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재판 1심 선고가 열리는 가운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최준필 기자.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의 뇌물 의혹 사건에 연루된 바 있는 롯데홈쇼핑이 최근 ‘백화점 가짜 영수증’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광고심의소위원회는 지난 12일 백화점 가짜 영수증을 내세워 구매를 부추긴 롯데홈쇼핑과 CJ오쇼핑, GS샵, 3개 홈쇼핑업체에 대한 ‘과징금 부과’를 전체회의에 건의했다. 3사는 밥솥을 판매하는 방송에서 백화점 영수증을 제시하며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해당 영수증은 실제 백화점에서 물건을 결재한 뒤 받은 영수증이 아니라 제조사가 임의로 발행한 허위 영수증으로 밝혀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광고심의소위원회에서 이를 포함한 여러 안건을 건의했으며, 다음 주 중 전체회의에서 제재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롯데홈쇼핑의 경우 ‘과징금 부과’가 치명적일 수 있다고 본다. 과징금 징계를 받으면 벌점이 부과되는데, 벌점이 누적되면 재승인 심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임 대표가 유죄 판결을 받고 그룹 오너가 구속되는 등 도덕성 논란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과징금이나 벌점은 더 큰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롯데홈쇼핑은 2015년 재승인 심사 당시 임직원 비리와 납품업체 불공정 문제 등으로 탈락이 유력했으나 최저점수 650점을 간신히 넘긴 672점(1000점 만점)을 받아 가까스로 재승인 허가를 받았다. 배점 200점인 공적 책임 항목에서는 102.78점을 받아 2.78점 차이로 과락을 면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은 탓에 기존보다 2년 줄어든 3년의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다.
롯데홈쇼핑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병헌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이 지난해 11월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업계에서는 롯데홈쇼핑이 2015년과 달리 이번 재승인 심사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강현구 전 대표와 신헌 전 대표 등이 횡령·배임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된 신 회장의 ‘오너리스크’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이번 건(백화점 영수증)이 재승인 탈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은 비약”이라며 “이전에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이 부과돼 벌점을 받은 적 있으나 롯데뿐 아니라 전체 홈쇼핑을 대상으로 했던 것이며 전병헌 전 수석 건은 평가 기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롯데의 대표적인 유통채널 중 하나인 면세점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신동빈 회장이 뇌물죄로 구속되면서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의 취소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다. 관세청은 현재 취소 여부 결정을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결정 시기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며 “법률 자문을 구하는 등 법리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롯데면세점은 앞서 인천공항공사와 임대료 마찰을 빚으면서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 4개 가운데 3개를 반납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지난 15일 인천공항공사가 후속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히자 롯데면세점은 “참여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업권 반납을 결정한 롯데의 ‘입찰 참여 검토’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 업계에서는 인천공항 면세사업권을 반납과 월드타워점 취소 가능성이 동시에 닥치면서 위기감을 느낀 롯데가 사업권을 재탈환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롯데의 또 다른 유통채널인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은 사드 보복 후폭풍으로 지난해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의 지난해 매출은 5조 3629억 원으로 전년 5조 6896억 원보다 3000억 원가량 줄었으며, 영업이익 또한 2106억 원으로 전년 2969억 원에서 860억 원가량 줄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매출 5조 3061억 원을 기록해 전년 6조 2916억 원에서 9800억 원가량 줄었으며, 영업손실 또한 전년 대비 946억 원 늘어난 1818억 원을 기록했다. 투자 전문가들은 올해 사드 이슈 완화로 롯데쇼핑의 실적 턴어라운드를 전망하고 있지만 총수 부재 리스크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월드타워 건립 후 악재 연속…롯데 ‘마천루 저주’ 빠지나 롯데그룹은 지난해 8월 2일 신동빈 회장의 롯데월드타워 신사옥 집무실 첫 출근과 함께 40년간의 ‘소공동 시대’를 접고 ‘잠실 시대’를 열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오랫동안 꿈꿨던 숙원사업이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 4월 3일 그랜드오픈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으나 다음 달인 5월 3일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해 3시간가량 관람하며 만족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월드타워는 123층(555m) 규모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초고층 마천루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롯데 입장에서는 ‘뉴롯데’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성이 크다. 지난해 4월 3일 롯데월드타워 공식 개장식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월드타워는 롯데의 뉴비전, 라이프타임 밸류 크리에이터의 시작점”이라며 ‘뉴롯데’의 시작을 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월드타워가 공식 개장하기 전부터 재계에서는 롯데월드타워와 ‘마천루의 저주’를 우려했다. ‘마천루의 저주’란 1999년 도이체방크의 분석가 앤드루 로런스가 100년간의 사례를 분석해 내놓은 가설로, 과거 역사를 보면 초고층 빌딩은 경제위기를 예고하는 신호 역할을 해왔다는 것.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초고층 빌딩 건설 프로젝트가 주로 통화정책 완화 시기에 시작되지만 완공 시점에는 경기 과열이 정점에 이르고 버블이 꺼지며 경제 불황을 맞는다는 것이다. 롯데월드타워 건립 이후 롯데그룹에는 악재가 잇따랐다. 군사적 이유로 오랜 시간 막혀 있던 건설 사업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 본격 추진된 까닭에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감사원은 현재 롯데월드타워 건축 승인 과정을 두고 감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27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2롯데월드 건설추진 관련 여론관리방안’ 문건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은 2008년 12월 15일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지난해 7월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가 롯데월드타워 건립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롯데월드타워 건립 이후 롯데그룹은 경영권 다툼, 총수 구속, 유통채널 위기 등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