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청 전경.
광주 제2순환도로 민간투자사업과 관련해 업무를 맡았던 광주시 전직 간부 공무원이 1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015년부터 1년 동안 민간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예산을 줄이기 위한 ‘사업재구조화’ 협상을 담당했던 간부 공무원이다. 이 공무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장에 광주2순환도로 1구간 운영업체 측 간부(4장)와 경찰 수사관(5장)에게 각각 보내는 글을 총 9장의 ‘A4’용지에 타이핑해 남겼다. 유서에는 자신이 내부 상납구조가 있는 업체 측의 모함과 경찰의 편파수사에 당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경찰은 사업재구조화에서 민간투자자 측에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해 준 대가로 돈이 오간 정황을 포착해 수사 중이었다. 경찰은 담당 공무원의 사망과는 별개로 수사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광주시는 재정절감을 위한 ‘정당한 협상’이었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어 진실공방이 계속될 전망이다. 경찰은 당시 협상을 담당했던 광주시청 공무원 등을 소환해 그동안 제기된 여러 의혹들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광주시의 해명과 전직 간부의 주장대로 재협상 과정이 투명했다면 별 문제 없겠지만 만약 부정한 뒷돈이 오갔고 그 대가로 광주시에 불리한 재협상이 이뤄졌다면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탓인지 광주시청은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어수선한 분위기다.
광주시는 지난 2016년 9월에도 윤장현 광주시장의 외척(外戚)이자 시 안팎에서 ‘비선 실세’로 통하던 김 아무개 전 광주시 정책자문관(65·구속)의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칼끝이 광주시를 직접 겨누는 등 거센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다 내부에서는 시 감사위원회가 연일 강도 높은 전방위 감사를 받았었다. 당시 개청 이래 처음으로 두 차례에 걸쳐 광주시청 6~7개 실국이 동시에 압수수색을 당하며 한동안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크게 흔들렸다. 광주시는 ‘2016년의 악몽’이 되풀이 될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연이은 불상사에 윤장현 광주시장도 착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윤 시장은 20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 광주시 공무원을 언급하며 “너무나 안타까운 소식에 참담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고 애도를 표했다. 그러면서 “시가 과도한 재정지원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제2순환도로 1구간에 대해 최소운영수입보장 방식 폐지와 함께 재구조화 협상을 전격 이끌어내 재정 절감에 기여했다”고 공을 돌렸다.
하지만 전날 숨진 채 발견된 전 광주시 공무원 A 씨는 유서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경찰은 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옛 윤장현 시장 선거캠프 관계자 B 씨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는 모양새다. 경찰은 B 씨를 상대로 재협상 과정에서 대가성과 특혜성 여부, 타 공무원 로비 가능성 등에 대해서도 집중 조사할 것으로 알려져 광주시가 파장 확산을 주시하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광주 2순환도로를 둘러싼 의혹이 ‘비리복마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 기부금 부적정 사용 의혹도 뜨거운 감자다. 자동차밸리위는 광주시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차부품 클러스터 조성사업 추진을 위해 지난 2015년 설립된 지정기부금 단체다. 기부금이 골프접대비 등으로 사용됐다는 각종 의혹 제기가 잇따르면서 광주시감사위원회가 전면 감사를 벌이고 있다. 첫해 4억 원, 2016년 4억 원, 2017년 2억 5000만 원, 올해 3억 5000만 원 등 총 15억여 원의 예산이 집행됐거나 집행될 예정이며 매년 기부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기부금 사용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감사 결과에 따라 기부금이 부정하게 사용된 사실이 밝혀질 경우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것이라는 게 광주시 안팎의 전망이다. 광주시는 공정한 감사를 위해 해당 실국 본부장과 과장을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파장 확산 차단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병규 경제부시장까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10원이라도 잘못 쓰여졌는지 이 기회에 낱낱이 의혹을 소상하게 밝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피력하는 등 혹시 튈지 모를 불똥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광주시가 전직 간부의 사망과 내부감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사이 테크노파크원장 선임을 둘러싼 정실인사 논란도 광주시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시장 인수위 출신 특정인사를 자리에 앉히기 위해 공모를 추진했다’는 게 핵심이다. ‘여러 부작용을 고려해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광주시가 원장 공모 강행의지를 내비치면서 ‘시장 인수위 출신 특정인사를 자리에 앉히기 위해 공모를 진행했다’는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이 일자 광주시가 한발 물러서 원장선임을 무기한 연기했지만 인사행정의 난맥상을 드러냈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앞서 광주테크노파크 임원추천위원회는 응모한 6명 중 서류 심사를 거쳐 4명으로 압축한 뒤 면접에서 2명을 선정, 이사회에 추천했다. 이 과정에서 서류점수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현 원장이 탈락하고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윤 시장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 아무개 전 광주시 부시장과 정 아무개 조선대 교수 등이 추천되면서 보은인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연이어 악재가 터지자 시청 공무원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간부 공무원들이 업무에서 배제되고 전직 공무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까지 발생해 안타깝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광주시 한 공무원의 하소연이 그들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 광주시의 이런 ‘일그러진’ 모습에 민선 6기에 대해 기대와 바람을 가졌던 시민들의 시선 또한 착잡한 모습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최근 조직 안팎의 여러 가지 일이 불거지며 어수선한 분위기다”며 “이번 수사와 감사가 하루빨리 마무리돼 조직 분위기가 안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은선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