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 박은숙 기자
3월 23일 열린 KT 주주총회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주총 내내 일부 노조원과 주주들이 황 회장 퇴진을 외쳤고, 경찰 병력이 지킨 행사장 밖에서는 집회와 기자회견이 열렸다. 황 회장이 직접 “조용하세요” “질서유지권 발동합니다” 등 수차례 경고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날 주총에서 통과된 안건 중 논란에 휩싸인 것은 회장의 선임 절차 변경,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의 사외이사 선임 등이다. KT는 회장 선정 주체를 기존의 CEO추천위원회에서 사내 3명 사외 8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로 바꿨다. 또 참여정부 청와대 근무경력이 있는 김대유 이강철 씨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KT 새노조 등은 황 회장 입지를 다지기 위한 차원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KT 새노조 관계자는 “이사회는 최근 몇 년간 올라온 안건에 대해 100% 찬성을 했다”면서 “황 회장 거수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KT의 한 임원은 “참여정부 출신들을 영입한 것은 자리를 지키려는 목적이 깔려 있다는 반응이 우세하다”고 했다.
이러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한 황 회장이 현 정권 들어 교체설에 줄곧 휘말렸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복수의 여권 핵심 인사들은 본지에 “시기만 남았을 뿐 바꾼다는 입장은 확고하다”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일요신문 1337호 ‘친문 실세들 황창규 KT 회장 정조준’ 참고).
그러나 황 회장은 임기를 지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이번 주총 역시 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부정적 기류 일색이던 여권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문재인 대통령 일부 참모들과 친문 의원들이 사기업인 KT 회장 교체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황 회장 주변에선 “큰 집(청와대)은 우리 편”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어찌됐건 황 회장으로선 분위기 반전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황 회장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중도하차 가능성 역시 높게 점쳐진다. 이런 가운데 KT 내부에서조차 황 회장을 흔드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들은 ‘황창규 체제’를 끝내고 새로운 회장을 선출해야 한다면서 은밀하지만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황 회장 후임으로 거론되는 KT 전·현직 인사들, 여권 정치인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한 재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KT의 한 전직 인사는 광화문 모처에 사무실을 얻어 차기를 도모하고 있다더라. 우리 같은 경우 친문 정치인으로부터 이미 확답을 받았다. KT 회장 자리를 노리는 세력들이 더 있지 않겠느냐. 지금 이들끼리도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일단은 일차 목표가 황 회장이다. 그때까진 잠재적인 우군 아니겠느냐. 황 회장이 버티고 있다면 끌어내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이들은 황 회장과 관련된 내부 자료들을 사정기관과 언론 등에 전달하고 있다. 취재 결과, 경찰이 수사 중인 국회의원 불법 후원금 의혹 역시 그 중 하나다. 경찰은 KT 임원들이 상품권을 ‘카드깡’ 방식으로 현금화한 뒤, 이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후원금 형식으로 건넨 부분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황 회장도 피의자로 입건한 상태다.
그런데 경찰은 관련 내용을 지난해 KT와 관련이 깊은 인사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경찰 고위 인사는 “신변 보호 때문에 구체적인 것은 말할 수 없지만 최초 제보자가 KT 쪽인 것은 맞다. 후원금 작성 과정 및 이를 건네받은 국회의원들 명단을 확보했다. 우리로서는 상당히 고마운 자료였다”고 귀띔했다. 이 고위 인사는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최초 제보자로부터) 여러 번 확인 문의를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여러 자료들이 경찰은 물론 검찰과 언론 등에 넘겨졌다. 실제 이를 입수해보니 KT의 계열사 매각, 유상증자, 황 회장의 측근 인사 등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내부 관계자가 아니면 어려운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황 회장을 흠집 내기 위한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이 중 일부에 대해선 검찰이 입수,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주도해서 만든 것으로 알려진 한 KT 인사는 기자와 만나 “황 회장이 불순한 의도로 회사에 손해를 입힌 증거들이다. 배임 혐의 등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경찰 후원금 수사에도 우리가 많은 도움을 줬다. 또 임기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인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 내에서도 황 회장 교체를 바라는 이들이 제법 있다”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