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실종된 지 8개월 만에 20대 여성 A 씨가 포천의 한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차를 반납하기로 한 당일,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A 씨는 반납하러 오지 않았다. 렌터카 업체 담당자가 A 씨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기계음만 반복됐다. 담당자는 A 씨가 남긴 비상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고 잠시 뒤 한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남성 B 씨(30)는 “지금 여자친구가 씻고 있다”며 “차 대여 기간을 하루 연장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B 씨는 자신의 어머니 명의로 렌터카 업체에 27만 원을 입금했다.
다음날 건장한 체구의 B 씨가 차를 반납하러 왔을 때 렌터카 업체 담당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차가 스팀세차까지 마쳐 새것 같은 상태로 돌아온 것. 8년째 렌터카 업체에서 일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고온·고압의 수증기로 묶은 때를 벗겨내는 스팀세차는 업체 이용 시 평균 1회 4만~5만 원의 비용이 든다.
3월 19일 의정부경찰서는 국과수 검사 결과 포천시 야산에서 발견된 시신이 지난해 실종신고가 접수된 A 씨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시신은 지난해 11월 A 씨 어머니에 의해 실종신고가 접수가 된 지 4개월 만인 3월 13일 60cm 깊이로 매장된 채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발견 당시 CCTV에 찍혔던 복장 그대로였다”며 “수사과정상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외력에 의한 타살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통화 및 문자 내역, CCTV 기록, 사건 관계자의 증언 등을 토대로 남자친구 B 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있다. 서울과 의정부 등을 오가며 보도방 영업을 해 온 B 씨는 현재 지난해 12월 다른 여자친구 C 씨를 말다툼 중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이다. 경찰은 빠른 시일 내 B 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해 수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연쇄살인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경찰은 지난해 사망한 B 씨의 또 다른 여자친구 D 씨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D 씨는 지난해 6월 뇌출혈로 병원에서 사망했다. 다만 아직까지 B 씨가 D 씨를 살해했다고 볼 수 있는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은 것로 알려진다. 외상성 뇌출혈의 경우 타살 의혹이 제기될 수 있지만 D 씨는 외상성 뇌출혈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D 씨가 직접 병원을 찾아와 치료를 받다 뇌출혈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경찰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D 씨의 사인에 대해 병원기록 등을 참고해 수사해 나갈 계획이다. 다만 D 씨의 시신은 이미 화장한 상태라서 뇌출혈의 원인을 밝혀내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A 씨의 휴대폰 기록에 남았던 렌터카 업체 관계자의 증언은 실종 사건이 강력범죄와 연결되었을 가능성을 열어준 핵심 단서가 되고 있다. 경찰이 포천 야산에서 A 씨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렌터카 GPS 자료가 바탕이 됐다. 렌터카 업체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아주 가끔 단골손님이 기계세차를 해서 돌려주는 경우가 있지만 처음 이용하는 고객이 비싼 스팀세차를 해서 돌려줘서 인상 깊었다”며 “(A 씨의) 면허증 상 주소가 의정부이길래 A 씨에게 실거주지를 물었더니 ‘일 때문에 인천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GPS 자료를 확인해보니 차는 대여 이틀째에 포천으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증언했다.
사건 관계자에 따르면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던 차량 내부에는 심상치 않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렌터카 업체는 A 씨가 대여했던 차를 반납받고서 얼마 뒤 차를 매각했다. 이후 경찰이 중고차 매각 매입 단지에서 찾은 차량 트렁크에서 혈흔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범인이 범행 직후 시신을 차량 트렁크에 실어 포천 야산으로 이동한 뒤 암매장했을 가능성이 적지않다.
지인들은 용의자 B 씨의 폭력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다 알고 있었다는 입장을 나타낸다. 용의자와 피해자를 안다는 한 여성은 “피해자와 함께 일했던 주변 사람들에 의하면 평소에도 B 씨가 A 씨를 자주 폭행했던 것으로 이미 다 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한편 용의자 B 씨는 A 씨와 D 씨에 대한 살해 혐의를 일체 부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B 씨가 이와 관련해 경찰 접견을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