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2일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을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건으로 선정,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사전조사를 권고했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과거사위는 재조사 대상 사건 선정을 위해 총 10차례의 회의를 가졌다. 과거사위는 지난 2월 6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청와대 민간인 불법사찰 등 12건의 1차 사전조사 대상을 선정했고, 이 가운데 8건의 본 조사 대상 사건을 확정했다. 앞서의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은 2차 사전조사 대상이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과거사위가 선정한 사건 리스트를 넘겨 받아 과거 수사기록을 검토하는 등 실질적인 재조사에 나선다. 과거사위가 사건을 선정하면 진상조사단이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그 결과를 위원회가 심의, 결정하는 방식이다. 재조사 대상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 등 인권침해가 발생했거나 검찰권이 남용된 사건, 검찰이 은폐, 부실 수사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다.
대검 진상조사단은 1, 2차 대상 사건에 대한 사전조사와 본 조사를 병행한다. 과거사위는 대검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사 사례 재발 방지 및 피해 회복을 위한 후속 조치 등을 권고할 예정이다.
# 문 대통령 “변호사 시절 가장 가슴 아픈 기억”
엄궁동 2인조 살인 사건은 지난 1990년 1월,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 갈대숲에서 30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후 머리를 가격당해 두개골이 함몰된 채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현장에서 시신 외에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미궁에 빠졌다. 살해 당한 여성과 함께 있던 남성이 유일한 목격자였지만 “범인이 두 명이었다”는 사실 외엔 별다른 증언을 하지 못했다.
미제 사건으로 남는 듯 했지만 1년 뒤인 1991년 전환점을 맞이했다. 공무원을 사칭해 금품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 2인조가 검거 되면서부터다. 경찰은 범행 수법과 장소 등이 엄궁동 사건과 비슷하다며 이들을 살인사건 용의자로 추궁했고, 이 과정에서 두 남자는 범행일체를 자백했다. 검찰 수사를 거쳐 재판에 넘겨진 2인조는 1993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그런데 모범수로 특별 감형을 받아 2013년 출소한 엄궁동 2인조는 경찰 수사에서 고문과 허위자백이 있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관련기사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 ①] ‘격투, 추격, 살인’…시각 장애인이 벌인 일). 실제 ’삼례 3인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등 재심을 이끌어 낸 박준영 변호사는 엄궁동 2인조 사건기록을 분석해 당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조작 사실과 위법 수사를 확인했고 <일요신문>, <SBS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 과정에서 무죄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조작 사실과 새 증거 등을 종합해 2017년 5월 8일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엄궁동 2인조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 변호사 시절 변호를 맡았던 사건이다. 문 대통령은 1992년 항소심부터 이들을 변호해 무죄를 주장했지만, 당시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016년 엄궁동 2인조 사건에 대해 “억울한 사건이었다. 2인조가 무기징역이 확정된 후에도 면회를 갔고, 편지도 주고 받았다. 변호사로 35년을 일하면서 가장 가슴 아픈 기억, 한으로 남은 사건”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 장자연 리스트, 용산지역 철거 사건 등도 사전조사 대상 포함
과거사위는 엄궁동 2인조 사건과 함께 △장자연 리스트 사건(2009년) △춘천 강간살해 사건(1972년) △KBS 정연주 배임사건(2008년) △용산지역 철거 사건(2009년) 등 총 4건이 사전조사 대상 사건으로 포함했다.
장자연 성접대 리스트 사건은 배우 장자연씨가 2009년 3월 기업인과 유력 언론사 관계자, 연예기획사 관계자 등에게 성접대를 했다고 폭로한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불거졌다. 당시 검찰이 장씨의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를 폭행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한 뒤 수사를 황급히 마무리하고, 성상납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은 이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하면서 논란이 됐다.
춘천 강간 상해사건은 1972년 9월27일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에서 일어난 어린이 강간, 살인 사건이다. 당시 경찰이 고문과 짜맞추기 수사로 ‘가짜 범인’을 만들고 억울한 옥살이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지역 철거 사건은 일명 ‘용산 참사’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사건은 2009년 1월20일 서울사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이하 전철연) 회원, 경찰, 용역 직원들의 충돌이 벌어져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세입자2명, 전철연 회원 2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