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대기업 등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A 사는 2011년 40억 원대였던 매출을 5년 만에 2배 이상 늘렸다. A 사는 지난해까지도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남동발전 등과 납품계약을 추진했다. 그런데 축전지업계에선 A 사의 급성장과 관련한 의혹이 제기됐다. 축전지 시장은 전문 제조공정 구축 등 진입장벽이 높은 편인데 신규 업체가, 그것도 주로 공공기관 납품건을 잇달아 수주하자 그 배경을 놓고 논란이 확산된 것이다. 축전지 사업자인 이 아무개 씨는 “A 사가 중국으로부터 품질 확인이 불가한 저가의 산업용 전지를 수입 후 주요 공공기관에 납품해왔다”고 주장했다.
A사에 대한 KS 인증을 주관한 한국표준협회(이하 협회)는 지난해 9월 천안 공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 당시 협회는 A사가 대부분 외주 공정 처리하고, 공장에선 완제품을 조립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조사를 마쳤다. 사진 제보자 제공.
A 사는 2009년 10월 중국 웨이하이(위해·威海) 유한회사를 설립하고, 납축전지에 대한 국내 KS(한국산업표준) 인증을 획득했다. 이어 충남 천안에 산업용 납축전지 공장을 건립하고 웨이하이 공장에서 받은 KS 인증을 국내 이전했다. 한국 공공기관 납품을 위해선 KS 인증이 필요하며, 제조 설비 또한 국내에 있어야 한다. 즉 A사는 공공기관 납품을 위해 국내에서 축전지를 생산하는 조건으로 KS 인증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A 사가 KS 인증만 취득했을 뿐 실제 국내 생산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중국산 무허가 제품을 수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축전지 업계에 따르면 A 사의 천안 공장에는 축전지 제조에 필요한 집진시설이 없고, 허가받은 폐수처리 시설이 없다. 또 지난해 A사는 한국남동발전 등 국내 발전사로부터 납품 계약을 따내는 과정에서 발주처가 요구하는 축전지(VGS 모델)를 자체 제조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발주처 한 관계자는 “기존 시장 지배자의 견제인지는 모르겠지만 A 사와 관련한 시장의 안 좋은 소문이 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A 사가 중국에서 부품을 들여와 국내 조립해 납품한 것으로 아는데 (입찰 당시) KS 인증을 정식으로 받았다 보니 의심할 수 없었다”고 했다.
A 사에 대한 KS 인증을 주관한 한국표준협회는 지난해 9월 천안공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 그런데 당시 표준협회는 A 사가 대부분 외주 공정 처리하고, 공장에선 완제품을 조립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조사를 마쳤다. 중국산 반입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의 기소유예(산업표준화법 위반) 처분을 근거로 “완제품 수입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지난해 6월 검찰은 A 사 대표 B 씨에 대한 산업표준화법 위반 혐의에 대해 “인증받지 않은 제품 60여 개에 KS 인증을 부착했지만 중국산 완제품 수입은 없었다”며 기소유예 처분했다.
그러나 당시 표준협회의 조사 결과에 대해선 ‘봐주기’ 아니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표준협회가 작성한 내부 공문을 보면 당시 조사관은 KS 인증을 받은 일부 품목(KS C 8519)의 중국산 수입·판매 사실을 확인했고, ‘공장 제조설비는 있으나 대부분 가동한 지 오래되어 보이며, (현재로선) 제품 생산 실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업계에선 검찰의 기소유예(혐의는 있지만 기소하지 않는 것) 처분에 대해서도 수사 의지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이 씨는 “국내에서 가장 기술 수준이 높은 세방전지가 만들 수 있는 니켈 축전지를 A 사가 독자 생산한다며 KS 인증을 받았는데 우리가 알아보니 2012년 KS 추가 인증을 받은 중국 현지 공장의 실체도 불분명한 상태”라며 “표준협회의 책임 회피로 출처 불명의 중국산 제품이 국내산으로 둔갑해 국내 유통되고 있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세방전지는 연매출 1조 원이 넘는 국내 최상위 축전지 제조사다. 표준협회 측은 “담당자가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관세청은 표준협회 조사와 별개로 A 사의 중국산 완제품 수입 여부를 전수 조사하고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MADE IN CHINA’ 등 생산지 라벨을 없애고 중국산을 한국산으로 바꿔 입찰에 참여한 사례가 최근 자주 적발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입찰은 대부분 최저가 입찰이 원칙인데 중국산은 한국산에 비해 납품 원가가 저렴해 공공기관 입찰 시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A 사 역시 중국산 수입 사실을 부인하진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A 사는 “발주처인 공공기관이 국내 제조로 입찰 자격을 제한한 것은 부당하다”는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일각에선 이번 중국산 납품 의혹이 국내 축전지 제조사와 해외 축전지 제조사 간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표준협회는 해외 축전지 제조사에 대해서도 KS 인증을 주고 있는데 엄정한 심사를 거쳐야 할 KS가 남발되다 보니 해외 생산품으로부터 국내 생산품을 보호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산 제품의 무차별 국내 반입은 기존 시장을 파괴할뿐더러 품질 검증 미비로 안전 문제까지 야기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표준정책국 관계자는 “천안세관(관세청)과 이달 초부터 업무 협의를 하고 있고, 세관 쪽에서 A 사의 중국산 완제품 KS 표기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며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즉시 과징금 부과, 입찰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A 사 측은 “(문의에) 답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