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의 안방보험그룹. 최근 안방보험 오너인 우샤오후이 전 회장이 경제범죄 혐의로 기소되면서 우리나라 계열사인 동양생명과 ABL생명이 후폭풍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최대 금융회사 중 하나인 안방보험의 경영권이 얼마 전 중국 정부로 넘어갔다. 중국 보험감독위원회(보감회)는 지난달 23일 우샤오후이 전 안방보험 이사장 겸 총경리에 대한 기소방침을 알리면서 “안방보험그룹의 경영안정을 유지하고 보험소비자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1년간 위탁경영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와 함께 안방보험의 불법적인 영업이 회사의 지급능력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어 당국이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감회는 안방보험이 보험 사업을 계속 영위하며 민간 기업을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방보험은 당국의 발표가 나오자 “보감회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면서 “향후 안방보험 경영진은 해외 자회사 안정화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수용의사를 밝혔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안방보험 경영은 보감회와 인민은행(중국 중앙은행), 은행감독위원회, 증권감독원위회, 국가외환관리국, 이 5개 부처에서 함께 맡을 것으로 보인다. 주목되는 대목은 중국 정부가 “위탁경영 기간 동안 안방보험의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 과정에서 중국 금융당국이 안방보험의 해외 자산 정리에 나설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자산은 오너의 재산 도피에 이용될 수 있는 데다 관리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안방보험에 인수된 우리나라 금융사인 동양생명과 ABL생명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중국 안방보험은 2015년 동양생명, 2016년 ABL생명을 각각 인수했다. 안방보험이 동양생명 지분 42%를 갖고 있고 안방그룹홀딩스가 동양생명 지분 33.3%, ABL생명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당장 안방보험 출신의 동양생명·ABL생명 경영진이 교체설에 휘말렸다. 이들은 기소가 예고된 우 전 회장과 오랜 기간 함께 일한 인물로 새로운 안방보험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정이 내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동양생명과 ABL생명에는 각각 4명의 사내 등기이사가 임원을 맡고 있다. 두 보험사의 등기임원 8명 중 6명이 안방보험 출신이다. 구한서 동양생명 공동대표와 순레이 ABL생명 대표를 제외한 모든 임원이 안방보험 출신인 것. 동양생명은 야오따펑 이사회 의장, 뤠젠룽 공동대표, 짱커 부사장이 안방보험 출신이다. 야오따펑 의장은 현재 안방생명보험 이사장직도 함께 맡고 있으며 뤠젠룽 공동대표나 짱커 부사장 역시 안방보험에서 임원직을 맡아왔다.
ABL생명은 짜오홍 이사회 의장과 왕루이 부사장이 안방보험 출신이고 로이 구오 부사장도 안방보험 캐나다 자회사에서 이사로 재임하다 한국으로 옮겨왔다. 특히 이들은 곧 임기 만료까지 앞두고 있다.
대주주의 지원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동양생명과 ABL생명은 IFRS17(국제회계기준) 도입 등 건전성 규제 강화 정책에 대비하기 위해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안방보험은 동양‧ABL생명에 추가로 3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고 최근까지 여러 차례 증자를 단행해왔다.
서울 종로구 동양생명 본사. 연합뉴스
안방보험은 국내에서 금융사 M&A건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이름이 등장했음에도 정확한 지배구조가 밝혀진 적이 없을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국 당국과 시장이 폐쇄적인 탓에 동양생명과 ABL생명 내부에서조차 “안방보험 일이라면 고위 임원 몇 명을 빼고는 알 수 없다”고 말할 정도고, 금감원도 안방보험의 실체를 정확히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중국 안방보험의 지원이 중단되면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경영전략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두 생보사는 안방보험에 인수된 이후 국내 다른 보험사와 달리 저축성보험 판매에 주력했다. 하지만 안방보험 지원이 끊어질 경우 이 같은 전략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나마 우 전 회장이 중국에서 기소된 이후 실형이 확정되더라도 당장 회사를 팔 필요는 없다는 점은 위안거리다. 2016년 시행된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주주가 조세범처벌법, 공정거래법, 금융관련법 등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판결이 확정된 경우 금융사 지분을 매각하라는 시정명령을 받거나 혹은 지분 10%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받는다.
특히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안방보험의 최다 출자자가 우 전 회장이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우 전 회장이 벌금형 이상의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안방보험이 동양생명이나 ABL생명의 지분을 매각하지 않아도 된다.
매각한다 해도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최근 한 증권사는 리포트를 통해 “동양생명이 매각 대상이 된다면 주가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한때 백기사였던 대주주의 불확실성을 없애면 오히려 진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두 보험사 임직원들의 동요다. 특히 동양생명은 육류담보 대출사고로 곤욕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너 리스크가 터지면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한 금융사 고위 임원은 “동양생명은 안방보험에 인수된 뒤 계속 사고가 터지고 있다”면서 “독립경영이 이뤄지고 있다고는 해도 재무 관련 사안 등을 안방보험이 계속 챙겨온 것으로 볼 때 영향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