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서울교통공사가 ‘2017∼2021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으로 내년에 지하철 기본요금을 200원 인상하는 방안을 서울시에 건의했다는 것입니다. 현행 지하철 요금은 성인 기준 편도 1250원, 200원을 인상하면 1450원이 됩니다.
요금 인상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지하철 운영 측은 ‘만 65세 이상 노인 무임승차 제도’로 인한 재정 손실이 상당하기 때문에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논리를 펼쳐왔습니다. 이번에도 지하철 요금 인상의 이유를 노인 무임승차 제도 등의 재정부담이라고 피력했습니다. 결국 노인 무임승차에 대한 반대 의견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무임승차-재정손실-요금인상’과 같은 공식이 세대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해왔습니다. 최근에도 지하철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요금 인상 계획이 전해진 순간, 젊은층은 “무임승차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성토했습니다. 반면 노인들은 “절대로 폐지해선 안 된다”라고 맞불을 놓았습니다.
‘전철남’은 지하철 요금 인상이 촉발한 세대갈등의 양상을 짚어보고 ‘무임승차’ 제도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노인 무임승차 제도 폐지 논란’,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중장기 계획에 포함된 내용은 맞지만 시에 건의한 일은 없다”며 “200원 인상은 서민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조심스럽기 때문에 건의를 못한 것이다. 하지만 노인의 무임 손실비용 때문에 적자가 심각하다. 국비 확보로 손실 보전이 불가능할 경우,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입장은 어떨까요. 서울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교통공사가 결과 보고서를 제출한 것뿐이다. 정책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당장의 요금인상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M 자유게시판 캡처
하지만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특히 ‘무임승차’란 키워드가 등장한 순간 2030세대 사이에서는 만 65세 이상 무임승차 제도에 대한 ‘폐지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층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무임승차로 인한 재정적자가 요금인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젊은 층들이 노인들의 교통비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M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3월 7일 자유게시판에 “노인 지하철 요금을 100원이라도 받아야 한다”며 “100원이면 하루에 지하철 10번씩 탄다고 해도, 한 달에 5만원도 안 된다. 여기에 교통비 명목으로 얼마를 더 주는 게 낫다. 이렇게 하면, 지하철 요금 인상 할 때 마다 매번 무임승차 때문에 적자폭이 심각하단 얘기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른 회원은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 자체가 노령인구 5%미만이던 1984년에 나왔다”며 “지금은 노령 인구비율이 15%에 육박한다. 무임하한선을 만 70세 이상으로 올리거나 50% 할인을 해주는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각한 세대갈등의 양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직장인 A 씨(31)는 “노인들 교통비를 왜 우리가 부담해야 하나”라고 반문하면서 “저는 늙으면, 돈을 내고 지하철을 타고 다닐 것이다. 적자가 누적되면 당연히 노인들도 돈을 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1980년 국무회의 결과 70세 이상의 고령자에게 요금 50% 할인 제도로 시작됐습니다. 1년 뒤 노인복지법이 제정됐고 연령이 만 65세로 낮춰졌습니다.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현재의 무임승차 제도로 자리잡았습니다.
노인복지법 제26조(경로우대)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65세 이상의 자에 대하여 대통령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수송시설’ 및 고궁, 능원, 박물관, 공원 등의 공공시설을 무료로 또는 그 이용요금을 할인하여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공사가 언급한 것처럼. 65세 이상 노인 무임승차 제도가 ‘적자의 주범’일까요? 지난해 7월 서울시가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서울지하철 1~9호선의 적자 중 무임승차 손실 비중이 90%를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16년 지하철 1~9호선의 당기순손실 3917억 원 중 법정 무임승차 손실은 3623억원. 전체 손실 중 92.5%를 기록했습니다. 노인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적자폭이 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무임승차-재정손실’이란 공식이 어느 정도 맞다고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전동차 고장으로 7일 오전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두천 방면 운행이 오전 한때 중단됐다. 전동차가 멈춰선 서울 지하철 종로5가 역에서 한 노인이 기다림에 지쳐 바닥에 앉아 운행재개를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재정손실-요금인상’란 도식은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무임승차로 인한 재정 손실로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기 하다는 것. 즉 무임승차 폐지론으로 자연 귀결되는 논리에 ‘변수’가 있습니다.
무임승차 제도가 노인복지에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지하철 노조 관계자는 “무임승차 제도는 보편적인 교통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교통공사 측의 입장대로 적자가 난다고 해서 요금을 인상하는 방법은 옳지 않다. 수혜 연령을 높이거나 제도를 페지해야 한다는 논리도 동의하기 어렵다. 사회경제적인 이익을 꾀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해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고 밝혔습니다.
노인들의 입장도 같은 맥락입니다. 종로3가역에서 만난 김종식 씨(82)는 “무임승차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 막걸리 한 잔 먹을 돈 없는 노인들이 많다. 무료로 지하철 타고 다니면 산도 바다도 갈 수 있다. 정신도 맑아지고 건강도 좋아져서 나라에도 이익이다”고 밝혔습니다.
양 아무개 씨(82)도 “우리는 차비가 없어서 어디도 갈 수 없다”며 “노인 대부분은 자식들이 용돈도 안 준다. 애들 다섯을 가르치면서 보험 하나도 제대로 못 들어놔서 노후 대책도 없는데 국가가 그 정도 혜택도 못 주나”라고 반문했습니다.
65세 이상 노인 무임승차 제도 ‘사회경제적 편익’ 계산표(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와 한국교통연구원 최진석 철도안전·산업연구센터장의 공동연구 발췌)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와 한국교통연구원 최진석 철도안전·산업연구센터장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지하철 무임수송에 드는 비용이 2016년 기준 1922억 원, 반면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편익은 2362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정훈 교수는 65세 이상 무임승차 정책으로 한 해 노인 자살자 81명, 우울증 환자 6만 6742명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결론냈습니다. 노인 무임승차 제도를 오로지 ‘수익성’에 방점을 찍고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유정훈 교수는 “무임승차는 65세 이상 은퇴자 분들에게 ‘꽁짜 신발’을 드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은퇴자분들이 교통비 제약없이 마음껏 이동할 수 있게 되면 외부활동이 활발해지게 된다”며 “외부활동의 증가는 우울증 감소를 가져오며 이로 인해 사회전체적인 의료비 지출이 줄어드는 효과도 발생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정부의 소극적 대응입니다. 정부는 무임승차로 인한 ‘재정손실’에 대해 차별적 대응으로 일관 중입니다. 국토교통부는 KTX 등을 운영하는 코레일에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액의 약 70%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노년층에 대한 ‘국가적 복지 서비스’라는 관점으로 ‘무임승차 제도’를 해석해왔습니다. 하지만 지자체가 운영하는 도시철도에 대해서는 ‘지자체 부담’이라는 원칙을 고수 중입니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2017년 OECD가 내놓은 ‘불평등한 고령화 방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6∼75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2.7%.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65세 이상 노인 무임승차 제도, 과연 폐지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