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다음날, 침몰 현장을 방문해 해경경비함정에 올라 상황을 점검하며 구조 활동을 독려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세월호 사고 보고 시각 조작 및 대통령훈령 불법 수정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는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 혐의로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8일 밝혔다.
앞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지난해 10월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세월호 사고 당일 사고 내용 최초 보고 시간을 조작한 정황이 발견됐다며 김기춘·김장수 전 실장 등을 수사해달라고 검찰에 의뢰했다.
이에 검찰은 당시 청와대 근무자와 각 부처 관계자 등 63명의 참고인을 조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지난 19일 서울구치소까지 찾아가 조사하려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거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관련 첫 발생 보고를 서면으로 받은 시간은 당일 오전 10시 19분~10시 20분쯤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국회 청문회 등에서 주장했던 10시보다 20분가량 늦은 것이다.
김장수 전 실장은 오전 10시 사건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전달받고는 곧바로 보고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무실이 아닌 관저 침실에 머물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등 공식일정을 마치면 주로 집무실이 아닌 관저로 돌아와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장수 전 실장은 관저에 머물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상황보고서 1보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받지 않았다.
이에 김 전 실장은 안봉근 당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에 전화해 “대통령이 전화를 안 받으신다. 보고가 될 수 있게 조치해달라”고 요청했다. 동시에 신인호 위기관리센터장에게 상황보고서 1보를 관저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신 센터장은 10시 12분쯤 1보를 완성, 상황병을 통해 관저에 전달을 지시했다.
상황보고서를 받은 상황병은 관저까지 뛰어가 10시 19분쯤 내실 근무자인 김 아무개 씨에게 보고서를 전달했지만, 김 씨는 별도 구두보고 없이 박 전 대통령의 침실 앞 탁자에 올려두기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 김장수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 결국 안봉근 전 비서관이 10시 12분쯤 이영선 전 경호관이 준비한 승용차를 이용해 본관 동문을 출발해 관저로 갔고, 10시 20분쯤 침실 앞에서 수차례 부른 후에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침실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상황보고서 1보를 접한 것도 이때로 추정된다.
1보를 접하고 10시 22분쯤에나 김장수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여객선 내 객실, 엔진실 등 철저히 수색해 누락되는 인원 없도록 하라”고 최초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세월호 탑승객이 외부로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낸 10시 17분, 즉 박근혜 정부가 규정한 ‘골든타임’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검찰은 이때는 이미 세월호가 108도로 기울어진 채 침몰 중인 상태여서,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이 지난 때라고 판단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실장에 첫 전화 보고를 받고 ‘총력 구조’를 지시한 시각이 10시 15분이라고 밝혔다.
국회에서 세월호 진상 조사에 나서자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이런 상황을 감추기 위해 관련 보고 및 지시 시간을 모두 사후 조작한 것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이 11차례에 걸쳐 실시간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이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4.16 여객선 침몰 사고 상황’ 보고서가 정호성 전 비서관 이메일로 11차례 발송된 것은 맞지만, 정 전 비서관은 당일 오후와 저녁 시간에 각각 한 차례씩 출력해 총 두 차례만 박 전 대통령에게 일괄 보고했다는 것이다.
특히 사고 당일 오후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청와대 관저에 은밀히 들어와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는 사실도 새로 확인됐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최순실 씨는 이날 이영선 전 경호관이 운전한 차를 타고 오후 2시 15분쯤 청와대로 들어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 정호성·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 등과 회의를 가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기로 한 것도 당시 ‘5인 회의’에서 최순실 씨 제안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용하는 방식으로 결정됐다고 당시 회의 참여한 측근들이 검찰에 진술했다.
앞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당일 간호장교와 미용사를 제외하고는 어떤 외부인도 관저에 들어온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최순실 씨가 청와대 관저에 들어온 것이 사실이라면,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국민들에게 ‘비선 실세’의 존재를 숨긴 것이 된다.
한편 검찰은 김관진 전 실장도 ‘국가 위기관리 컨트롤타워가 청와대’라는 내용의 대통령훈령(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단변경한 혐의(공용서류손상 등)로 불구속 기소했다.
또한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오전 10시쯤 세월호 상황 보고서를 전달했다고 위증한 혐의로 윤전추 전 행정관도 불구속 기소됐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