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은 미용실로 향하기 전에 무척 중요한 일을 마쳤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개막 2연전 두 번째 경기에 등판하면서 무려 533일 만에 KBO 리그 복귀전을 치렀다. 어깨까지 닿아 찰랑거리는 장발을 휘날리며 홈구장 마운드에 올랐고, 5이닝을 3피안타 1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임무를 완수했다. SK가 결국 5-0으로 승리하면서 김광현은 567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되는 기쁨을 맛봤다.
다이내믹했던 하루의 끝은 ‘이발’이었다. 에이스의 귀환을 알리는 세리머니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김광현은 그동안 마운드에 돌아올 이 날만을 기다리며 머리를 길러왔기 때문이다. 1년 가까이 ‘야생’ 그 자체로 유지되던 김광현의 장발은 가위질 몇 번에 예전 길이로 돌아왔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강속구를 던지던 에이스는 연신 “홀가분하다”고 했다.
사진=SK 와이번스
# 김광현은 왜 머리를 기르고 어떻게 잘랐을까
김광현의 긴 머리는 겨우내 SK 최고의 화제 가운데 하나였다. 최고 인기와 명성을 자랑하는 왼손 에이스가 KBO 리그 선수에게선 보기 드문 장발을 한 채 나타나자 관심과 의문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헤어스타일에는 실제로 사연이 있었다.
김광현은 지난해 1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프리에이전트(FA) 계약 첫 해였던 지난 한 해를 통째로 쉬면서 재활에 집중했다. 그 사이 머리카락은 하염없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머리카락 길이에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다. 한때 헤어스타일 변신으로 기분 전환을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난해에는 재활에 전념하느라 외모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됐다. 일부러 커트를 하지 않았다. “마운드에 다시 올라갈 때까지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야구에 전념하겠다”는 의미였다. 인천 마운드에 처음 올라가는 날을 미용실에 가는 ‘디데이’로 삼았다.
무작정 자라는 긴 머리카락을 좋은 일에 쓸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됐다. 트레이 힐만 SK 감독을 통해서다. 힐만 감독은 지난해 8월 구단에 “한국의 소아암 환우를 돕고 싶다. 모발 기부를 하고 싶은데 이 방법이 어떤가”라고 문의했다. “야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한국 사회에 좋은 울림을 주고 싶다”는 뜻에서였다.
소아암 환자들은 어른 못지않게 강도 높은 항암 치료를 견뎌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부작용 탓에 머리카락이 다 빠져 버리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가발이 필요할 때가 많다. 암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위해선 모발 기부가 절실하다. SK는 자체 조사를 통해 모발 기부 방법과 조건을 힐만 감독에게 알려줬다. 길이는 25cm를 넘어야 하고, 염색을 하거나 펌을 받은 모발은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힐만 감독은 그 이후 머리카락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계속 길러왔다.
김광현도 올해 초 플로리다 스프링캠프에서 감독의 장발에 관심을 가졌다가 그 이유를 전해 들었다. 감동을 받았고, 동참을 결심했다. 그 후 김광현이 머리를 기르는 일은 단순히 선수 개인의 이벤트를 넘어 공적인 사명이 됐다. 공을 던질 때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거나 모자가 벗겨지는 불편을 겪었지만, 꾹 참고 견뎠다. 미용을 위한 헤어 시술도 전혀 받지 않았다. 그저 재활에만 전념을 하고 또 했다.
그 시간이 모두 지나가고 마침내 때가 왔다. 김광현은 다시 마운드에 올랐고, 성공적으로 복귀를 알렸다. 야구장을 나서자마자 미용실로 직행했다. 김광현의 커트를 담당한 미용사는 한때 팀 동료였던 LG 포수 정상호의 친동생 상훈 씨다. 김광현은 “무심코 시작한 일인데, 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게 그렇게 관심을 많이 받는 행사인 줄 몰랐다”며 “나보다는 직접 커트를 하시던 상호 형 동생분이 카메라 세례에 더 당황하셨을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사진=SK 와이번스
30년 가까이 짧은 헤어스타일로 살아온 김광현이다. 짧은 머리로 돌아오니 홀가분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예전부터 사실 자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다른 건 괜찮은데, 공 던질 때 자꾸 모자 아래로 머리카락이 날려서 솔직히 방해가 되더라”고 귀띔했다. “안 그래도 내가 마운드에서 불필요한 행동이 많은 편인데, 머리카락까지 신경 써야 하니 힘들었다”고 웃으며 털어놓기도 했다.
