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할합병 안건이 통과하려면 발행주식 3분의 1 이상 참석하고 그 가운데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하는 주총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지분율은 약 30%로 가결이 유력하다. 하지만 삼성물산 사태를 겪었던 국민연금과 지배구조에 민감한 외국인 주주들의 뜻이 변수다. 이들의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율은 과반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이 밝힌 지배구조개편안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전경.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1. MK 최대주주, 현대글로비스 최대 수혜
▲A/S부품사업, ‘황금열쇠’ 대물림=전문가들의 평가를 종합하면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현대모비스에 불리하고, 현대·기아차에는 중립, 현대글로비스엔 호재다.
존속하는 현대모비스는 2017년 기준 매출액 26조 7700억 원에 세전이익 1조 2500억 원이다. 현대글로비스로 넘어가는 사업부는 매출 14조 원에 세전이익 1조 4400억 원이다. 한눈에 봐도 현대글로비스로 가는 쪽이 알짜다. 알짜 사업부를 받은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가 높아지면 최대주주인 정몽구 회장 부자의 지분 가치도 그만큼 높아진다.
공교롭게도 이 같은 방식은 정몽구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굳힌 전략과 닮았다. 정 회장은 과거 현대그룹 자동차 부문 회장이 된 후 고수익이 나는 A/S부품 부문을 자신이 직접 지배하던 현대모비스(당시 현대정공)로 넘겼다. 이후 현대모비스는 높아진 수익을 바탕으로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선다. 이번에 현대글로비스로 넘긴 사업부문도 A/S부품이다.
▲자금부담 최소화=정 회장 부자가 사들일 주식은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가 가진 현대모비스 주식이다. 현재 시가로는 5조 8000억 원이 넘는다. 하지만 정 회장 부자에 지분을 넘길 때는 알짜 사업 분야를 떼낸 후다. 자산 가치로만 따지면 현재의 62% 수준이다. 현 시가로 3조 6000억 원 정도다.
반면 정 회장 부자가 팔 주식은 현대글로비스다. 알짜 사업부문을 넘겨받는 만큼 현재의 지분가치가 높아지면 높아졌지 떨어질 리 없다. 최소 2조 원이 넘는다. 정 부회장은 예전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이노션 지분 매각으로 약 9000억 원의 현금도 확보했다. 일단 3조 원가량이 확보된 셈이다.
▲절묘한 구조=이번 개편은 현대모비스 주주인 계열사들이 정 회장 부자에게 지분을 팔고, 정 회장 부자는 계열사 지분을 팔아 이를 사들이는 형식이다. 계열사들은 기업가치가 하락할 현대모비스 주식을, 정 회장 부자는 기업가치가 오를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파는 것이다. 이는 증시 반응에서도 곧바로 확인된다. 지배구조 개편안이 발표된 직후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 주가가 급락했지만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급등했다.
합병에 따른 신주교부일은 7월 말이다. 4개월여간의 시간 동안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오른다면 정 회장 부자로서는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을 위한 자금 부담이 줄어든다. 일각에서 이번 지배구조 개편을 삼성그룹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비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개편안이 삼성그룹의 그것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사진은 2016년 12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6일 출석한 정몽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악수하는 모습. 일요신문DB
▲금융계열사 부담=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지주체제로 전환하면 금융계열사를 떼어내야 한다. 그런데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는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현대차증권, 현대라이프 등 한두 곳이 아니다. 정 부회장이 금융부문까지 지배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금융 부문을 이끌고 있는 정태영 부회장에게 떼어주기에는 그룹과 사업연관성이 너무 크다. 지주사로 전환해도 금융사를 정리할 유예기간이 있지만 굳이 쫓길 이유는 없다.
이는 삼성과도 닮았다. 삼성도 지주사 전환을 하지 않기로 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데 워낙 규모가 크고 지배구조에 치명적이다.
▲자사주 효과 부족=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에서는 자사주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분할 과정에서 자사주 의결권을 부활시켜 자회사 지배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 현재 유통주식 수 대비 자사주 비율은 현대모비스가 2.7%, 현대차가 6%. 기아차는 1.1%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현대차와 기아차의 총수 지분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인적분할 시 현물출자를 통해 지주사 지배력을 배가시킬 지렛대가 약한 셈이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되면 정 회장 부자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30.1%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 지배력은 높아지지만 지분율 자체는 계열사가 순환출자 구도로 지배하던 때와 비슷하다.
▲공정위·여론 눈치=지주사로 전환하면 대주주의 현물출자와 자사주 활용, 과도한 브랜드 사용료 수입과 관련한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실익도 적은데 굳이 사회적 비난까지 감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현대차그룹은 이번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약 1조 원의 양도소득세를 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의 배경에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있다. 공정위는 현대차그룹 쪽에 3월 말까지 순환출자 해소 등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선안을 독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3. 이제 시작… 남은 과제들
▲현대모비스 지배력 높여야=존속하는 현대모비스에 대한 정몽구 회장 부자의 직접 지배력은 30%를 넘게 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 회장이 고령인 탓에 조만간 있을 증여·상속 과정에서 세금 부담을 감안하면 이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주식 매각이든, 차입이든, 배당 확대든 지분율이 높을수록 세금 납부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쉽다.
정 회장의 현대차 및 현대제철 주식가치는 2조 5000억 원에 달한다. 아들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차와 기아차 지분가치는 1조 원에 육박한다. 비상장인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을 매각할 때 장외가격으로 주당 75만 원을 적용하면 정 회장이 2700여억 원, 정 부회장이 2조 2000여억 원을 손에 쥘 수 있다. 모두 합하면 7조 원에 육박한다.
▲최대 변수 된 현대엔지니어링=정 회장 부자의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의 유동화 방법도 관전 포인트다.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하면 보유주식 중 가장 잠재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현물출자나 상장, 현대건설과 합병이 가능하다. 삼성의 사례를 참고해 온 현대차그룹 행보를 볼 때 삼성SDS의 전례를 따를 수 있다. 현대엔지니어링 지배회사인 현대건설에 그룹의 재무·전략통들이 최근 대거 배치된 점도 눈길을 끈다.
▲지주체제 전환=현재로서는 굳이 지주사로 전환할 이유가 없지만, SK와 롯데 등의 사례에서 보듯 총수 일가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주사 체제가 유력하다.
정 회장 부자가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을 현대모비스에 투입하면 현재 20%인 총자산 내 자회사 지분가액은 지주사 전환요건인 50%를 넘길 수 있다. 금융계열사도 현대캐피탈과 현대차증권 정도는 규모가 크지 않아 준비만 잘 한다면 정 부회장이 직접 지배할 수 있다.
정 회장 부자가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경우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인적분할해 지주사를 만들고, 이들 지주사가 현대모비스와 합병하는 시나리오도 유효하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