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임준선 기자
‘청와대 저주’는 역대 대통령이 주로 비극적인 사건을 맞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지난해 3월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이어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이 전 대통령 구속으로 ‘청와대 저주’가 정점을 찍은 모양새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씨 구속 이후 23년 만에 전직 대통령이 동시에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점이 풍수지리학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청와대 뒤편에는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이 있다. 왼편엔 낙산(좌청룡), 오른 편엔 인왕산(우백호)이 자리 잡고 있다. 청와대 앞엔 청계천이 흐르고 있어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명당 중의 최고의 명당으로 불렸지만 풍수지리학계에선 청와대가 길지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풍수지리학자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저서 ‘새로운 풍수이론’에서 “서울의 주산인 북악의 좌우로는 낙산과 인왕산이 용과 호랑이가 되어 도성 안을 감싼다. 그 앞에 남산이라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손님 산인 관악과 대좌를 한다. 북악 앞으로 품을 열어 사람을 맞을 준비를 마쳤으니 서울의 명당이다. 하지만 풍수에서 명당 주산은 결코 사람이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심하게 건드려 놓았으니 문제”라고 했다.
2017년 10월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을 마친 1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최 전 교수 주장대로 북악산을 건드린 사례는 일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를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이 지금 청와대 터 인근에 들어섰다. 풍수지리학자들은 이때부터 대한민국 대통령의 불행한 운명이 시작됐다고 강조해왔다.
1926년 총독 집무실을 지은 3·5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1936년 2·26사건으로 피살됐다. 1937년 청와대 터에 관사를 만든 미나미 지로 7대 총독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전범’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8대 총독 구이소 구니아키도 A급 전범으로 처벌받았다. 총독부 건물 시절부터 청와대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셈이다.
최 전 교수는 “어떻게 괜찮았던 사람도 청와대에만 들어가면, 이해하기 힘들게 바뀌는 것일까. 청와대 터는 일제 총독이 조선의 자존심을 근본적으로 밟아 버리기 위해 선정한 곳이다. 그곳은 조선 정궁인 경복궁 위쪽에 해당된다. 전형적인 식민 통치 수법으로 세워진 곳이다. 청와대 바로 뒤에 있는 북악산은 청와대 경내에서 보면 매우 아름답고 권위도 있는 서울의 주산이다. 하지만 광화문 네거리에만 나와서 봐도 그것이 얼마나 왜소하고 인왕산 같은 주변 산세에 미치지 못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지법 대법정의 굳은 표정의 전두환,노태우씨 1996.8.26 연합뉴스
지종학 풍수지리학자(지종학 풍수지리연구소장)가 2010년 발표한 ‘경복궁·청와대 입지의 비판적 분석과 대안모색에 관한 연구-풍수이론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도 청와대 흉지설이 등장했다. 지 소장은 “북악산은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우듯 힘 있게 우뚝 솟은 모습이다. 하지만 광화문 네거리에서 바라보면 산정상 머리 부분은 동쪽으로 잔뜩 꼬고 있으며 경복궁과 청와대를 외면하고 있다. 경복궁과 청와대 풍수에선 이게 결정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오류다. 어머니로부터 외면당한 품안이 편안할 수 없듯이 주산으로부터 버림받은 땅은 결코 좋은 땅이 될 수가 없다. 후일 이것은 경복궁과 청와대에 엄청난 부담과 부작용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6년 11월 6일 가을이 깊어가는 청와대 뒷산 북악산이 물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 소장이 지적한 엄청난 부작용은 현재진행형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청와대 안주인들은 온갖 고초를 겪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18년 독재를 일삼았던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피살됐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영전에 헌화·분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두환 노태우 씨는 반란죄와 내란죄 및 뇌물 수수 혐의로 옥고를 치렀고 전직 대통령 예우까지 박탈당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녀들의 뇌물 수수로 레임덕에 시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측근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을 당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최근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됐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