그래도 복귀전에서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커트 이벤트’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다. 징크스를 신봉하는 일부 주변인들은 “만약 첫 등판에서 잘 던지면 좋은 기운을 이어 가야 하니 자르지 말고 놔두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광현은 더 이상 머리카락에 미련이 없다. 모두가 복귀전 성적에 박수를 보냈지만, 스스로는 100% 만족하지 못해서다. 어차피 다음 등판부터 올 시즌을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이라 개의치 않는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을 좋은 일에 쓸 예정이라 더 그렇다. “이렇게라도 아주 조금이나마 좋은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게 기쁘다”고 했다.
김광현은 자신을 통해 ‘모발 기부’라는 방식이 널리 알려지길 원한다. 그는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기준을 통과하는 게 아무래도 어렵지만, 그래도 조건이 되시는 분이라면 기왕 머리카락을 자를 때 동참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중요한 숙제 하나를 끝낸 그는 이제 다시 짧은 헤어스타일로 마운드에 오른다. 머리카락이 길든 짧든, 김광현은 여전히 ‘김광현’이다.
# 갈기 머리를 휘날리던 ‘삼손’ 이상훈이 있었다
사실 김광현이 머리를 자른 모습을 보고 일부 야구 관계자들은 “긴 머리로 투구하는 모습도 멋져 보였는데 왠지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LG의 레전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왼손 투수 이상훈이 갈기 머리를 휘날리며 마운드로 달려 나가던 위풍당당한 모습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름 석 자만큼이나 ‘삼손’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이상훈은 KBO 리그에서 ‘장발 투수’의 유일한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과거 야구선수들은 헤어스타일로 개성을 표현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지금보다 더 단체 생활 규율이 엄격해서 일탈이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다. 또 요즘처럼 남성의 염색이나 펌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터라 조금만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해도 무척 이질적으로 보였다. 한 야구인은 “1990년대 후반에 주축 선수 한 명이 머리를 약간 길러서 펌을 하고 왔는데, 하필 그날 팀이 4연패인지, 5연패인지에 빠져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며 “화가 난 감독님이 그 선수에게 ‘내일 당장 펌을 풀고 오라’고 노발대발하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머리카락을 짧게 자를 것을 지시한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더 철저한 감독들은 경기 중 귀고리를 착용하는 것조차 금지하기도 했다.
일요신문 DB
이상훈은 남다른 외모와 무게감 있는 별명에 걸맞은 활약으로 리그를 호령하고 인기를 누렸다. 1995년 20승 5패 평균자책점 2.01을 기록하면서 지난해 양현종(KIA)이 20승 고지를 밟기 전까지 22년간 마지막 왼손 국내 20승 투수로 남아 있기도 했다. 1997년엔 10승 6패 37세이브를 올려 뒷문을 걸어 잠그는 철벽 마무리 투수로 꽃을 피웠다. 무엇보다 그는 LG 팬들에게 팀의 투지와 박력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세련됐지만 팀워크와 절실함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LG에서 투박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이상훈의 존재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런 그가 9년 만에 처음으로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것은 공교롭게도 LG를 떠난 직후였다. 연봉 협상과 개인적인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다 2004년 1월 SK로 이적했다. 동시에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갈기 머리를 귀밑까지 싹둑 잘라 버렸다. 과거와의 작별이자 새 출발의 다짐이었다. 하지만 머리카락도 자르고 LG 유니폼도 벗은 이상훈은 더 이상 ‘삼손’이 아니었다. 그는 SK에서 1년만 뛰고 은퇴했다. KBO 리그는 펄펄 끓는 혈기를 자랑하던 ‘야생마’와 그렇게 작별했다.
# ‘귀공자’ 세든과 SK의 징크스
외국인 투수들은 국내 투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팀이나 감독의 관리를 덜 받는다. 야구 규약이나 규정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 헤어스타일도 마찬가지다. 2013년 SK에서 뛴 크리스 세든 역시 휘날리는 장발로 자신의 외모를 한껏 과시한 선수다.
세든은 목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트레이드마크였다. 유독 머리카락에 윤기가 흘러서 세든 관련 기사 댓글에는 “어떤 샴푸를 쓰는지 브랜드를 알려 달라”는 댓글이 종종 달리곤 했다. 순정 만화에서 빠져 나온 듯 길고 찰랑거리는 금발을 뽐내 ‘귀공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무엇보다 스스로도 자신의 머릿결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했다. “샴푸 광고라면 언제든 오케이다.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농담도 한 적이 있다.
