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특별감사단은 2013년 하나은행 채용비리 의혹을 조사한 결과, 모두 32건의 부정 채용 정황을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금감원은 하나은행 측으로부터 받은 자료와 인사팀 관계자, 임원들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통해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도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나은행의 입장은 단호하다. “김정태 회장이 채용 비리에 개입한 적이 없다”는 것. 금감원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부인한 것인데, 하나은행 측은 “검찰 조사에서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며는 입장이다. 채용 비리를 둘러싼 금감원과 하나금융지주의 갈등이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특별검사단장인 최성일 금감원 부원장보는 “(회장이 직접 추천했는지는) 내용이 확인되지는 않았다”면서도 “‘회’ 표시가 회장실 추천으로 추정된다”며 당시에도 회장이었던 김정태 회장의 채용 비리 개입 여지를 직접 언급했다. 금감원은 이 내용을 주요 합격 사례 중 가장 우선 사례로 보도자료에 적시하며, 김정태 회장 개입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 회장 외에 임원진의 채용 개입이 또 있었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 회장이 ‘(회)’였다면, 은행장은 ‘짱’이었다. 추천자가 ‘짱’으로 표시된 지원자 6명 중 4명이 최종 합격했는데, 이 중 3명은 서류전형(2명) 또는 면접단계(1명)에서 합격 기준에 미달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 ‘짱’은 당시 하나은행장인 김종준 전 행장이었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현 행장도 채용 비리에 관여했다. 추천인 ‘함XX 대표님(○○시장 비서실장)’으로 이름을 올린 함영주 현 하나은행장(당시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 대표). 함 행장의 이름이 추천인으로 적혔던 지원자는 합숙면접 점수가 합격기준에 미달했지만 임원 면접에 올라 최종 합격했다. 해당 지원자는 ○○시의 시장 비서실장 자녀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하나은행 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김정태 회장이나 함영주 행장이 직접 채용 비리에 개입한 게 아니라는 것. 하나은행 측은 “사실 관계를 확인해보니 김정태 회장은 물론, 함 행장 역시 특정인을 추천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김 회장은 추천인으로 추정된 지원자 측을 모르고, 함 행장 역시 당시 지역 지점장이 추천한 것일 뿐 함 행장이 한 게 아니라는 게 하나은행 측의 설명이다. 금감원의 증거들이 정황 증거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한 것. 그러면서 “금감원이 이 사안을 검찰에 넘겼으니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금감원은 심한 말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가 조사하는 과정에 대해서 대부분이 ‘모르는 내용’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며 “마치 김정태 회장이 관여한 부분을 어떻게든 부인하려는, 김정태 지키기에 나선 모습이 역력했다”고 털어놨다. 실제 하나은행 인사팀장 정도만 ‘(회)’라는 표식에 대해 “회장이나 회장실을 지칭하는 것 같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식 금감원장.
그래서일까. 지난 2일 새로 취임한 김기식 신임 금감원장은 “(하나금융이 채용비리를 부정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대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태 회장, 함영주 행장 등의 채용비리 연루 의혹에 대해 하나금융이 부인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금감원 검사 결과를 신뢰하며, 금감원이 할 일은 계속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유광열 금감원 수석부원장 역시 “검찰에 넘긴 사항이고, 대응할 가치가 없다”며 이런 입장에 힘을 보탰다.
결국 채용비리 사실 유무의 ‘채점자’는 검찰이 되는 모양새인데, 현재 분위기는 하나은행에 유리한 상황은 아닌 듯하다. 올해 초 이미 수사에 착수한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정영학)는 지난달 30일, 2015~2016년 하나은행에서 인사부장을 지냈던 송 아무개 씨 등 2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하나은행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은행 고위 관계자들과 관련된 지원자들과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들의 부정 채용에 관여한 혐의인데, 검찰은 금감원이 추가로 넘긴 2013년 채용 비리 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때문에 추가 수사 과정에서 함 행장은 물론, 김 회장의 소환 가능성도 법조계에서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 외에, 기존 금융당국의 추가 제재 가능성도 거론된다.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김기식 신임 원장이 처음으로 개별 금융사와 부딪치는 사안이기 때문. 특히 금감원이 앞서 셀프연임 등 금융권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했으나 하나금융 이사회의 강행으로 별다른 실익을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채용비리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최흥식 전 금감원장의 퇴임으로 체면을 구긴 상태라는 점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보탠다. 김기식 원장이 데뷔전 차원으로 하나금융을 상대로 본보기를 보여줄 것이라는 얘기. 실제 김 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금감원이 금융시장에서조차 영이 서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채용 비리는 하나의 명분이고, 금감원이 더 작정하고 나설 경우 은행 외에 카드, 보험 등 전방위적으로 사업에 영위하고 있는 하나금융에 불리한 상황”이라며 “금융당국 수장과 금융사 대표 간 갈등의 끝은 모두 ‘대표의 사임’으로 마무리됐다는 점을 돌이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