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임종석 비서실장(왼쪽), 이낙연 총리(오른쪽)와 입장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지난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끝으로 정치에서 물러난 문재인 대통령은 4년 만인 2012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복귀했다. 문 대통령은 정치 복귀 후 반년 만에 대선주자가 됐다. 당시 문 대통령의 대선출마를 놓고 정치권에선 친노(친노무현계) 진영의 기획 상품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마땅한 대선 후보가 없어 고민하던 친노 진영이 문재인이라는 인물을 발굴해 대선에 내보낸 것이라는 설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당시 정치에 뜻이 없었지만 주변의 강력한 권유로 출마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현재 문 대통령은 취임 후 60~70%대의 지지율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친문 진영에서는 마땅한 차기 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12년과 상황이 비슷해진 친문 진영이 제2의 문재인 찾기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는 것이 친문 차기 주자 물색설의 주요 골자다.
정치권에서는 친문 진영이 이를 위해 지방선거에서 비문(비문재인계) 대권주자들을 찍어내려 한다는 시나리오도 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비문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전 성남시장은 모두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다. 향후 새로운 친문 대권주자의 경쟁상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지방선거에서 주저앉혀 미리 싹을 제거하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10일에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영선 의원을 만나 “개인적으로 박원순 시장의 3선 출마를 반대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보도가 나와 청와대가 박 시장을 찍어내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재명 전 시장이 출마하는 경기지사 선거에는 공교롭게도 대표적인 친문 인사인 전해철 의원이 도전장을 던졌다.
이 전 시장에 비해 전 의원은 대중적인 인지도와 지지율이 낮지만 당내 경선의 승패는 쉽게 예단할 수가 없다. 당내 조직력은 친문 진영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민주당 소속 경기도의원 66명 중 53명이 전 의원 지지 선언을 하기도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한국당) 대표가 지난 3월 7일 청와대 회동에서 언급한 ‘안희정 사건 임종석 기획설’도 친문 차기 대권주자 물색설과 맞닿아 있다. 홍 대표는 이날 임종석 실장과 만난 자리에서 “안희정을 임종석이 기획했다고 하던데”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홍 대표가 언급한 기획설은 친문 진영 차기 대권주자 후보인 임종석 실장이 당내 유력한 경쟁자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찍어내기 위해 청와대가 파악한 안 전 지사 관련 성비위 사건을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렸다는 내용이다. 민주당 측에서는 미투 운동을 정치공작으로 폄훼하는 발언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차기 친문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되는 인물은 임종석 비서실장이다. 임 실장은 취임 후 정치, 경제, 외교, 안보를 아우르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과거 대통령 비서실장들이 주로 ‘그림자 보좌’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행보다. 남북대화 국면에서는 역할이 더욱 도드라졌다. 김정은의 특사로 청와대를 찾은 김여정을 직접 맞이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에 임명돼 준비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준비위 총괄 간사를 맡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각각 위원으로 참여하게 돼 논란이 일었다. 각 부처 장관들이 임 실장 밑에서 일하게 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은 한 언론 기고를 통해 “국가적 행사에 청와대가 앞장서고 담당 부처들이 들러리로 참여하는 것은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임 실장을 차기 주자로 키우기 위한 의도적인 띄우기가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문 대통령 호남 일정에 임 실장이 동행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통상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동시에 청와대를 비우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대통령의 해외출장에도 비서실장은 동행하지 않는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한 전직 한국당 의원은 “아무리 같은 당이라고 하더라도 집권 후반기가 되면 비문 진영 인사들은 차기 대권을 위해 여당 내 야당 역할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할 것”이라며 “워낙 가변성이 커서 친문 진영이 특정 인물을 대권주자로 밀 것이라고 벌써부터 단정할 순 없겠지만 문 대통령이 반드시 후계자를 찾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들은 집권 후반기에 후계자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문에 휩싸였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교감하고 있다는 설이 있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접촉했었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 실장을 지내 대표적인 친문 인사로 손꼽히는 전재수 민주당 의원은 “문 대통령 취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차기 주자를 찾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4년제 개헌을 폄훼하고 민주당을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친문 진영이 이재명 전 성남시장을 찍어내기 위해 전해철 의원을 밀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전 의원이 오래전부터 경기지사 출마를 준비해 온 것으로 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전재수 의원은 “대권주자는 스스로 성장해야지 누가 키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차기 친문주자 물색설은 너무 나간 것”이라면서도 “임 실장이 대권주자로 성장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젊고 젠틀한 이미지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것까지 임 실장과 문 대통령 사이에 공통점이 꽤 있다”면서 “비서실장이 된 후에도 소탈한 행보로 여론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임 실장이 전대협 출신이라 종북 프레임이 걸림돌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언제적 색깔론인가. 야당에서 그런 프레임으로 몰고 가도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대선이 끝난 직후 박수현 전 의원이 안희정 전 지사를 대신해 충남지사 선거에 도전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박 전 의원은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되기 전이어서 인지도도 낮았고 무게감도 떨어졌다”면서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카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박 전 의원이 출마선언을 하자 한동안 지지율 1위를 달리지 않았나. 비록 중도 낙마했지만 정치는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