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조경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선거구 획정 처리를 핵심으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을 앞두고 국회 본회의 토론에서 한 말이다. 진통 끝에 처리됐다는 공직선거법 개정은 ‘일요신문’ 취재 결과 조 의원의 말처럼 ‘정치개악특위’에 가까운 말 그대로 ‘짬짜미’의 극치였다.
1월 15일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원회 김재경 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국회에서 열린 개헌·정개특위 첫 전체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간사, 김 위원장, 자유한국당 주광덕, 국민의당 김관영 간사. 박은숙 기자
기초·광역단체 선거구는 인구 및 행정구역 변동 등을 감안해 매 지방선거 6개월 전까지 획정해야 한다. 오는 6월 13일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은 지난 12월 13일까지 끝내야 했다. 하지만 여야가 광역·기초의원 증원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고 예비후보 등록일인 3월 2일이 넘어서도 처리가 안됐다. 결국 ‘지각 처리’ 비판 끝에 3월 5일 ‘원포인트 본회의’를 통해 ‘6·13 지방선거’ 광역·기초의원 정수 및 광역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처리됐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지각 처리’에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정특위 관계자는 “지각 때문에 욕을 먹었지만 사실 내부에서는 ‘짬짜미’가 더 큰 문제라는데 공감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처리된 안을 들여다보면 원칙이란 게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거구 획정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인구·행정구역·지세·교통 등의 조건을 고려하여 시·군·자치구 및 국회의원 지역구 내에서 결정한다. 선거구 인구(주민등록인구 및 외국인선거권자)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최대 4:1의 인구편차 범위에 있도록 획정해야 한다.
게리맨더링(특정 후보자나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일) 방지를 위해 인접지역으로 선거구를 구성하고 읍·면·동을 분할하여 타 선거구에 속하도록 하는 획정을 금지한다. 시·군·자치구에 시·도의원 최소 1명을 보장해야 한다.
행정안전부에서는 이 원칙에 따라 헌정특위에 3가지 선거구획정 안을 제시했다. 3가지 안은 기본정수에 의원정수를 어디까지 인정할지에 따라 달라진다. 기본정수는 인구수와 행정구역 수에 따른 원칙적 광역의원 숫자다. 자치구나 국회의원 지역구 수에 2를 곱한 숫자다. 의원정수는 기본정수에다 지역상황과 인구분포 등을 고려한 ‘현장에 맞춘 정수’다. 기본정수만 인정하면 비효율적으로 많아지는 인구 밀집지역을 분산하고 조정해 만들어진 게 의원 정수다.
1안은 기본정수만 인정하는 방안이다. 지난 총선에서 추가된 국회의원 7개 지역구만큼만 신설된다. 여기에 헌재 인구편차 기준에 맞춰 초과되는 곳은 분할하고 미달되는 곳은 통합하는 조정을 거쳐 26개 선거구가 신설되고 22개가 통합돼 총 4명이 더 늘어난다.
서울 4곳, 인천 1곳, 경기 12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에서 줄어든다. 4명이 늘어나면서 총 연간 소요경비(월정수당, 의정활동비, 의정운영공통경비)는 2억 5300만 원가량이 더 든다. 가장 보수적인 안이다.
2안은 기본정수보다 시도별 현재 광역의원수가 많은 경우에는 이를 줄이지 않고 기존 광역의원수로 유지하는 방안이다. 27개 선거구가 신설되고 10개 선거구가 통합돼 663명에서 680명으로 총 17명 증가한다. 소요비용은 10억 7400만 원 늘어난다.
3안은 현 의원정수는 그대로 두고 기본정수 증가분만 반영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특정 자치구에 인구가 감소해 줄여야 해도 줄이지 말고 늘어나는 곳만 반영하자는 안이다. 3안은 선거구가 33개 신설되고 7개가 통합돼 의원정수가 663명에서 689명으로 총 26명 증가한다. 소요비용은 연간 16억 4000만 원이 더 든다. 줄어드는 지역은 없고, 서울, 인천, 경기 외에 충남, 경남도 선거구가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최종 결정된 안이 1, 2, 3안 그 어느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최종 결정된 안은 2안+10이라는 해괴한 안이었다. 2안에다 10개 선거구를 임의로 구제하면서 나온 결과다. 협상 타결 막판까지 헌정특위 정개소위 간사 협의에서는 2안+7이 유력하게 떠올랐다. 7곳 선거구가 어떻게 결정됐는지는 간사 협의 결과라 알 수 없다. 그곳이 인천남동, 광주동구, 수원, 영월, 천안을, 고성, 거창이라는 점만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3곳 선거구가 추가 구제되는 모습을 보면 10곳 선거구가 어떻게 정해졌는지 쉽게 유추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옥천은 인구 하한선에 걸려 1명 도의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추가 구제된 7곳에도 들지 못했다.
3월 1일 막판 협상에 돌입한 회의장에 옥천 지역구 의원인 박덕흠 의원이 내방했다. 박 의원의 거친 항의가 이어지자 옥천도 살리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옥천은 선거구 하한을 미달해 통합해야 했지만 정치적 논리로 살아나게 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2안+8이 됐다.
그러자 헌정특위 정개소위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옥천만 살리면 자유한국당만 이득을 본다는 논리로 교섭단체인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도 서로 구제 선거구를 내놓기 시작했다. 지역구 의원이 민주당 소속인 금산군, 바른미래당 소속인 고창도 추가 구제됐다. 그 어떤 논리도 없는 셈이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도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구증감 원칙에 따르면 최소 4석, 최대 17석 이상 늘어나면 안 되는데 어제 느닷없이 27석이 늘었다”며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쟁점법안, 쟁점 사안들은 전부 다 원내대표들이 들고 가서 흥정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짬짜미로 결정되면서 불의의 피해자도 발생했다. 성일종 충남 서산·태안 의원 지역구 내 선거구는 다른 지역들과 바다를 경계로 떨어져 있는 지역끼리 묶였다. 5일 본회의에서 성 의원은 “(두 지역은) 사람이 왕래할 수가 없는 곳이다. 생활권도 전혀 다르고 행정구역도 전혀 인접해 있지 않은 지역을 한 선거구로 묶었다”며 “의원정수를 늘려 달라는 게 아니다. 단지 인접해 있는 지역으로 조정해 달라”며 수정안을 냈지만 부결됐다.
바다 건너 지역구가 묶인 이유는 선거구통합으로 줄어들기로 했던 충남 금산이 막바지에 갑자기 구제됐기 때문이다. 금산이 구제되면서 충청남도 상한인구수 기준이 줄어들었고 서산지역의 한 선거구는 상한인구수를 넘기게 됐다. 졸속 지역조정이 낳은 피해였다.
본회의에서 반대토론이 이어졌다. 전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간사이기도 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민들께서 이 개정안의 내용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협의 과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일어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주 의원은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정수 조정 및 선거구 획정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제3의 기구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는 그 안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 검토해서 최종 의결하자.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구성도 현재 중앙선관위 소속 위원장 1명과 여야 추천 각 4인 체제, 이 체제도 저는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 의원은 납득할 수 없는 처리 과정 끝에 결정된 개정안에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며 3월 2일 헌정특위 간사직에서 사퇴했다.
헌정특위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기존정수만 인정하는 1안이 논리적이고 2안이나 3안은 어느 정도 해당 선거구에 특혜를 주는 방안이다. 그런데 최종 결정된 안인 2안+10은 3안보다 더 많은 27석 선거구가 늘어났고 10곳이 정해지는 과정은 정치인끼리의 담합이었다. 마지막 결정되는 모습을 보면 3개월간 더 끌어온 이유를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