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내놓은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이 금융권뿐 아니라 재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방안 간담회’를 열고 크게 4가지 측면에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개선안에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금융권 CEO 선출 절차 투명화 및 사외이사 독립·전문성 강화 ▲감사·내부통제 기능의 독립·책임성 제고 ▲고액연봉자에 대한 보수공시·통제 강화 방안 등이 담겼다.
최 위원장은 이날 “금융사들의 지배구조가 여전히 주주와 금융소비자의 기대 수준에 부합하는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에는 미흡하다”며 개선안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의 지난 ‘금융지주 지배구조 실태점검’에서 문제점으로 지목된 CEO 셀프연임, 거수기 사외이사, 불투명한 내부통제 등이 개선될지 관심이 모인다. 금융위의 계획은 올 상반기 중으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3분기 중에 개정을 완료한다는 것이다.
이번 개선안의 가장 큰 특징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다. 개선안은 최다출자자 1인(법인제외)으로만 규정했던 기존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을 확대한다. 최다출자자 1인이 법인일 경우 개인 1인이 나올 때까지 모회사 등을 훑어야만 하는 현행법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금융위는 그동안 금융사 지배와 관련성이 낮은 개인을 심사하거나 개인 1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를 더러 맞닥뜨렸다. 금융위는 이번 개선안을 통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을 최다출자자 1인뿐 아니라 특수관계인과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주주로 확대한다.
이 때문에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재벌 총수 일가나 계열사 등기임원 등이 금융계열사 지분을 조금이라도 가졌을 경우 심사 대상에 포함된다. 이는 금융당국의 사정권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당장 삼성생명·삼성화재 지분을 보유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롯데손해보험의 주주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은 2년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할 판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사 최대주주가 법인일 경우 그 법인 대표자와 최다출자자, 해당 법인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람까지 심사 대상이 된다”며 “한화손해보험의 최대주주인 한화생명 법인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김승연 한화 회장 등도 심사 대상에 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요건도 까다로워진다. 배임·횡령 등의 죄를 다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여부가 심사 요건으로 새롭게 추가됐다. 기존엔 금융관련법령·조세범처벌법·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만 다뤘다. 명시된 범법행위를 저질러 부적격 판정을 받은 심사 대상자는 보유의결권 중 10%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은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이를 무시할 경우 금융위로부터 10% 초과 지분에 대한 주식 처분 명령을 받는다. ‘벌금 1억 원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법인주주도 의결권 제한명령 부과 대상이다.
과거 배임·횡령 등으로 처벌받은 총수가 적지 않았던 만큼 대기업들은 더욱 숨을 죽일 수밖에 없다. 총수 일가가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을 경우 그룹 전체 지배구조를 유지하거나 경영승계 등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삼성 보험사인 삼성생명은 삼성자산운용 지분 100%, 삼성카드 71.86%, 삼성증권 29.39%, 삼성화재 14.98% 등을 보유하며 삼성 금융계열사들의 1대 주주로 있다. 따라서 삼성생명의 대주주 등에 결격사유가 생길 경우 이들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삼성생명 대주주 등에 결격사유가 생길 경우 여타 금융계열사들에 대한 지배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이번 개선안이 소급입법 금지원칙을 따르면서 당장 삼성에 미칠 영향은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고성준 기자
금융위는 또 최고경영자 자격 기준으로 금융전문성·공정성·도덕성·직무전념성 등을 새롭게 추가했다. 기존엔 범죄·행정제재 및 신용불량 여부 등만 판단한 것. 이에 따라 비금융 계열사에서 경력을 쌓았거나 도덕성 시비 등에 휘말린 인사는 금융계열사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금융위의 개선안은 금융권조차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우려할 정도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잉 제재로 평가되는 부분이 많다”며 “특히 금융사 지분을 적게 갖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 특수관계인의 적격성까지 판단하는 건 대기업을 옭아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개선안은 금융사 경영·지배 등과 무관한 것에 힘을 싣는 듯하다”며 “자격요건 강화 등은 오히려 건강한 경영행위를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개선안 내용은 은행법과 저축은행법 등엔 이미 담겨 있던 것으로 해외에선 실시된 지 이미 오래”라며 “위법행위를 근절해야 하는 맞는 만큼 자격요건 강화 등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선안 도입에 찬성하면서도 과도한 제재는 피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엄격히 하는 건 옳다”면서도 “심사 대상의 확대는 금융사 주인을 없애고 주주 형태를 잘게 쪼개 금융사들이 정부 영향권 아래로 귀속되는 경우를 야기할 수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개선안이 금융사들의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 등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의 금융정책만 전개될 경우 금융업에 양질의 산업자본 투입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개선안은 소급입법 금지원칙에 따라 개정법이 시행된 이후 발생하는 위법행위부터 적용된다. 따라서 현재 뇌물 공여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번 개선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
재벌들 ‘금산분리’ 숙제 어떻게? 지분 팔거나 과징금 내거나 금융위원회(금융위)의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방안’에 대기업도 영향을 받으면서 재계가 여타 규제안 등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더욱이 최근 정부가 금산분리 원칙을 강조하는 내용의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 도입을 결정하면서 경영 규제에 대한 기업들의 촉각은 그 어느 때보다 곤두서 있다. 올해 가장 먼저 주목되는 법 조항은 금산분리 원칙을 담은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제24조’다. 해당 조항은 대기업 소속 동일 계열 금융회사들이 다른 회사 지분 10%를 초과 보유할 경우 이를 매각하거나 사전에 금융위의 승인을 받을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삼성 금융계열사들은 해당 규제로 가장 먼저 애를 먹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올해까지 자사주 소각을 이어나가기로 결정하면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총합이 9.67%에서 10.3%까지 오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삼성은 삼성생명·삼성화재가 보유한 지분 10% 초과분을 어떻게든 연내에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비자발적으로 생겨난 지분 10%의 초과분인 0.3%에 대해 금융위 허가를 요청할 수도 있지만, 매각하기로 방향을 잡았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SK는 지난해 금산분리 원칙을 담은 ‘공정거래법 11조’로 곤욕을 치렀다. SK가 위반한 해당 조항은 일반지주회사가 금융·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 회사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일반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당시 금융·보험업을 하는 국내 회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 2년의 주식 처분 유예 기간을 준다. 문제는 일반지주회사인 SK㈜가 유예기간이 끝날 때까지 SK증권 주식을 처분하지 않은 것. SK증권 지분은 2015년 SK C&C가 기존 지주회사였던 옛 SK를 흡수 합병해 SK㈜라는 이름의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취득됐던 것이다. 이에 SK㈜는 지난 2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년 내 SK증권 주식 처분 명령과 함께 29억 6100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응당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 금산분리 등은 경영을 굉장히 번거롭고 힘들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남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불공정 행위, 예금자 피해 등을 막기 위해선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