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액 규모만 따지면 박 전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많다. ‘재단 후원금’이 300억 원 넘게 차지하기 때문인데, 이 전 대통령은 110억 원대인 데 반해 박 전 대통령은 625억 원대다. 박 전 대통령이 4배 이상 많다.
하지만 범죄의 ‘질’은 이 전 대통령이 더 나쁘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둘 다 나쁘지만, 박 전 대통령 입장에건 직접 뇌물을 받은 이 전 대통령과 비교되는 게 억울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박 전 대통령부터 짚어보자. 박 전 대통령 대신 ‘재단’을 꾸리고 기업들로부터 재단에 후원금을 요구한 이는 최순실 씨다. 최 씨와 박 전 대통령의 관계는 친척도, 인척도 아니다. 때문에 검찰은 한 지갑을 공유한, ‘경제 공동체’라고 주장했다. 한 주머니를 공유했기 때문에 공범이라는 것. 이들은 ‘후원금’ 형태로 받은 게 많다. 검찰은 후원금을 뇌물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K스포츠, 미르재단으로 받은 후원금은 ‘마음대로 쓰기’가 개인적인 뇌물보다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게다가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의 금액은 실제 집행되지 않았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은 ‘직접’ 받았다. 그리고 돈을 요구한 목적은 ‘이 전 대통령의 재산(다스 포함)’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 더 뚜렷했다. 삼성전자가 2007년 1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대납한 것으로 조사된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인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미국 소송비로, 600만 달러(약 64억 원)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등과 함께 받은 22억 5000만 원 등 ‘대통령의 권력’을 바탕으로 돈을 받아챙겼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도와달라”고 직접 다스 사안을 챙겼을 정도니 말이다.
직접 뇌물과 제3자 뇌물은 법리적으로 다르다. 뇌물 혐의는 공무원 본인이 받았을 경우 적용된다. 반면 제3자 뇌물은 공무원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이를 근거로 제3자에게 돈이 갔을 때 적용한다. 엄청난 계획으로 제3자 뇌물을 받은 게 아니라면, 통상 직접 뇌물죄가 더 양형이 높다. 한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본다면 오히려 더 억울할 것”이라며 “아마 이 전 대통령이 먼저 수사를 받아 구속된 뒤, 박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는다면 구속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의견이 대립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기적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범죄 혐의가 직접 뇌물에서 제3자 뇌물로 바뀐 맥락도 ‘뇌물의 발전’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수부 수사에 밝은 한 검찰 관계자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제3자 뇌물로 수사를 받는 경우는 없었다”며 “직접 뇌물을 준 부분들이 잇따른 수사로 계속 덜미가 잡히다보니 뇌물을 주는 쪽과 받는 쪽 양쪽 모두 고도화되고 있다, 재단 등을 통한 제3자 뇌물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최근 검찰이 기소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역시 직접 뇌물을 받지 않고, 자신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한국e스포츠협회에 후원금을 내도록 요구했다가 제3자 뇌물 혐의로 기소됐다. 전 전 수석은 국회의원 시절 함께 일했던 전직 보좌관 윤 아무개 씨와 김 아무개 씨, 브로커 배 아무개 씨 등을 통해 2015년 7월 롯데홈쇼핑 등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사례 등을 감안해, 전 전 수석이 ‘마음껏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한국e스포츠협회로 받은 후원금을 ‘뇌물’로 볼 수 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