메이저리그에 있을 때부터 유지해온 머리카락이다. 그에게 짧은 헤어스타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인 한화 외국인 선수 대나 이브랜드가 팀이 연패에 빠지면서 선수들의 삭발 행렬에 동참한 모습을 목격한 뒤 “우리 팀엔 절대 저런 일이 벌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화들짝 놀랐을 정도다. 하지만 출발은 ‘미용’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탈모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보고 경각심을 가졌다. 그는 “아버지 머리숱이 많지 않다. 나도 그렇게 될까봐 걱정이 돼 머리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털어놔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선수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장발 신사’가 돼야 했던 상황도 벌어졌다. SK가 연승 행진을 구가하던 2010년 얘기다. 당시 사령탑이던 김성근 감독은 징크스의 제왕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무심코 면도를 하지 않고 야구장에 나왔다가 연승 행진이 시작돼 버렸다. 그 후 머리카락과 수염은 물론 손톱과 발톱까지 깎지 않았다.
그 소식이 언론을 통해 퍼져 나가자 SK 선수들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참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많은 선수들이 휴식일인 월요일에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곤 했지만, 차마 누구도 머리카락에 가위를 대지 못했다. 자칫 이발을 하고 나왔다가 팀이 지기라도 하면 ‘네가 금기를 깨서 졌다’고 덤터기를 쓸 수 있어서다. 평소 선수들의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선호하던 김성근 감독이지만, 이때만큼은 반강제적으로 ‘두발 자유’가 허용된 셈이다. 이래저래 SK는 선수들의 ‘장발’과 인연이 깊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오가사와라, 수염 그리고 요미우리 “수염 용인” 통큰 옵션 감동…입단 직전 셀프 커트! 일본 프로야구는 한국보다 선수의 외모에 대한 규제가 더 심하다. 특히 일본 최고 명문 구단이자 인기 구단인 요미우리는 팀 분위기가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1군에 진입하지 않은 선수는 술과 담배, SNS를 할 수 없고, 원정 경기 이동시에는 무조건 정장을 입는다. 시즌 중에는 구단 매니저들이 직접 선수들의 사생활까지 관리를 한다. 일본 언론이 “요미우리는 스스로 엄격하고 강한 규율을 운영하면서 ‘야구 군단’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그 가운데서도 장발과 염색, 수염은 1순위 금지 조항이다. 요미우리 선수라면 무조건 단정하고 깨끗한 용모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단 한 차례, 요미우리가 마음을 바꿨던 적이 있다. 2006시즌이 끝난 뒤 니혼햄에서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검객’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를 데려오기 위해서다. 당시 요미우리 구단 회장이 직접 나서 “오가사와라의 트레이드마크인 수염을 계속 기를 수 있도록 허락하겠다”고 발표했다. 요미우리가 선수의 ‘수염’을 용인한다는 사실을 일본 언론 전체가 대서특필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한 매체는 “오가사와라에게는 요미우리가 제시한 계약 조건보다 수염을 기르도록 허락을 받은 게 더 기쁜 옵션일 수 있다”고 쓰기도 했다. 이유가 있다. 오가사와라는 2000년부터 6년간 턱수염을 길러왔던 선수였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턱수염은 그의 카리스마를 표현하는 장치이자 전성기를 함께한 트레이드마크였다. 하지만 요미우리는 앞서 언급한 대로 헤어스타일과 수염을 까다롭게 규제하는 팀이다. 2002년 FA 거포 나카무라 노리히로를 영입하려다 같은 문제로 협상이 불발된 적도 있다. 금발 머리가 트레이드마크였던 나카무라에게 “요미우리에 오려면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부터 해야 한다”고 권유했다가 계약서 사인 직전 사이가 틀어지고 말았다. 그해 퍼시픽리그 홈런왕에 오른 오가사와라가 무척 탐이 났던 요미우리는 앞선 실수에서 교훈을 얻었다. 와타나베 회장이 먼저 “본인이 수염을 기르는 게 좋다면, 그게 좋은 것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며 한 발 물러섰다. 오가사와라를 데려오기 위해서라면 오랜 기간 지켜온 전통까지 바꿀 수 있다는 열린 태도를 취했다. 오가사와라는 꼿꼿하던 요미우리의 낮은 자세에 감동했고, 결국 양측은 입단에 합의했다. 더 놀라운 것은 오가사와라가 요미우리 입단 기자회견에 수염을 말끔하게 깎은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는 “기자회견 3시간 전에 스스로 수염을 깎았다”며 “입단이 확정되는 순간 수염은 깎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뛰겠다”고 했다. 강한 가지는 부러지지만, 부드러운 가지는 잠시 휘어지기만 할 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요미우리의 영입 작전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대성공이었다. 오가사와라는 무사히 요미우리에 입단해 당시 4번 타자였던 이승엽과 중심타선에서 함께 활약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