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남북대화의지를 밝힌 신년사로부터 시작된 외교 쇼가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 모습이다. 3월 25일부터 28일까지의 중국 방문은 김정은 외교의 최신 버전이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김정은의 한국 대통령특사단 접견과 비핵화의지 표명 등으로 숨가쁘게 전개돼온 이 쇼는 4월 27일로 날이 잡힌 문재인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과 이어 5월 중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회담으로 이어진다.
그 후 7~8월쯤이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폐쇄국가인 북한의 지도자가 갈 수 있는 외국은 그의 조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부터 동맹국인 중국과 구 소련 및 러시아뿐이었다. 서방을 대표하는 미국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일성은 남한의 김영삼 대통령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기 직전 급사했다. 김정일은 남한의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와도 평양에서 만났다.
김일성 부자 모두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곤 외국 국가원수를 평양으로 불러서 만났을 뿐 그 나라로 찾아가진 않았다. 남한 땅을 밟은 적도 없다.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1차 정상회담 때 서울로 답방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못 왔다.
김정은이 첫 번째 데뷔 무대에서 이것을 한꺼번에 뛰어 넘으려 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의 회담을 판문점 우리 측 구역인 평화의 집에서 갖기로 했다. 그래서 기계적인 의미로 한국 땅을 밟는 첫 북한 지도자가 되긴 하겠지만 서울에 올 수 있을 때 비로소 그의 방한은 완성된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의 장소도 관심사다. 평양으로 부를지, 문 대통령과의 만남처럼 판문점을 택할지, 아니면 핀란드 스위스 같은 제3의 장소를 택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곳이 어디가 되든 평양이 아닌 곳일 때 그에게 경칩은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김정은이 35세의 나이로 집권 7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독재체제의 미숙한 지도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의 성공적인 국제외교무대 데뷔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최대압박’ 전략은 윽박지름이고, 중국의 ‘쌍궤병진’(雙軌倂進)은 교활한 현상유지 전략이다. 이 중간에 한국의 운전대가 있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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