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G20 회의에서 가상화폐 규제안이 발표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며 가상화폐 시세는 일제히 하락했다. 2월 20일 1코인에 1340만 원을(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기준) 기록한 비트코인은 3월 19일 810만 원까지 떨어졌다. 이더리움, 대시, 라이트코인, 리플 등 주요 가상화폐들도 3월 19일 일제히 가격이 폭락했다.
이날 많은 G20 회원국들은 예상대로 가상화폐 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가상화폐의 기반이 되는 기술이 금융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소비자와 투자자에 대한 보호가 취약하고 자금세탁, 탈세 등의 범죄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G20 회의는 가상화폐 규제 합의안 도출을 오는 7월로 미뤄 결과적으로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마크 카니 영국은행(BOE) 총재는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계 GDP의 1%도 되지 않는 가상화폐는 세계 금융 안정성에 위협을 가져올 만한 수준이 아니다”며 규제 방안 마련이 시급하지는 않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또 이번 회의에서 프랑스, 독일 등은 가상화폐 예금·대출 금지를 포함해 구체적인 규제안을 제안했지만 브라질은 가상화폐를 규제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밝히며 입창 차를 보였다.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19, 20일 이틀간 무역전쟁 방지책과 가상화폐(암호화폐) 규제를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정책 마련에 실패했다. 연합뉴스
규제 합의안 발표가 연기되며 G20 회의를 앞두고 가격이 폭락했던 가상화폐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G20 회의가 열린 3월 19일 기준 1코인 당 812만 원(빗썸 기준)까지 떨어졌던 비트코인은 3월 23일 오후 12시 40분 기준 940만 원으로 올랐다. 같은 기간 다른 주요 가상화폐의 1코인 당 가격 역시 이더리움은 50만 원에서 58만 원, 리플은 595원에서 701원, 비트코인캐시는 93만 원에서 108만 원으로 올랐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상승세가 최소한 6·13 지방선거 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가상화폐 구매자의 42%에 달하는 20·30대 젊은층 표심을 잡기 위해 당분간 가상화폐 규제안 대신 장려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월 31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서울코인’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부산시장 선거에 나서는 박민식 자유한국당 전 의원은 ‘부산코인(B-코인)’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에서 G20 회원국을 대상으로 열리는 가상화폐·블록체인 관련 국제금융 컨퍼런스, G20 국제금융체제 2차 실무회의 역시 6월 13일 직후에 진행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정부에서 ICO(가상화폐 기업공개) 전면금지 방침을 밝힌 상황에서 상당수의 한국 블록체인 업체가 글로벌 ICO를 통한 투자금 유치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내시장을 대상으로 가상화폐 ‘하이콘(HYCON)’의 ICO를 통해 3500비트코인을 유치한 블록체인 전문기업 ‘글로스퍼’는 조만간 글로벌 ICO에 도전할 계획이다. 글로스퍼는 최근에는 잉글랜드 FA컵 축구경기에서 하이콘 배너광고를 게재하며 광고비용을 하이콘 에어드롭으로 지불했다. 글로스퍼 관계자는 “아직 광고가 더 남았다. 국제시장에서 하이콘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량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코인 시세를 조종하는 매수세력의 등장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 분석업체 ‘와이즈앱’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상화폐에 관한 관심이 뜨겁던 1월 1일 기준 ‘업비트’ 앱의 주간 총 사용시간은 3억 9700만 분까지 올랐지만 3월 18일 기준 6400만 분까지 감소했다. 거래소 앱 이용시간의 감소는 가상화폐 거래량이 줄어들었음을 나타내는 간접적인 지표다. 전체 거래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자금력을 지닌 매수세력의 등장은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G20이 끝났으니 곧 매수 세력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가상화폐 투자자는 “어차피 웬만한 단기 투자자들은 G20 회담 이전에 다 빠져나갔고 남은 건 장기 투자자들뿐”이라면서 “거래량이 작은 상태에서 자금력을 가진 ‘고래’가 들어오면 가격이 금방 오를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가상화폐는 규제 이슈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으로 G20의 규제안 연기는 단기적으로 변동성 완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업계에서는 가상화폐 가격이 장기 우상향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직 제도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장기 우상향 과정에서 가격변동성은 크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최근의 가상화폐 시세 반등을 단기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가상화폐를 통한 범죄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해외에서는 익명성이 강한 ‘다크코인’이 가상화폐거래소에서 퇴출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일본의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체크’에서는 580억 엔(한화 5843억 원) 상당의 가상화폐 ‘NEM’이 도난당하는 최악의 가상화폐 도난사건이 발생했다. 도난당한 NEM은 이미 복수의 계좌로 흘러갔고 최근 NEM 운영사는 더 이상의 추적을 포기한다고 밝힌 상태다. ‘재팬 타임스’에 따르면 현재 코인체크는 익명성이 강한 ‘모네로’, ‘대쉬’, ‘제트캐시’의 거래소 퇴출까지 검토하고 있다.
ICO 관련 사기가 늘어나며 일부 SNS, 포털사이트는 가상통화 및 ICO에 대한 광고를 전면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1월 30일 ICO 관련 광고의 금지를 선언한 페이스북을 포함해 구글, 네이버, 카카오톡 등도 가상통화 및 ICO 광고에 대한 규제안을 발표한 상태다.
G20 정상회의 직후 몰려들었던 매수 세력이 빠지며 벌써부터 가상화폐 가격이 다시 주춤거리는 현상도 관측된다. 3월 23일 오후 빗썸 기준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거래소에 상장된 12개의 가상화폐 가격은 24시간 전 대비 모두 하락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