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성폭행 의혹에 대한 구속영장실질 심사를 위해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서울서부지법에 출석했다. 최준필 기자
3월 28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서부지법에 출석한 안 전 지사는 이날도 그동안 주장했던 입장을 고수했다.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와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지만 합의되었고 업무상 위력은 없었다는 것. 최진녕 법무법인 이경 변호사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신저 내용만 보더라도 안 전 지사와 김 씨의 수직적인 관계는 어느 정도 드러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안 전 지사가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의 정계 복귀는 이미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성폭행이라는 혐의 자체가 무거운 데다가 안 전 지사 스스로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는 점 자체는 이미 인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차재원 부산 카톨릭대 교수는 “안 전 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계복귀가 아니라 어떻게든 처벌수위를 낮추는 것”이라며 “안 전 지사가 자신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와의 성관계는 합의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어떻게든 형이라도 낮추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주목되는 부분은 검찰이 추가한 ‘강제추행’ 혐의다. 최근 검찰은 안 전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김 씨가 고소장에 적시한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과 추행 외에 강제추행 혐의를 추가했다. 최 변호사는 ”(강제추행을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가 나왔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검찰은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는 강제추행 혐의가 인정되면 업무상 위력도 자연히 증명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고함을 증명하던 정봉주 전 의원은 무리한 진실공방을 끝에 스스로 덫에 빠지게 됐다. 3월 27일 정 전 의원이 렉싱턴 호텔에 방문했다는 증거가 경찰에 제출된 것. 이는 그동안 ‘렉싱턴 호텔에 간 적이 없다’는 정 전 의원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다. 3월 28일 정 전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2018년 3월 27일 직접 카드 사용내역을 확보하여 검토해 본 결과 2011년 12월 23일 렉싱턴 호텔에서 결제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즉시 스스로 경찰 측에 자료를 제공한 뒤 곧 바로 프레시안 기자들에 대한 고소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 스스로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결국 3월 28일 오후 정 전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철회 의사를 밝혔다. 정 전 의원은 SNS를 통해 “모든 공적 활동을 접고 자숙하고 또 자숙하면서 자연인 정봉주로 돌아가겠다”며 “10년 통한의 겨울을 뚫고 찾아온 짧은 봄날이었지만…믿고 지지해주신 분들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고 밝혔다. 또 28일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여전히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며 “하지만 기억이 없는 것도 불찰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 전 의원의 발언을 정계은퇴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저 일시적인 정치활동 중단이라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일단 명시적으로 정계은퇴 발언을 하지 않았다. 과거 정 전 의원이 BBK사건으로 구속수감되며 정치인에서 자연인이 되었지만 법적으로 특별사면을 받고 복귀한 것처럼 앞으로는 국민으로부터 사면을 받는다면 다시 복귀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정 전 의원은 호텔 방문 사실에 대해서만 인정할 뿐 성추행 자체에 대해서는 입장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다. 정 전 의원은 “7년 전 일이라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흐릿하다”며 “780여 장의 셀카와 주변인의 증언을 통해 그동안 자신은 렉싱턴 호텔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1년 정봉주 전 의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A 씨가 3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새로 제출한 증거
야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정 전 의원의 성추행 사실이 밝혀질 경우) 문 정부 이후 첫 특별사면 대상자로서 염치도 없어졌을 뿐더러 굵직한 정치적 사건도 아닌 성추문에 휘말린 것 자체가 모양새가 너무 좋지 않다“며 ”정 전 의원의 경우 열렬한 지지자를 거느렸던 사람으로서 이런 문제로 인심을 잃을 경우 실상 정계 복귀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마주하게 될 난관은 또 있다. ‘맞고소전’을 벌이고 있는 ‘프레시안’이 정 전 의원을 ‘무고죄’로 고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 3월 13일 정 전 의원은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고, 같은 달 16일 ‘프레시안’도 정봉주 전 의원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한 상태다.
최 변호사는 ”무고죄는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 담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타인을 처벌받게 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고소한다면 무고죄가 성립된다. (프레시안이 정 전 의원을) 고소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검찰에서 직권으로 인지해서 수사할 수도 있다“며 ”일반적으로 무고죄는 통상 처벌 수위가 높지 않았지만 수사기관이 정 전 의원이 고소한 허위사실로 인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고 판단한다면 구속까지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프레시안’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 상황에서 당분간 정 전 의원은 사건 관계자와의 합의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최 변호사는 ”(정 전 의원은) 증거 제출 당일까지 A 씨의 행동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혀왔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다“며 ”정 전 의원이 재판부로부터 징역 1년의 유죄를 받았던 BBK 관련 허위사실 유포죄와 동종 범죄를 행했다고 판단된다면 매우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되어 처벌 수위가 예상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