 최소 10억 원 이상의 변호사 선임 비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검토해야 할 자료가 많기 때문.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은 훨씬 적은 금액으로 변호인단을 구하려고 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몇몇 로펌과 변호사들에게 ‘변호를 해 줄 수 있겠느냐’며 접촉했는데,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 측에서 몇몇 변호사들에게 사건 수임 가능성을 타진했는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게 적은 금액을 수임료로 제시해 다들 ‘할 수 없다’는 답변을 이 전 대통령 측에 했다”고 설명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범죄 혐의와 사건 관련 자료의 양 등을 감안할 때 다른 사건을 동시에 수임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명의 변호사가 필요하다, 결과와 관계없이 최소 10억 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며 “그것도 전직 대통령이라는, 대형 정치인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적게 받은 것이지 일반 기업 오너였다면 수십억 원은 받아야 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문제는 대형 로펌이 정치인 사건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얽혔다가 국민적인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앞선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경우 대형 로펌에서 부담스러워 한다”며 “상대적으로 선임료가 비싼 대형 로펌에 사건 선임 요청이 들어오지도 않겠지만, 들어온다고 해도 로펌 측이 받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대형 로펌 관계자 역시 “기업 오너 사건의 경우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100억 원 이상을 받기 때문에 그런 비판도 감수할 수 있지만 정치인 사건은 돈도 안 되고 국민들로부터 욕만 먹는다”며 “(대형 로펌이) 할 이유가 더더욱 없지 않냐”고 설명했다. 실제 이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으려고 했던 정동기 변호사는, 강훈 변호사와 함께 지난 2월 법무법인 바른에서 퇴사하기까지 했다. 법무법인 바른의 “정치 사건을 맡지 않는다”는 내부 규정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흐름은 10여 년 전만 해도 아니었다. 원래 대형 로펌들은 대선 주자급 정치인들의 법률 자문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한 차례 사고가 터진 뒤부터 대형 로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바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대선 자금 사건이었다.
당시 법무법인 광장 소속 서정우 변호사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법률 고문을 맡아 대선 과정에서 자문 역할을 담당했다. 법무법인 광장도 이를 허락했다. 하지만 서 변호사는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전달한 혐의로 구속됐고 이에 법무법인 광장은 당시 대검 중수부(안대희 검사장)의 압수수색을 받는 등, 쑥대밭이 됐다. 그 뒤 대형 로펌들과 대선 주자급 정치인들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굵직한 정치인 수사를 여러 차례 담당했던 검찰 고위 관계자는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정치인들 사건에 대형 로펌이 들어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이 전 대통령은 이미 충원 가능한 최선의 인재들을 변호인단으로 선임했다고 봐야 한다. 재판까지 가더라도 소속이 없거나 소형 로펌 소속 변호사 몇 명을 더 충원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