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밝힌 청사진은 엄청났다. 서울 인근인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에 1조 원을 투자해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만들겠다고 밝힌 것. 하지만 발표 하루 만인 29일, 하남 일대에서는 “신세계가 이를 백지화하기로 약속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하남시민들이 이를 원치 않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 신세계 측은 “시민들이 반발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사업 철회 관련 홍보팀에게 지시가 내려오거나 들은 내용은 없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오수봉 하남시장이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하남시 온라인 물류센터 건립 계획이 지방선거 시즌을 맞아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스타필드 고양 오픈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정용진 부회장. 연합뉴스
하남시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정 부회장은 3월 28일 하남시에 지을 온라인 물류센터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정 부회장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신세계그룹&파트너사’ 채용박람회에서 “1조 원을 투자해 물류센터 등 온라인 전용센터를 건설할 것”이라며 “아마존을 능가하는, 세상에 없던 최첨단 온라인센터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존엔 가보지 않았지만, 아마존 출신과 물류 전문가를 상대로 정보를 수집해 우리에게 맞는 시설을 구축하겠다”며 큰 포부를 밝혔다.
청사진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정 부회장은 “상품 배송뿐만 아니라 분사하게 될 SSG닷컴의 핵심 시설이 자리 잡을 것”이라며 “아파트 30층 높이, 지역 랜드마크가 될 정도의 예술성을 갖춘 건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지 위치부터 살펴보자.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가 들어설 부지는 이마트가 지난 26일 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972억 원에 낙찰받은 경기 하남 미사지구의 자족시설용지(공공시설 중 지역의 자족 기능 확보를 위한 시설)다. 4개 블록으로 2만 1422㎡에 달한다.
문제는 하남시민들이 이를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미사강변도시연합회는 “신세계가 추진하고 있는 물류센터 부지 인근은 거대 유통 공룡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 입점이 예정돼 있는 데다 미사강변도시 주진입로와 주도로인 신장로가 연결되는 하남시 초입으로 매일처럼 교통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습정체 지역이다. 여기에 하루 500대가 넘는 대형 트럭이 가세한다면 교통대란은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또 “물류센터가 건립될 부지 주변이 대규모 공동주택 단지다, 대형 트럭의 매연과 열병합발전소 백연까지 합쳐 이 일대는 최악의 공기질로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극한 상황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고 비난했다.
100일도 남지 않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도 시민들의 한 표를 잡기 위해 합세했다. 오수봉 하남시장은 물론,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하남시)도 신세계그룹의 초대형 물류창고 건립 계획에 강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오수봉 시장은 긴급 주민 간담회에 모습을 드러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중요한 자족시설을 하남시와 의견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신세계에 매각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주민 합의 없는 초대형 물류센터 건립은 절대 불가하다. 인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현재 의원은 신세계그룹 수뇌부들과 만나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신세계그룹 측은 ‘하남시가 반대한다면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취지로 향후 사업 포기 방안 등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하남시’가 이를 일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1조 원이 투자되는 사업을 시작할 때, 시 측과 조율을 하지 않는다는 게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 신세계 규모의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100억 원도 아니고, 1조 원을 투자하는 사업에 시와 조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는데, 실제 흐름을 잘 알고 있는 하남시 관계자는 “신세계와 하남시 측에서 어느 정도 조율을 한 상태로, 신세계가 사업을 추진했는데 하남시민들이 반발하자 하남시장이 이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채용비리로 검찰·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오수봉 시장의 정치적인 수라는 비판이다.
한편 취재진은 오 시장에게 이와 관련된 의혹을 확인하고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