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숭인동 이주여성인권센터 입구. 고성준 기자
─ 이주여성들의 성폭력은 주로 어떤 형태로 발생하나.
“선주민(한국인) 성폭력 유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사업주가 가해자일 때도 있고, 이주노동자 남성이나 같은 업장의 한국인 남성 노동자가 가해자인 경우도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친인척이 가해를 하는 등 유형은 선주민 성폭력 사례처럼 다양하다.”
─ 특수한 케이스도 있을 법 한데.
“결혼 중계업자에 의한 성폭력이다. 이른바 브로커들이 현지에서 여성을 모집해 한국 남성들과 맞선을 주선하는데 일단 브로커 마음에 들어야 한국인 남성과 결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부분을 악용한 성폭력 피해 사례가 많다. 일례로 ‘신체검사를 해야 된다’는 말로 성폭력을 가한 경우도 있었다.”
─ 드러난 사건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성폭력 사건은 신고율 자체가 낮다. 아시아 대부분 국가에서 성폭력은 ‘수치’다. 이주여성들 중엔 상담할 때 자국 상담원한테 안 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혹시 본국에 알려질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유추만 할 뿐이다.”
─ 왜 이러한 성폭력 피해가 발생한다고 생각하는가.
“열악한 환경에 노출 돼 있기 때문이다. 이주여성들은 ‘불안정한 체류’와 ‘여성’이라는 이중 차별을 겪는다.”
─ 환경이 열악하다고 지적했는데.
“몇몇 사업장은 국가 제도를 통해 들어온 노동자에게 비닐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한다. 말이 비닐하우스지 실제로 보면 처참하다. 한 이주여성노동자는 ‘밤마다 동네 청년들이 문을 두드린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잠금 장치도 제대로 설치 돼 있지 않았다. 무서워서 잠이나 자겠나. 비닐하우스 등 성폭력 위험 노출이 높은 기숙사를 제공하는 경우엔 고용허가제 사업장을 정부에서 취소해야 한다.”
─ 환경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닌 것 같다.
“국제결혼 주선 업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강조한 사진이나 글이 많다. 우리나라 결혼 주선 업체 홈페이지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여성들을 함부로 생각하는지 드러난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가 3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숭인동 사무실에서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하고있다. 고성준 기자
─ 미투 폭로자들처럼 2차 피해도 만만찮을 것 같다.
“사업장을 옮기고자 할 때 사업주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미등록 신분(불법체류자)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사업주가 동의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2차 피해다. 또 태국의 경우 무비자 90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 이를 이용해 단기 취업을 하러 오는 태국 여성들이 많은데 사실 취업은 불법이다. 단속에 걸리면 불법 취업을 했으니 무조건 본국에 돌려 보낸다. 그런데 태국 여성 가운데 마사지숍 성폭력 피해 사례가 매우 많다. 태국 여성이 갇혀서 성매매 혹은 인신매매 피해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하고 그 기간 동안은 합법적 체류를 보장해야 한다. 출국 자체가 2차 가해라고 생각한다.”
─ 법제 등의 문제는 없나.
“국가가 이주여성 성폭력전담센터를 설립해 이를 적극 홍보해야 한다. 입국 단계에서 성폭력 관련 교육이 들어가면 더욱 좋다.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려고 해도 한국 시스템을 모르니 어디다 신고 해야 되는지조차 모른다. 또 신고를 한 뒤에도 의사소통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더구나 외국인이 성폭력 피해 상황을 일관성 있게 진술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국가 차원의 통번역 지원단이 풀로 구성돼야 한다. 특히 법체계를 이해하면서 문화를 이해하는 ‘훈련된 통역’이 필요하다.”
─ ‘훈련된 통역’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설명 통역’이라고 얘기한다. 단순 통역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 해서는 부족하다. 법률 조력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 미투 운동이 이주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나.
“여성들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말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미투 운동을 시작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여성들이 피해 사실을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면 좋겠다. 특히 이주여성의 경우 한국에서 계속 일해야 하는 등의 이유로 폭로에 직접 나서지 못 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당사자가 직접 나서는 폭로만이 유효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달라.”
─ 당부하고 싶은 말은.
“미투 운동으로 가해자에 대한 확실한 사회적 처벌이 이뤄지면 성폭력 피해도 낮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주여성이 ‘불쌍한 존재’라는 편견을 갖지 않길 바란다. 이주여성의 성폭력은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다. 선주민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봐달라.”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언더커버] 성폭력 사각지대 이주여성들2-이주여성들 한국인 가해자들에게 이렇게 당했다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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